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적 혼란과 분열의 시대에 독재는 매혹적이다. 하지만 철지난 독재의 찬양 대열 속에는 착각과 배신과 집착이라는 악덕이 마치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인물은 여포, 말(馬)은 적토마’라고 했듯이 삼국지 무대에서 용맹무쌍한 장수로 맨 처음 등장한 인물이 여포였다. 시대가 극도로 혼란했던 만큼 무장(武將)으로서 명성을 떨친다는 것은 권세에 가깝게 다가가는 좋은 조건.

여포 역시 그 방법을 택했다. 처음에 그는 병주자사인 정원의 양자가 되었고, 수도 낙양에서 외척과 환관들이 권력을 다투다가 함께 몰락한 후 정원이 낙양의 치안 책임자인 집금오 벼슬에 올라 낙양으로 부임했을 때 호위장수로 위풍당당하게 입성했다.

이 무렵 동탁도 병력을 이끌고 지방에 도피했던 황제를 호위해 낙양으로 들어왔는데 역시 야심가라 권력을 손에 쥐고 싶어했다. 당시 동탁 휘하의 병력은 대략 3천 명 정도. 낙양을 장악하기에는 크게 부족했다. 그래서 동탁은 매일 밤 2천 명 정도를 성 밖으로 내보냈다가 이튿날 낮에 입성시키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속였으나 아직은 힘을 휘두를 입장이 못 되었다. 결국 동탁은 여포를 꾀어 정원을 죽이고 그 휘하 병력을 편입시킬 계책을 세워 이숙이란 인물을 여포에게 보내 설득하게 했다.

이숙은 처음 당당한 도리로 여포를 자극했다.

“좋은 날짐승은 나무를 가려서 앉으며 어진 신하는 주인을 골라서 섬긴다 하오. 기회가 왔는데도 속히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나중 후회해도 소용 없소.”

여포는 용맹했으나 어디까지나 시골 출신 티를 벗어나지 못한 야심가. “형은 오랫동안 조정에 있으면서 많은 인물을 보았을 것 아니오. 누가 당대의 인물입니까?” 하고 덥석 달라붙었다. 황실에 충성심이 깊었던 선비형 정원 같은 인물보다는 권력욕이 넘치거나 폭력 성향이라도 기개가 넘치는 인물을 모시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숙은 쾌재를 부르며 동탁을 치켜세웠다.

“내 그 동안 많은 인물을 보아왔지만 동탁만 못 합니다. 동탁은 어진 사람을 존경하며 선비를 대우할 줄 알고 상벌이 분명하니 반드시 천하를 위해 큰 일을 할 것이오.”

여포는 앞뒤 가리지 못하고 호응했다.

“나 역시 동탁 대감의 위용을 보고 따를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연줄이 없어 한탄하던 참이외다.”

이숙은 계획이 척척 들어맞자 가져온 황금 덩어리와 옥으로 만든 허리띠 등을 뇌물로 내놓으며 본격적으로 여포의 야심과 탐욕을 자극했다.

“동탁 대감께서 그대에게 보내는 예물이오. 밖에 있는 천하의 명마 적토마 역시 그대의 용맹을 흠모하여 보낸 거요. 그리고 장차 높은 지위는 물론이지요.”

의리나 신의 따위는 하찮다고 여기는 여포인지라 입이 헤벌쭉 벌어지며 자진해서 “그럼 내가 정원을 죽이고 그 군사를 이끌고 가면 동탁 대감이 흔쾌히 받아들이시지 않겠소” 하니 이숙은 좋아라 하며 돌아갔다.

이튿날 여포는 약조한 그대로 동탁을 찾아가 절하며 정원의 목을 바치니 둘은 양부 양자가 되어 온갖 못된 짓을 다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작은 이익만 있으면 언제든지 의리를 헌신짝 버리듯이 배신하고 돌아서는 여포, 승냥이와 다를 바 없이 잔혹하고 거친 사나이 동탁은 궁합이 잘 맞는 듯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제멋대로 날뛰었다.

그들은 정치적인 목표나 비전이 없었음은 물론 권력을 어떻게 체계화하고 운영하느냐에 대해서도 아무런 개념이 없었다. 그날 그날의 기분에 따라 폭력을 행사하고 부하들에게는 금수나 다름 없는 짓거리를 하도록 시켰다. 반대파는 팔다리를 도려낸 채 끓는 가마솥에 집어넣는 만행을 즐거워하기도 했다. 강자(强者)인 자신들의 눈밖에 나면 저렇게 된다는 시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무법과 폭력 정치에는 피할 수 없는 함정이 있는 법. 폭력은 폭력을 낳고 공포는 연쇄반응을 일으켜 내부 분열을 가져오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이 아닌가. 여기에 조그만 틈새가 생기면 와르르 무너지는 것도 당연지사.

결국 왕윤이 이들 동탁과 여포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미인계를 쓰고, 여자를 둘러싼 둘의 갈등은 양자 여포가 양부 동탁을 죽이는 결말로 이어진다. 동탁이 죽고 잠시 정치적인 봄이 오는 듯했으나 이마저도 동탁의 옛 부하들에 의해 다시 세상은 공포와 무법천지가 되고 만다.

시대착오적인 권력, 이성을 상실한 지배자의 배신과 타락과 파괴는 역사에서 흔히 반복되는 현상이다. 어쩌면 기분 나쁠 정도로 유사하게 거듭된다. 이걸 역사의 순환론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나 반면교육(反面敎育)으로 삼지 않은 잘못으로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다.

독재와 공포정치를 찬양하는 것은 어느 시대나 있어 왔다. 어수선한 사회일수록 더욱 심했다. 하지만 그런 어둠의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미화시키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왜 그럴까? 아무래도 기득권의 향수도 작용할 테고 그런 짓을 통해 무엇인가 얻으려는 목적도 숨어 있을 공산이 크다. 더하여 이런 현상을 ‘유감스럽다’, ‘자제했으면 좋겠다’는 투의 목소리도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이다. 역사의 과오는 냉철하고 엄중히 규탄되어야 할 악덕이지 적당히 호도될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파괴의 미학이라 했던가. 무엇이 파괴되어야 할 것인지 새삼스럽게 따져봐야 하는 오늘이다.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