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대규모이고 장기간의 전쟁은 애국심이라는 명분만으로는 치러내기 어렵습니다.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익이 있다는 전망을 보여주거나 보상이 따른다는 설득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조지 워싱턴이 그의 한 지인에게 보냈다는 편지에 등장하는 문구다.

인간들이 저지르는 전쟁에는 대개 거창한 명분이 따른다. 흔히 역설적이게도 정의와 평화, 애국이나 애족, 심지어 평등과 자유, 인권 등 아름다운 이름들이 전쟁의 목표로 내걸린다. 그러나 그러한 명분과 전장(戰場)의 현실이 좀처럼 일치하기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대개의 병사들이 전장에서 겪는 심리적인 상황은 고상하고 이상적인 신념보다는 공포와 좌절, 회의와 도피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라는 것이 많은 참전 병사나 작가, 기자들이 남기는 기록들에서 확인된다. 그래서 오랜 인류의 전쟁의 역사는, 자기 방어에 나선 경우를 제외하고, 참전 장병들에 대한 보상의 약속으로 이루어져왔다. 왕을 비롯한 지휘관에게 있어 전쟁을 전후해서 어떻게 추종자들에게 밥그릇을 나누어 줄 것인가는 언제나 가장 중요한 과제였던 것이다.

나는 민주적인 선거라는 것을 본질적으로 전쟁의 대체물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러한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내전과 반란이 계속되었을 것인가. 말로 하는 전쟁 탓으로 세상이 노상 좀 더 시끄러워지기는 했지만 그만큼 피바람이 덜 불게 되었다는 것은 아무리 깎아서 평가해도 선거제도의 공로다.

문제는 이러한 선거제도가 승자 독식이라는 전쟁의 속성을 버리지 못하는 한 보상의 논리를 벗어나기 어렵고 결국 밥그릇의 분할이라는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라는 데에 있다. 제아무리 명망가라고 하더라도 선거전(選擧戰)에서 운동원이라는 전사(戰士)들의 도움을 받고 나면 거기에는 언제나 보상이라는 밥그릇의 문제가 따르게 된다.

이 사회가, 지지후보를 도와주고 선거가 끝난 뒤에는 기꺼이 객관적인 평가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이상적인 민주시민들만으로 구성이 되어있다면야 문제가 없겠지만 민주제가 도입된 이후로 동서고금에 그러한 사례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결국 어떠한 선거에서도 당선자의 권력은 그를 추종한 세력의 밥그릇으로 바뀌고 그들에 의해 분할된다. 인류의, 전쟁이라는 야만의 논리는 아직도 선거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렇게 끈질기게 이어지는 전쟁의 유전자는 명분과 현상의 괴리라는 파렴치의 영역에서조차 선거판에 그대로 유전되면서 좀 더 진화된 인간의 가능성을 믿는 순진한 영혼들을 병들게 한다. 언필칭 애국이고 경천애민이며 애향과 발전된 사회의 건설을 내세우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현장은 대개 집단의 밥그릇일 뿐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명분은 사라지고 밥그릇의 덜그럭거리는 소리만 요란하게 남는다. 이 나라는 유난히 그렇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고 이 도시도 그랬다.

인천의 권력을 자칭 진보라고 하는 세력들이 연합하여 접수한 뒤로도 이러한 야만성은 여전히 진보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상대가 하면 낙하산이지만 내가 하면 인재의 발굴이고 상대가 하면 위인설관이지만 내가 하면 사회발전을 위한 기구의 창설이라는 식의 변명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몇 푼이라도 예산으로 지원되는 자리치고 미리 내정되지 않은 경우가 없다고 하더니 이제는 그 자리들이 모자라서 소위 왕년의 동지들끼리 멱살을 잡는 모습이다. 역겹다.

먹고 생식하여야 한다는 생태계의 원형질을 부정하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기아(飢餓)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하는 식탐(食貪)의 본능을 집어던질 것까지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제 웬만해서 아사(餓死)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문명한 사회에서 벌어지는 밥그릇 다툼의 비참함을 바라보기가 민망하다.

진보된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시키기만이라도 할 요량이라면 갖춰진 실력이라도 보여주어서 명분과 밥그릇을 합치시키려는 노력이라도 하든지….

또 다시 밥그릇 개편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선거가 끝난 후에 절대로 밥그릇 분배에 줄 서지 않겠다는 선서를 한 운동원만으로 선거를 치를 후보는 어디 없을까. 선거판의 걸식(乞食)세력으로 세상이 어떻게 나아질 것인가. 지금은 조지 워싱턴의 시대가 아니고 선거운동원이 전사이어서도 안 되는 것 아닌가. 우리 모두 기개 곧은 조선 선비의 후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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