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도 결혼하면 다른 집의 며느리인데, 사위와 결혼한 내 딸은 소중하고, 아들과 결혼한 며느리는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간혹있다. 얼마 전에 처리했던 사건은 참으로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남편 누나의 소개로 만나서 교제를 하다가 성폭력을 당하고는 어린 나이에 임신하고서야 결혼했다.

성폭행으로 임신, 원하지 않는 결혼

연애시절 남편의 태도는 거칠고 폭력적인 성향이 있어서 혼인을 망설이기도 했다. 불과 십여년 전만 해도 여자는 일단 남자와 성관계를 맺으면 그것이 비록 강제적이라고 하더라도 으레 결혼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녀 역시 혼인 이외에는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다.

그녀의 결혼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도 맏며느리로 시부모와 세 명의 시누이, 시동생 등 아홉 식구의 밥과 빨래 청소는 물론 텃밭 가꾸기 등의 거친 일을 감당해야 했다. 아홉식구의 빨래는 매일같이 산같이 쌓였고, 세탁기가 고장나도 시어머니는 돈이 아깝다면서 고쳐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 겨울에는 손이 터져서 피가 가실 날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딸에게 결혼 전에는 손 끝에 물조차 묻히지 못하게 했다. 결혼한 딸들이 명절이나 제사 때 친정에 들르면 혹시나 시가에서 시집살이를 할까 전전긍긍하면서, 사위들에게 딸에게 잘하라고 닦달을 하는 사람이었다.

딸들을 하루라도 더 친정에서 쉬게 하려고 사위들에게 잘 하면서도, 며느리는 친정에 가려고 하면 식구들이 많아서 할 일이 많은 데 친정을 가려고 하느냐고 눈치를 주었다.

혹시 딸들이 사위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까봐 살피면서도, 아들에게는 결혼 초에 며느리 기를 꺾어놓아야 편하다면서 두들겨 패서라도 기를 죽여놓으라는 끔찍한 이야기를 했다. 아들의 구타행각을 말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추겨서 며느리를 괴롭히는 사람이었다. 옛 속담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아들의 폭력행위에 시어머니의 악담 섞인 역성은 그녀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듯이 상처가 돼 쑤셔댔다.

그녀의 남편은 혼인하고 몇 해 후에는 실직을 하고는 아이의 분유값이 없어서 친정의 도움을 받아야 하였는데도, 시가에서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남편이 벌지 못하면 아내라도 나가서 벌어와야지, 시가에서 살면서 생활비도 안 내놓느냐고 구박했다.

시어머니는 아들의 폭력을 부추겨

남편은 어찌어찌해서 도시에 취업한 뒤 분가했다. 그녀는 내심 이제는 시가에서 벗어나서 아이들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겠구나 기대를 했다. 그러나 그것도 꿈이었다. 남편은 주말이면 가족들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친구를 만난다며 나갔다. 그녀 혼자서 아이들을 돌봐애 했다. 남편은 그녀와 상의도 없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분가한 집의 열쇠를 건네주었다. 시어머니는 연락도 없이 수시로 찾아와서는 냉장고며 청소 상태 등을 점검하면서 그녀에게 집안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잔소리를 퍼부었다. 냉장고 음식을 보니 아들에게 밥 반찬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 것 같다면서 트집을 잡고 사소한 것까지 간섭을 하며 힘들게 했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도 한 푼이라도 벌어서 살림에 보탬이 되게 할 요량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은 그녀가 직장에서 간혹 회식이라도 하면 왜 회식을 다니며 늦게 들어오느냐고 트집을 잡아서 부부싸움을 일으켰다. 그녀는 직장일이 힘들어도 가정살림에 보탬이 된다는 기쁨에 참고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이 그녀의 급여 85만 원 중 65만 원을 가져가는 바람에 돈이 모이질 않았다.

또다시 아이를 임신한 그녀는 마음 고생이 심하다 보니 유산까지 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건강에 대한 위로나 염려는 커녕 그녀가 직장을 그만둘까봐 조바심을 내면서 ‘우리 아들이 혼자 벌면 너무 힘들다’라며 그녀에게 유산은 별 것아니라면서 직장생활을 하기를 종용했다. 결국 그녀는 유산으로 수술을 하고도 하루 밖에 쉬지 못하고 다음날부터 하혈을 하면서도 직장에 출근해야만 했다.

시어머니는 심지어 손주들 앞에서 조차 며느리를 욕하고 흉보다보니 손주들도 한편으로는 할머니에게 당하는 엄마가 딱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엄마는 나이 어린 자신들을 보호해 줄 수 없는 약하고 힘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인지 은근히 무시했다.

삶에 의욕 잃고 우울증까지 찾아와…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서러움을 당하는 것도 속이 상했지만, 남편에게 조차 사랑받지 못한 채 무보수 파출부 노릇을 하는 자신이 싫었다. 이제는 어린 자녀들에게 조차 무시를 당하고 보니 살 의욕도 없어졌다. 급기야 우울증을 앓았다. 시어머니는 우울증은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병이라면서 그녀에게 배가 불러서 그런 병이 생기는 것이라면서 더 구박했다.

그녀는 더 이상은 이러한 상황을 견뎌낼 수 없었다. 생명이라도 부지하려면 헤어져야 겠다는 생각에 상담을 하면서도 지난 세월들이 떠오르는 듯이 눈물을 흘리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심리학자들은 우울증의 시작은 애정결핍이고, 우울증의 끝은 자살이라고 한다. 그 시어머니도 딸이 있는데 그 딸이 결혼을 하면 남의 집 며느리이고, 남의 집 딸이 결혼을 해서 우리집 며느리가 된 것이었는데 그렇게까지 딸과 며느리를 구별해야만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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