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나라가 이 모양인지...”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시중에 또 다시 온통 우국의 탄식이 넘친다. 물론 우리에게 이런 한숨소리는 전혀 낯설지 않다. 이 나라에 정당 정치가 도입된 이후로 국민들은 한결같이 이런 푸념을 해왔다.

나의 이 나라 정당에 대한 기억 속에는 어떤 시대에도 여당과 야당이 구순하게 머리를 맞대고 나라 걱정을 하는 모습이 없다. 언제나 “나만 옳고 너는 그르다”는 우격다짐의 추태만이 가득하고, 그래서 지금 내게, 민주주의는 원래 그렇게 시끄러운 것이라든지 사회가 다극화하고 투명하게 선진화하는 과정의 성장통이라는 따위 점잖은 변명들은 역겹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인간들끼리 함께 모여 합의하면서 살아가는 방법으로 설정된 것이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라면, 이와 같이 줄곧 합의를 원수처럼여기는 사회에서 무슨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것인가. 남의 권력도 인정할 줄 알아야 내게도 기회가 오는 것이 민주주의의의 권력순환의 논리이겠거니와 오직 자신들의 영구집권만을 꿈꾸는 집단들이 무슨 민주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왕이 가졌던 독재의 권력을 견제라는 명분으로 삼분(三分)하여 놓은 민주주의는 이견(異見)의 합의의 기능을 잃으면 독재만도 못한 무기력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 필연이다. 그런데 미련한 인간들의 탐욕이 합의에 이른다는 것이 워낙 동서고금에 어려운 것이어서 민주주의 제도 속에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수없이 많은 법령과 약속의 장치가 따른다.

그러나 절대 불변의 법령을 만든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인간사 중에는 법령만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들도 많아 민주주의는 마지막으로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장치를 준비하였다. 요컨대 사회의 최종적인 합의의 수단이었던 신정(神政)시대의 신탁이나 왕권시대 임금의 윤음(綸音)이 다수결의 원칙으로 대체된 셈이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의 정치판에서는 법령도, 어떠한 약속도, 심지어 다수결의 원칙조차도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리더십도 팔로어십(followership)도 성립하지 않는다. 오직 서로 간에 무한 불복이 있을 뿐이다. 그런 증거들을 이 자리에 새삼 열거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만큼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이 나라에서는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이러한 나의 진단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이 나라에는 지금 새로운 사회적인 합의 시스템을 앞세운 제3의 세력이 등장할 수 있는 여건이 성숙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데에 있다. 이 사회는 지금 또 하나의 새로운 혁명을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정도의 충격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누적된 사회적 모순과 갈등, 부조리, 불복의 무한대립을 어떻게 일거에 해소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막상 이 나라에 그러한 혁명적 전환을 담당할 세력조차 없다는 것은 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비극이다. 혁명이 필요한 시기에 혁명을 담당할 주체조차 존재하지 않을 때 그 사회가 갈 수 있는 길은 지리멸렬하거나 외부의 힘에 의한 강제적인 변화밖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와 조선 왕조를 비롯해 지구상에 명멸했던 수없이 많은 왕조들의 흥망의 역사와, 오늘의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 중남미의 많은 나라들이 그러한 증거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지금 이 나라는 어떤가. 아마도 이 나라에는 지금 이 두 가지 경우의 수가 모두 가능한 것이 아닌가.

경제는 사면초가인데 집안은 콩가루의 모습이고 머리와 옆구리에는 역사적으로 착각을 서슴지 않는 폭탄을 이고 끼고 살고 있지 않은가. 정말로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겠는가.

그래서 궁리한다. 혁명적인 결심으로 정면으로 이 난국을 뒤집어엎을 방법이 없을까. 개헌 논의를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헌법적으로 이 모순을 소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시끄럽고 오래 걸릴 것 같다. 그나마 초가삼간이 모두 불타버릴까 싶다.

국민대통합을 위한 한시적 특별법을 만들면 어떨까. 그래서 지난 대선에 이의가 있는 국회의원들은 현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는 국민투표 발의 의원으로 등록하게 하고 현 대통령은 가장 신속한 시간 안에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기로 하자. 대신 대통령의 재신임이 이루어진다면 발의 의원들은 국회의원직을 영원히 떠나기로 하자. 이렇게라도 다수결의 원칙을 살려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말 무언가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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