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그가 화내면 과격하게 돌변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30대로 주부로, 결혼 3년차에 23개월이 된 아이 엄마다. 이사를 하던 날, 그는 남편과 심하게 몸싸움을 했다. 급기야 112에 신고해 경찰까지 출동했다. 그후 집을 나와 사촌 동생네서 지내고 있다.

싸움의 발단은 별일도 아니었다. 그녀는 이삿짐을 정리하느라 피곤함에 지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늘 하던 습관대로 집안일을 돕기는 커녕 마시고 난 빈 맥주 캔조차 재활용품 통에 넣지 않고 싱크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이를 보고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서 잔소리를 해댔다.

남편은 남편대로 피곤하던 차에 아내의 잔소리를 그냥 들어 넘기지 못하고 대꾸를 했고, 말싸움이 급기야는 몸싸움으로 번졌다. 싸움은 점점 커져서 벽에 걸렸던 액자까지 박살이 났고, 집안이 난장판이 됐다. 아내는 감당할 수 없자 112에 가정폭력으로 신고했다. 경찰조사를 받게 된 남편은 자존심이 상해서 아들을 데리고 본가로 가버리고, 그녀도 사촌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남편은 효자 중의 효자다. 서울에 사는 어머니가 ‘형광등이 나갔다’고 전화하면 인천에서 득달같이 서울로 달려가서 교체해주고 올 정도였다. 어머니는 사소한 일에도 아들을 서울로 불러올렸고, 아들은 어머니가 부르면 무조건 가서 해결해주는 참 착한 효자였다.

그렇게 착한 남편이 한번 화를 내기 시작하면, 그렇게 끔찍이 생각하는 어머니조차도 말리지 못할 정도로 과격해지곤 했다. 그녀는 이러한 남편의 성격을 바꾸어 보겠다고 시도한 것이 오히려 화근이 돼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남편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니에게는 남편 역할까지 했다. 그런 남편이 이상하게 집에만 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는 궁금해 했다.

남편의 가계를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그녀의 시아버지는 시어머니에게 기억조차 하기 싫은 모습으로 있는 것 같았고, 남편은 시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금기시해 일체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아버지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아버지로부터 정상적인 사랑을 받고 자라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녀도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 그녀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과거에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wounded inner child of the past)’는 어린 시절에 술 먹고 행패부리고, 엄마를 때리던 아버지에 대한 상처이고, 그 상처는 그녀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쥐고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엄마에게 ‘이혼하라’고 권할 정도로 아버지 폭력에 대한 거부반응이 컸다. 그녀는 자라면서 ‘나는 절대로 엄마와 같은 모습으로는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녀의 남편은 친정아버지의 폭행 모습을 모방이라도 하려는 듯이 사소한 것에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폭행과 살림을 다반사로 부쉈다.

대개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들은 조용하고 착하고, 오랫동안 고통을 인내해온 사람들로 주위 사람에게 비친다고 한다(상처받은 내면아이, 학지사, 2005). 그러나 이 상처받은 아이가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폭력과 잔인한 일을 저지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 예를 우리는 히틀러에서 본다. 히틀러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상습적으로 매를 맞고 자랐다. 폭력적인 아버지에게서 인정받지 못하고 학대받고 자랐다. 이 아이는 결국 인류 역사상 죄 없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 가장 극단적인 잔혹 행위로 자신의 어린아이의 상처에 대해 분풀이를 했다.

가정폭력으로 ‘상처를 입은 내면아이’를 가지고 있는 그녀와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내면의 아이가 있는 남편이 이룬 가정에는 사랑과 행복을 키우는 에너지보다는 자신들의 상처받은 아이들에 의해 지배된 파행적인 혼인생활을 꾸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이렇게 사랑이 결핍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의 가정을 보면 서로 부부에 대한 신뢰나 순기능보다는 서로에게 불신과 상처를 줄 준비를 하는 불안감을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이러한 불안감은 작은 충격에도 금방 터져 나와서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내곤 한다.

처음 그녀를 상담하면서는 우선 그녀가 그런 환경에서도 이혼보다는 가정을 지키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정을 지키려면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분명히 변해야 한다. 설사 지금 같은 상황을 그냥 참고 견딘다면 이는 인내이지 문제 해결은 결코 아니다.

그녀는 남편과는 가능한 지혜롭게 사는 법을 배워서 이혼을 면하고 싶다고 했고,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싶어 했다. 그녀가 우선 깨달은 것은 결혼생활에서 무조건 남편을 이겨 먹으려고 했던 것이 자신의 실수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녀는 상담 회차를 거듭할수록 남편에 대한 이해와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고,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자꾸만 현실생활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어린 아이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그 아이를 인정해 주어야 현재의 자신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찬가지로 그녀는 남편의 상처받은 아이를 가능한 사랑해 주기로 하고, 그 방법으로 우선 남편의 입장에서 남편을 공감해 주고 배려해 주는 훈련을 시작했다. 그녀는 이러한 훈련이 시작되고는 남편이 일본으로 출장을 갔다는 소식을 듣고, 빈집에 가서 청소해놓고 시가에 가서는 아들을 데리고 와서 남편을 기다리기로 했다.

시어머니는 무조건 남편을 두둔하고 그녀를 심하게 야단을 쳤는데 그녀는 일단 시어머니의 역정에는 반응하지 않고 생활하기로 하고, 남편과 갈등을 순조롭게 풀어가며 살아가는데 초점을 두고자 노력했다. 이 노력의 결과로 남편과 사이는 상당히 좋아졌는데 특별히 변한 것은 없으나 일단 남편과 대화를 하면서 잘 지낸다고 했다.

우리는 본 대로 행하고, 배운 대로 베푼다. 어린 시절의 양육자로부터 받은 상처가 우리의 후손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부부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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