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 속사정은 설렁하고 답답

평소 친근한 사람이었지만 신상필벌의 원칙을 세우기 위해서 눈물을 뿌리며 처벌했다는 의미로 읍참마속의 고사가 쓰이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썰렁하고 답답한 일이 많았다.

처형당한 마속은 평소 지모가 번뜩였었다. 제갈량이 남만 정벌에서 맹획을 칠종칠금하여 마음속 깊이 승복하게 만든 계책의 근원도 따지고 보면 그의 공로였다.

위나라를 치는 북벌전의 출발에서도 껄끄러운 적장 사마의에게 ‘위나라 조정을 뒤엎으려 한다’는 모략을 펼쳐 삭탈관직 당하게 하고 낙향으로 내몬 계책도 마속의 머리에서 나왔다.

제갈량이 북벌의 전환점이 되는 요충지 가정(街亭)을 맡긴 것도 마속의 재능을 인정한 까닭이었다. 물론 염려되는 바도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임무를 맡기면서 신신당부하듯이 부장 왕평과 상의하라고 한 이유는 실전 경험이 부족한 한계를 염려했기 때문이 아닐까. 마속은 선봉장이란 중책을 맡자 내심 각오를 단단히 했을 것이다. ‘멋지게 임무를 완수하여 내 실력을 만방에 떨치겠다’는 호승심도 솟구쳤을 것이다. 여기서 마속이 경천동지의 기책(奇策)을 떠올렸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산상에 진(陣)을 치고 병법의 허실을 활용하겠다’는 야심은 전통적인 병학(兵學)에서 볼 때 무모하게 보일지 모르나 상대가 그의 의도대로 마땅한 대응책을 찾느라 주춤했다면 크게 승리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마속이 저 혼자 좋은 대로 꿈꾸었고, 실전 경험이 없었으므로 상대인 위나라 장수 장합에게 틈새를 보여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이었다. 노련한 장수는 상대의 의표를 역(逆)으로 찌른다. 이 역공세에 마속은 속절없이 당했고 패전의 모든 멍에를 지고 감옥에 갇혔다.

승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하지만 제갈량의 입장에서 패전의 충격이 워낙 컸으므로 마속은 참수형에 처해질 처지였다. 구명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우리 촉한은 그렇지 않아도 인재가 부족하지 않습니까. 지략이 있는 그를 잃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호소에 제갈량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성도에서 달려온 훗날의 승상 장완도 재차 재고를 요청했다.

“천하는 아직 평정되지 않았는데 지계(智計) 있는 선비를 죽이는 것은 아까운 일이지요. 승상께서 한 번쯤 봐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장완이 간청하고 있을 때 형이 집행되어 마속의 목이 군문에 걸렸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때서야 제갈량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소. 하지만 천하를 평정하려면 군율이 엄해야 하오. 사사로움이 없는 원칙, 엄정한 법 집행이 꼭 필요한 것이오.”

장완은 의아하게 여겨 물었다.

“이제 마속이 죄를 지어 군법을 행하셨고 승상께서는 엄정한 집행을 말씀하시면서 어찌 눈물을 흘리십니까?”

제갈량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나는 마속을 위해 우는 것이 아니오. 지난 날을 생각하건대 선제(유비)께서 백제성에서 위독하셨을 때 내게 말씀하시기를 ‘마속은 하는 말이 실제 행동에 비해 지나치다. 장차 크게 써서는 안 된다’고 하셨소. 과연 그 말씀이 오늘날에 들어맞음이라 사람을 잘못 본 나 자신을 깊이 원망하는 동시에 선제의 밝으신 총명을 사모하고 이처럼 통곡할 뿐이오.”

그러니까 제갈량은 본인의 입으로 마속을 위한 눈물이 아니라고 밝혔다. 헌데 그 자신의 말과 달리 유비를 지혜로운 군주라고 여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정사든 소설이든 제갈량이 유비를 인자한 군주로 여긴 이야기는 몇 번 나오지만 지혜로운 사람이라 여긴 일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아마도 그는 유비 정도의 지적 수준으로도 알 수 있었던 인물 판단력이 지혜의 화신으로 확신하는 자신에게 없었다는 사실이 분통터지고 울화가 치미는 일이었을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올드보이들이 스승의 자리 꿰찬건 아닌지…

읍참마속(泣斬馬謖)은 사실 일본인들이 만든 말이고 본래는 휘루참(揮淚斬) 마속이라고 되어 있다.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눈물을 뿌리며 마속을 베었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해 장경욱·윤석렬·진영·채동욱·양건 그리고 이석채 등등이 줄줄 레드카드다. 곧 개각이 있게 되면 몇 명의 장관도 그 대열에 끼일 것이다. 집권 1년도 안 된 사이에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시거나 국정 철학을 실현시키려 했던 많은 인재들이 별로 흔쾌하지 못한 이유로 물러나고, 국회 청문회에 오를 새로운 인사들이 줄을 잇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다음 구절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는 듯하다. 가이위사의(可以爲師矣)다. 풀이하자면 좋은 옛것을 찾아 그것으로 지금의 길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스승이란 말일 텐데, 어찌된 일인지 유신시대를 비롯해 ‘알아서 기고’, ‘과잉충성에 능한’ 정치 역정으로 국민의 존경과는 거리가 멀고 먼 올드 보이들이 스승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들 실세 올드 보이들에 의해 제2단계, 제3단계의 마속이 앞으로 속속 출현하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 아무쪼록 눈물을 뿌리기 앞서 제갈량의 고백처럼 옛날의 추억으로 자신을 탓하는 버릇이 썰렁하게 상영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정말 헷갈리고 답답하고 써늘한 요즘의 늦가을 날씨 같다. /나채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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