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중반 여성이 ‘남편으로부터 이혼소장을 받았다’며 사시나무 떨듯 상담을 청했다. 그녀가 두려웠던 것은 남편과 이별이 아니라 친정 주소로 날아온 이혼소장이었다.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둘렀던 남편의 눈을 피해 10년 이상을 숨어서 살아왔던 터였다.

남편 폭력 갈수록 심해져 생명의 위협 느껴

그녀는 22살의 꽃다운 나이에 중매로 만난 청년과 백년해로를 약속했다. ‘아이들을 낳고 남편과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평범한 꿈이외에는 달리 이렇다 할 큰 꿈을 가져본 일도 없었던 그녀였다.

그러나 그 소박한 희망은 결혼을 한지 불과 몇 달도 지나지 않아서 산산이 부서졌다. 남편은 새 신부를 둔 채로 외도하기 시작했고, 버는 돈을 모두 술값과 유흥비로 탕진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싫은 소리라도 할라치면 남편은 그녀에게 여지없이 욕설과 폭력을 퍼부어댔다. ‘아이가 태어나면 남편의 폭력적인 성향도 고쳐지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며 견뎌냈다. 그녀의 뱃속에는 이미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녀를 셋이나 낳고도 여전히 남편의 지독한 폭력에 시달렸고, 생활비를 주지 않는 남편을 대신해서 방직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다섯 식구의 생계를 꾸려나가야만 했다.

그녀의 큰 딸도 초등학교만 졸업을 하고는 엄마와 같이 방직공장에서 일했다. 이렇게 그녀는 딸과 같이 악착같이 번 돈으로 남편 명의로 집까지 마련했다. 남편의 외도와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그녀는 오로지 ‘아이들은 내 손으로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신앙생활에 의지해서 버텨냈다.

어느 날 간신히 남편의 허락을 받아서 3박4일 동안 기도원에 다녀오게 됐다. 기도원으로 외출을 허락했던 남편은 ‘그녀가 기도원에서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러 갔다’는 트집을 잡고 ‘그 남자를 데리고 오라’는 등 있지도 않은 내용을 구실 삼아 추궁하고, 괴롭혔다.

남편은 무차별적인 구타를 하더니 급기야 그녀를 ‘죽이겠다’며 흉기로 위협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죽겠구나’하는 생각에 그녀는 112에 신고를 했고, 출동한 경찰관의 도움으로 여성쉼터에 몸을 숨겼다.

그녀는 그 후 10여 년간을 남편과 멀찍이 떨어져 주민등록도 말소된 채로 식당 주방 일을 하면서 죽은 듯이 살았다. ‘언제 남편이 찾아와서 해코지를 할까’하는 염려에 식당과 집, 교회만을 오가는 은둔생활을 했던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은 그녀의 친정집을 송달장소로 정해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딸과 함께 벌어 남편 이름으로 장만한 집을 달라고 요구까지 했다.

위치 노출 두려워 병원 치료조차 꺼려

‘올 것이 왔구나.’ 이혼소장을 받은 그녀는 변호사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남편에게 잡히면 목숨도 부지하지 못할 것이다’라면서 불안에 떨었다. ‘틀림없이 변호사가 선임된 것을 알게 되면 변호사사무실 근처에서 잠복하고 기다릴 것이다’라면서 변호사사무실에 오는 것조차 겁을 냈다. 그녀의 예측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이혼소장에 대한 변호사 제출 답변서를 받은 남편은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왔고, 그녀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졸라댔다.

변호사는 그녀가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려고 10여 년 전 그녀가 피신해 있었던 쉼터에 사실조회를 했다. 울화가 치밀 정도였다.

당시 그녀는 폭행을 피해서 쉼터에 입소한 뒤 열흘 정도 보호를 받다가 자녀들까지 불러서 가족회의를 한 끝에 ‘다시는 가혹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남편의 다짐을 받고서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러나 그녀는 퇴소 일로부터 불과 보름 만에 쉼터로 되돌아왔다. 남편의 폭행이 더욱 가혹해졌던 것이다. 그녀가 신혼시절이던 1970년대의 사회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남편이 때리면 아내는 군 말없이 맞아야만 했고, 동네 사람들도 부부폭력은 가정사라며 말리지 않았다. 경찰 또한 부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고를 해도 끼어들기를 피했다.

10년 이상 피해다니며 “살고 싶어요” 절규

때문에 그녀는 어린 자녀들을 생각해서 그저 구박을 하면 구박 당하고, 때리면 맞으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녀의 남편의 폭력성향은 혼인생활 35년을 하고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때리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폭력성도 점차 대담해지고 과격해졌다. 한번 맞을 때 얼굴을 비롯한 온몸 전체가 피투성이가 됐고, 그녀는 이윽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던 것이다.

두 번째 여성쉼터에 입소했을 때도 그녀는 남편에게 신변이 노출될 것을 염려해서 쉽게 안정을 찾지 못하고 두려움과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어지럼증이 악화돼 불편함을 호소하는 그녀에게 쉼터 측은 병원치료를 권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위치가 노출될 것이 두려워 병원 치료조차 꺼렸다.

현재 거처가 남편에게 알려지게 될 까봐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면서 숨어 지내고 있었던 그녀였다. 그녀는 폭력에 대한 공포와 학대, 무시, 구박이 없는 환경, 특히 남편에게서 벗어난 상태에서 ‘살고 싶어요.’, ‘살고 싶어요!’ 라며 절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변호사가 이러한 사정을 입증하자, 남편은 불리하다고 생각했는지 뜻밖에도 이혼소송을 없던 일로 하고, 되레 가정을 잘 꾸리고 살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다행히 법원은 그녀에게 이혼 결정을 내려줬다. 오히려 그녀를 이 지경에 이르게 만든 남편에게 위자료까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녀는 이제 너무나 당당해 졌다. ‘남편을 만나도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고 얼굴에 미소까지 띠었다. 65세의 그녀는 남편의 이혼소송을 받고서야 남편의 가혹행위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간의 인생을 무엇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그래도 남은 삶이라도 평안히 지내라고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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