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은 대한민국 세정사(稅政史)에 획을 긋는 해이다. 부가가치세제가 본격 도입되면서 소위 대한민국에 과학세정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진 해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세무공무원의 목측과 직관에 의해 결정되던 간접세 과세표준이 세금계산서라고 하는 거래영수증에 의하여 자동으로 결정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종합소득세를 비롯하여 세제 전반에 막대한 변화가 파급되었고, 당시로서는 거의 천지개벽 수준의 세정 혁명이 진행됐다.

1977년 천지개벽 수준의 세정 혁명

납세 신고 예행연습이라는 전대미문의 국민훈련까지 수차례 치렀지만 세정의 현장에서는 일대 혼란이 일어났고 적지 않은 조세 저항이 있었다. 일부 재정학자들은 유신정권의 몰락의 원인(遠因)을 이러한 무리한 조세제도의 급격한 도입에서 찾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의 행정력은 거침없이 이러한 변혁을 밀어붙였다. 물가가 급등하고 곳곳에서 제도의 미비가 무더기로 발견되었지만 거의 무시되었다. 수없이 많은 세무조사가 이어졌고 조세 질서에 관한 명령서가 발부되었다. 단 한 건의 법정 거래명세표의 작성 누락이 발견되어도 행정명령 위반으로 당시 돈 50만원의 무시무시한 과태료가 가차 없이 부과되었다.

당시 이러한 행정의 지휘부는, 우리 국민들은 이렇게 강하게 몰아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무장하였고 제도의 조기 정착을 자랑스럽게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강박에 쫓기고 있었다는 것을 당시 세정의 안팎 사정에 밝은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이 나라의 행정은 늘 힘의 행정이었다. 행정가들은 우리 국민은 밀어붙이면 결국 모두 따라온다는 신념으로 넘쳤고 현장(現場)은 그런 그들의 신념을 증명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세계 최초로 전 국민을 번호로 식별하는 주민등록번호 부여 작업 때도 그랬고 유신개헌도 사실 그렇게 행정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IMF의 혹독한 주문을 액면 그대로 국민들에게 강요할 때도, 전 국토를 난개발의 도가니로 밀어 넣는 모든 국토개발의 사례도 그랬다. 수도 없이 바뀌는 크고 작은 교육제도와 조세제도, 교통행정 제도, 도량형 제도, 자전거 도로... 모든 것이 다 그랬다.

권력의 이동은 행정에 대한 저항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하면 우리 국민들은 줄기차게 그러한 힘의 압제를 싫어한 것이 분명하고, 긴 세월에 걸친 민주화 투쟁이 그러한 반증을 대표한다. 선거만 치르고 나면 권력이 뒤바뀌는 현상을 국민들의 이러한 밀어붙이기 행정에 대한 저항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합리적이지도 상식적이지도 못한 행정에 대항하여 이 나라 국민이 저항을 표시할 길은 투표를 통한 정권의 교체밖에 없지 않은가. 결국 그러한 불만을 이용한 정치적인 편 가르기의 기반을 만들어 준 것이 미숙한 행정의 책임이 아닌가. 그런데 이러한 과오에 대해 단 한 번의 반성도 없이 오늘도 계속되는 행정의 힘자랑을 지켜보면서 차라리 어이가 없다.

이미 지적 정리가 완성되었고 어디든 내비게이션으로 찾아가는 나라에서, 도시 개발의 지리적 환경과 역사가 다른 서양식 주소 도입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 이해할 수도 친근하지도 않은 도로명 주소를 졸속으로 만들어 막무가내로 들이미는 이유가 뭔가.

계산 근거도 알 수 없고 상식이 용납하지 않는 속도 제한에서 도로 표지까지 비과학적인 교통통제체계와 사고처리 체계 하나를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운전자들부터 잡고 보자는 배짱은 또 뭔가. 나쁜 운전자들을 편들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각 반응 속도와, 달리는 자동차의 관성의 법칙, 자동차의 기계적인 불완전성을 고려하여 과학적으로 신호체계와 도로 표시를 정비하고 난 다음이라야 일단 정지선 단속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법령의 규정들과 범사회적으로 부패한 사업 환경, 날로 증가하는 부과오류에 대한 심판 결과들을 제쳐두고 무더기 조사의 채찍만을 을러멘다면 당한 사람만 억울하다는 항변이 사라지겠는가.

동서고금 행정의 기준은 세상의 상식

모름지기 고금동서에 행정의 기준은 세상의 상식에 있고 그 목표는 모든 국민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있다.

아직도 자신들이 결정하면 곧 정의라는 착각에 빠져있는 행정을 볼 때마다 백성에게 편안한 조세제도를 만들기 위해 평생의 고뇌를 바쳤던 세종 임금의 현철함이 그립다. 물길을 매질로 잡겠는가. 우리의 행정은 영원히 조용히 도랑을 만들어 주는 방법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가. /하석용 공존회의 대표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