통 큰 정치인의 공약 “빚 좀 지는것이야…”

지방재정이 이렇게 논리의 상궤를 벗어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중앙과 지방의 자원 배분에 관한 객관적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 나라의 경제는 국민경제와 지역경제라는 두 가지 축을 가지고 돌아가지만 이 둘이 어떻게 자원을 나누어서 써야 최적일 것인지에 대한 재정학의 분명한 기준은 없고 그러한 기준을 만들기도 어렵다.

결국 앞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지방재정은 법령에 의해 정해진 세입의 범위 내에서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논리적인 한계가 명백한 것이지만 이러한 원론은 혼탁한 정치논리 앞에서 여지없이 무력해진다.

누구랄 것 없이 지방자치단체장들은 그들이 얼마나 크고 화려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 통 큰 정치인인지를 보여야 하고, 그러한 그들의 비전은 공약이라는 이름을 거쳐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정책”으로 탈바꿈한다. 다시 그것은 자치단체 간의 경쟁으로 번져가고 지역이기주의와 결합하여 한 지역사회의 “정의(正義)”가 된다. 드디어 재정이 과학의 문제이기보다는 정치적인 힘의 문제로 비약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방재정이 영원히 밑 빠진 독이 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구조다.

인천에도 민선 지방자치가 시행된 이후 계속적으로 전국 최고 수준의 통 큰 시장들이 등장하였다. 그들은 모두 인천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시장이 되기 전까지는 인천에 대해 특별히 잘 안다고 할 바도 아니었으며 행정에 많은 경험을 쌓은 사람들도 아니었지만, 공통적으로 인천에 대해 유난히도 통이 큰 비전을 내세웠다.

그래서 트라이포트, 명품도시, 경제수도 인천이라는 재정을 먹는 하마와 같은 개발전략이 인천의 주제가 되었고 미디어밸리, 도시축전, 아시안게임, 구도심재개발, 에잇시티 같은 전시성 파생 사업이 양산되었다. 그러한 정치적인 사업들에 사전 경제성 분석이나 재정분석 따위의 논리적인 시비가 개입할 여지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다. “다 같이 좋자”고 하는 일에 빚 좀 지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재정의 정치화가 만들어내는 문제들

재정의 정치화가 만들어내는 문제는 비단 이러한 재정의 비 과학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손쉽게 돈을 버는 방법이 재정을 나누어 갖는 것이고, 정치를 이용하는 것이 그에 도달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은 만고불변의 상식이다. 그래서 통이 큰 정치인일수록 어떻게 해서든지 좀 더 많은 자리를 만들고 우군들에게 이를 분배한다.

무절제한 용역의 발주, 불필요한 자리와 조직의 개설과 터무니없는 급여의 책정, 낭비성 행사의 창출, 관비 해외여행 따위 선물 보따리를 통해서 우군의 충성을 결속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합법을 빙자한다. 그래서 나는 이를 제도적 부패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러한 합법적인 부패는 다음 단계로 반드시 불법적인 부패의 온상이 되는 법이다. 재정의 운용이 이러한 단계에 접어들면 재정은 구조적으로 말기 암 환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각 자치단체마다 하도 많은 이러저런 상들을 받고 있으니 인천이 지금 이러한 단계 중 어디쯤에 와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을 비롯해서 인천의 많은 개발사업 관련 공직자들이 사정기관의 타깃이 되어 왔다는 사실과 방만한 재정구조를 도저히 스스로 추스르지 못하는 현실들이 그러한 수상의 영광들을 축복하지 않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제 이쯤에서 나의 논리를 요약하자면 현재 인천의 재정적인 위기는 비과학적이고 무책임한 통 큰 정치들의 결과이며 그에 부수한 제도적, 비제도적 부패의 결과인 것이고, 요컨대 인천의 재정은 대표적으로 후진적인 지방정치의 희생물이라는 것이다.

무모한 허세보다 현실적인 슬기가

지역의 경제는 정치인들의 비과학적인 통 큰 공약 따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냉정하고 정확한 조건의 인식과 과학적인 선택과 설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한 도시의 구성원들의 합의와 협력에 의해 성장하는 것이다. 독선보다는 합의가, 패거리보다는 협력이, 구호보다는 과학이, 무모한 허세보다는 현실적인 슬기가, 탐욕보다는 근면함이 한 도시를 번영하게 하는 힘이다.

만일 인천이 2014년에 그와 같은 역할을 감당할 리더의 선출에 성공한다면 재정 따위의 문제는 절로 해결될 것이다. 당연히 불필요한 지출은 삭감될 것이고 불필요한 조직도 정비될 것이다. 부채도 얼마든지 구조 조정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구도심 개발도 과학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인천에 그런 행운은 찾아올 것인가. 조국이나 고향이나 왜 이리 신산(辛酸)한가. /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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