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정치인들의 글쓰기가 줄을 잇고 있다.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다. 그들의 글 속에는 대개 그들이 살아온 삶과 지나온 정치 역정이 담긴다. 그러한 자신의 역사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인 신념과 그 실천의 방법론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것이다.

설사 어떤 과오가 있었다하더라도 그것은 좀 더 발전하기 위한 교훈적인 경험으로 미화된다. 자서전이라는 것의 속성이 그렇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위한 유서가 아닌 한 어느 누구라고 해도 자신의 정체를 부정하기 위하여 자신의 기록을 남기는 사람은 없다. 그 목적은 항상 오늘과 미래의 자신을 긍정하기 위한 것이며 스스로를 북돋우기 위한 것이다.

자신의 정체 부정위해 기록 남기는 경우 없어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나라들이 국사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국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외국인의 귀화의 조건으로 그러한 국사에 대한 이해도를 검증하는 나라들도 많다. 그 존재 형식은 국가 주도형, 개별 역사가의 저술, 구전(口傳), 설화형, 실증적 객관형, 등등 다양하게 많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대체로 그 국가의 존립과 번영의 정당성을 담아내는 것으로 채워진다.

특히 그 기록이 한 국가의 국민들을 집단적으로 교육시키는 목적을 가지거나 외국인들에게 한 나라의 정체성을 알리려는 목적을 가지고 제작될 때에 그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된다. 간혹 외부인의 시각으로 기록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내용이 그 국가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으로 일관하지 않는 한, 연구서로서 대접받을 수는 있을지언정 내국인들에 의해 국사라는 이름으로 채택되기는 어렵다.

요약하거니와 결국 국민 교육용 국사라는 것은 그 나라에 대한 자서전적인 긍정적 기록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굳이 부정적인 기록을 국민들에게 집단적으로 교육해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

국사나 국사에 준하는 설화들이 한 국민들의 정신과 나아가 그 운명에 끼치는 영향은 따로 증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개척정신으로 미화된 미국의 ‘필그림 파더(pilgrim father)’들의 신화나 전혀 소설일 뿐인 영국의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이야기가 그 나라 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설명이 필요한가. 일본이 야스쿠니의 전범들을 영웅으로 치환하려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 아닌가.

“1)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들어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2)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 무능, 악행을 들춰내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조선인 청소년들이 그 부조(父祖)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을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며, 3) 그 결과 조선의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史蹟)에 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어,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니 그때에 일본의 사적, 인물, 문화를 소개하면 그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 일본이 조선인을 반일본인(半日本人)으로 만드는 요결이다”라는 조선 총독부 강령으로부터 비롯한 일제의 조선역사 파괴의 시도(식민사관의 정립)가 지금까지 우리의 사회를 얼마나 좀먹고 뿌리를 흔들고 있는지를 여기에 일일이 열거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심지어 일부 역사학자라는 사람들까지도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신채호의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라거나, A. 토인비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 E. H. 카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라는 이야기들은 역사가 단순한 사실의 묶음이 아니고 대립되는 가치의 다양한 해석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심지어 “역사는 역사학자의 기술이다”라는 주장은 이제 어느 정도 통설이 되었다. 물론 역사학자가, 있었던 사건을 지워서도 안 되고 없었던 사건을 창조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러한 사건들의 원인과 결과를 해석하는 데에는 얼마든지 많은 자의(恣意)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사물은 무한한 다면성(多面性)을 갖고 인간의 언어는 언제나 부정확한 것이 인류의 운명인 것을….

대한민국 자존심과 번영을 위해…

이러한 조건 속에서도 우리의 자서전, 국사를 써야 한다면 그 당위성은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번영을 위하여’ 라는 것밖에 남지 않는다. 그런 시각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는 한민족사를 포괄하며 정통성을 잇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유산의 승계를 방해하는 집단은 반란세력의 지위를 가질 뿐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대한민국에 무엇 때문에 필요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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