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국도극장에서 개봉된 ‘미워도 다시 한번’은 64일 동안 36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유부남과 불륜관계 속에서 아이를 낳은 비련의 여주인공은 이 아이를 혼자 키워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은 아버지에게 아이를 돌려보내는 전형적인 멜로 드라마다.

이혼한 어머니에게 양육권이 없던 40년 전

불과 40여년 전인데도 당시 우리 민법에서는 부부가 이혼을 하면 자녀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은 원칙적으로 아버지에게 있던 때였다. 이혼한 어머니에게 양육권이 인정되지 않던 그 시절, 우리 아내들은 남편으로부터 견딜 수 없는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자식들을 남편에게 빼앗길까봐 감히 이혼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1999년 고 박완서 선생님은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에서 연애기간 중에 아들을 출산한 여성이, 남자가 더 좋은 조건을 가진 여자와 결혼을 하자 혼자서 아이를 데리고 떠난다. 그후 그 남자는 결혼한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그녀의 아들을 빼앗아 올 궁리를 하지만. 그녀는 당당하게 친권을 주장하고 자녀를 양육하도록 설정하고 있다.

물론 당시에 가족법상의 친권자에 대한 내용도 개정돼 부부가 이혼할 경우에 부부가 협의해 친권자를 정하도록 개정되었다. 물론 당시까지도 협의가 안된 경우에는 아버지에게 우선권을 주게 하기는 하였지만….

그 무렵 하급심 판례가 하나 나왔다. ‘이혼 당사자 간에 그 자녀의 양육에 관한 사항을 협의하지 아니한 때에는 부에게 양육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자녀의 양육을 아버지에게 맡기기 보다는 생모에게 맡겨 그와 같이 거주하며 그의 보호와 교육을 받고 자라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인정할 때에는 생모에게 양육하게 할 수있다’고 판결했다.

그후 2005년 가족법의 친권조항은 대대적으로 손질됐다. 부모가 혼인 중일 때에는 부모가 공동으로 이를 행사하되, 부모의 의견이 일치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당사자의 청구에 의하여 가정법원이 친권자를 정하도록 해 혼인 중인 부모에게도 법원이 자녀의 친권에 개입할 여지를 주었다.

그런가하면 최근에는 부모가 이혼하는 경우에는 재판상 이혼은 물론이고 협의 이혼인 경우라도 친권자에 대한 협의가 되지 않으면 가정법원이 직권으로 친권자를 지정하도록 하고 있다. 심지어는 부모가 협의를 한 경우라도 그 협의가 자녀의 복리에 반하는 경우에는 법원은 보정을 명하거나 직권으로 친권자를 정하도록 하고 있다.

‘최진실법’ 법원의 강한 개입 가능케 해

또한 종래 이혼 시에 단독 친권을 가졌던 아버지나 어머니가 사망한 경우에는, 나머지 아버지나 어머니의 친권이 당연히 부활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던 것을 개정하였다.

‘최진실법’으로 유명해진 개정 친권 조항은 단독 친권자로 정하여진 부모의 일방이 사망한 경우에는 살아있는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미성년 자녀 자신이나 친족이 친권자의 사망 사실을 안 날부터 1개월내 또는 친권자가 사망한 날부터 6개월 내에 가정법원에 생존하는 부 또는 모를 친권자로 지정할 것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서 당연히 친권이 부활하는 것을 막았다.

이와같이 자녀의 양육에 대해 법원의 강한 개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자녀의 양육문제는 단순히 헤어지는 부부의 문제이거나 한 가정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는 것이주된 취지다. 이제 이혼가정이 더 이상 흉이거나 눈총을 받는 상황이 아닌 사회에서 그로 인해 한부모와 생활해야 하는 자녀들에게 법원이 적극 개입해서 부모와 같이 사는 상황과 같지는 않더라도 그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서 조금이라도 심리적인 안정을 줄 수있게 하고자 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법원에서 양육자를 정할 때는 자녀의 연령이라든가 자녀의 양육환경이라든가 자녀양육에 대한 의지는 물론이고 부모와 자녀의 심리적인 유대관계까지 고려한다. 자녀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할 정도의 나이가 된 경우에는 자녀의 의견을 반영하기도 한다. 부모의 갈등상황을 너무 많이 보면서 자란 아이들은 판사나 가사조사관의 물음에 부모 두 사람이 다 싫으니 따로 살게 방을 얻어주면 좋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어서 어른들을 당황하게 한다.

자녀를 양육하기 원하는 부모가 서로 자녀의 환심을 사기위해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아이들에게 불편하게 만들어서 아이들의 진정한 의사가 왜곡되는 경우도 간혹 발견된다. 이제 가정문제는 단순히 은밀하게 밀실에서 당사자들끼리 처리하려는 것을 용납하는 상황이 아니다.

부부는 서로 좋아서 만났지만, 자녀는 그 부모의 몸을 빌려서 세상에 나올 때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이 자녀들이 어쩔 수없이 한 부모와 살게 되는 경우라면 최소한 양육자는 물론이고 비양육자도 그 자녀에 대한 책임은 다하여야 한다.

이혼한 부부, 자녀양육 새로운 시도

얼마 전에 처리한 사건은 자녀양육에 관한 한 하나의 실험대상이 될 것 같아서 소개한다. 두 부부가 모두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두 사람은 부부로서는 도저히 더 이상의 인연을 이어갈 수없을 정도로 갈등이 심해져서 이혼을 결심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자녀문제에서 만큼은 최선의 협조를 하기로 하였다. 두 사람은 이혼을 하면서 친권은 공동을 갖기로 하고, 아파트를 처분하고 삼층 집을 구입해서 남편은 맨아래층에 아내는 맨윗층에서 자녀와 기거하고 가운데 칸은 공동의 공간으로 설정하였다.

이들은 각자의 사적인 생활에는 절대 간섭을 하지 않되, 아이와의 식사라든가 아이의 학업문제라든가 아이의 공부를 돌보아 주는 것까지 아이의 양육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가운데 공동의 공간에서 모여서 함께 하기로 하였다. 통상적인 친권자와 양육자 지정 방법이 아니어서 변호사나 판사나 모두 염려 반 기대 반으로 두 사람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아무리 한 부모 가정이 더 이상 희소성을 갖는 것이 아닌 흔한 것이 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부부의 이혼으로 불가피하게 한쪽 부모와만 살아야 하는 자녀에게는 최대의 위기상황이고 견디기 힘든 변화이다. 이제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를 넘어서서 자녀의 양육환경에 대해서 만큼은 부모가 서로 협조해야 할 때다. /안귀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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