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WBA 여자 챔피언 도전

▲ 세계챔피언이 되기위해 신갑철(56) 관장과 땀을 흘리며 호흡을 함께하는 박혜수(25·WBA 랭킹7위) 선수. 김영국 기자 ykk1424@incheonnewspaper.com

가냘픈 체구의 그녀가 사각 링 위에 오르자 반사적으로 눈빛이 변했다. 권투선수들은 미트 칠때 상대방 얼굴로 생각하고 주먹을 날린다. 미트를 때리자 둔탁하면서 우렁찬 소리가 체육관을 울렸다. 흠칫 놀랄 만큼 거센 힘이 느껴진다.

다른 여자 선수라면 1, 2라운드 6분만에 포기하지만 그녀는 4라운드를 채우고 링에서 내려왔다. 미트를 대준 신갑철(55)관장도 구슬땀을 흘리며 가뿐 숨을 몰아댔다.

PABA(범아시아권투연맹) 여자 슈퍼플라이급(52.8㎏) 챔피언 박혜수 선수(25·성산 효 프로모션)는 11월19일 WBA 여자 세계챔피언에 도전한다.

21살 때 난생처음 권투를 접한 후 불과 3년(정확히 말하면 중간에 8개월을 쉬었다)만에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는 그녀를 두고 남들은 ‘10라운드를 잘 버티기만 해도 대단한거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권투 입문 한 달만에 프로테스트에 합격하고 두 달 후 데뷔전을 치렀다. 강적을 만나자 사람들은 KO를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고 2라운도 못 버틸 것이라고 했다. 끝까지 버텼다. 판정패였지만 상대선수와 코치는 ‘너 금방 크겠다’며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다.

현재까지 전적은 10전 3승(1KO) 6패 1무. 그녀는 늦깎이 선수에 기본기가 부족해 패가 많다고 자평했다. 또 ‘이제서야 권투를 조금 알 거 같다’며 ‘힘든 시간들이 다 지나갔구나’하는 생각도 해본다고 말했다.

그녀는 장거리(3천m·1만m) 육상선수였다. 인천체고를 졸업하고 육상특기생으로 부산외국어대에 진학했다. 장학금을 받았지만 2학년을 마치고 학교를 그만뒀다. 가세가 기운 집과 셋이나 되는 동생을 거들고 싶어서다, 지금 생각해보면 코앞만 보느라 멀리 보지 못한 철없는 행동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월급은 쥐꼬리였다. 마음은 허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때 권투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어느 날 인천체고 동기인 신동명(25·복싱 국가대표)에게 ‘운동을 그만두니 살이 찐다’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신씨가 ‘아버지의 체육관(성산효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라’고 권했다. 신 선수의 아버지는 1980년 동양챔피언(플라이급)을 지낸 전설의 복서 신갑철씨다.

육상을 할 때 출발신호로 쏘아대던 총소리는 지겨웠다. 트랙을 달릴 때 맡아야 하는 우레탄 특유의 고무냄새도 참 역겨웠다. 하지만 권투는 빠져들수록 신이 났다. 관장이 ‘잘한다 잘해’라는 칭찬도 힘을 북돋웠다.

▲ 그녀는 WBA 랭킹 7위로 멕시코의 세계챔피언을 상대로 시합을 앞두고 있다. 김영국기자 ykk1424@incheonnewspaper.com

지난해였다. 한국 타이틀매치 때는 강펀치를 맞아 이마가 찢어져 시합이 중단됐었다. 피범벅이 된 얼굴을 처치하는 데 뒤늦게 경기를 보러온 아버지에게 들키고 말았다. 부모는 ‘맏딸이 맞고 번 돈은 받을 수 없다’며 한사코 권투를 만류해 8개월을 쉬었다, 하지만 권투가 그리워 결국 다시 링 위로 돌아왔다.

신 관장은 아무 말 없이 곧바로 시합을 잡고 연습을 채근하는 걸로 그녀를 다시 받아들였다.

그녀의 직업은 두 개다. 낮에는 석남초교 육상부 코치다. 육상부 아이들의 시합을 준비할 때는 파김치가 되지만 막상 샌드백을 보면 마음이 달라진다.

“힘들지만 얻는 것도 많아요. 아이들 때문에 웃기도 하고,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것도 꽤 있죠.” 또 작지만 월급을 타니까 휴대폰이 끊기거나 차비가 없어서 뛰어다니는 일이 없어서 좋고, 집에 조금이라도 보탤 수 있어서 더 다행이라고 말했다.

암으로 위 전체를 절제한 아버지 얘기도 건강이 안좋은 엄마 얘기도 편안하게 꺼내놨다. 살다보면 겪어야 할 일, 미리 겪는 셈치면 너무 엄살 떨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이번 경기는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기회에요. 마음을 다잡고 있죠. 내 운명에 도전하는 거죠.”

도전을 위해 그녀는 체급을 미니멈급(47.6㎏)으로 낮췄다. 몸무게를 줄이는 일이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벌써 감량치를 맞추고 유지 중이다. 탄수화물을 지나치게 줄인 탓에 밤에는 배가 고파 잠이 오질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공복을 즐기며 ‘내일은 무얼 먹을까’를 고민하며 잠을 청한다.

신 관장은 그녀를 딸처럼 각별히 여긴다. 휴일 아침에는 단둘이 공원을 뛰고 아침을 먹는다. ‘내 며느리 하자’는 농도 걸고 ‘암 수술을 한 그녀 아버지의 건강’도 챙겨 묻는다. 그녀 역시 살갑다. 운동을 그만 둔 8개월 동안에도 신 관장에게 안부를 묻는 전화를 잊지 않았다. 사실은 보고 싶기도 했다.

신 관장이 딱 한번 미울 때가 있었다. 아버지가 암수술을 수술을 하고 나서도 폐렴이 와서 다시 수술을 했을 때다. 병상을 지키는 그녀를 심하게 나무랐다. ‘빨리 와라’, ‘운동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다그쳤다. 마음 해이해 질까봐 일부러 콕콕 찌르시는 줄 알면서도 많이 아팠다.

가끔은 악바리 근성을 키우기 위해 독한 말을 퍼붓기도 하지만 신 관장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해내는 그녀가 늘 대견스럽고 흐뭇하다.

“혜수는 나보다 독해요. 벌써 몸무게 맞춘거 봐요. 주먹도 더 세졌어요. 두고 보세요.”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두세대 퍼붓고 물러나 버려요. 더 때려야 하는데. 본성이 착해서 그래. 그것만 고치면 세계를 잡을 주먹이에요.” 누군가 그녀를 도와줬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권투만 전념하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다들 권투선수는 배고파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쉬이 후원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쟤 부모님도 대단한 양반들이에요. 내 자식도 키우기 힘든데 남의 자식을 딸로 삼았어요. 혜수 바로 밑에 시집간 동생이죠. 혜수 육상 후배였는데 어려운 처지에 놓이자 혜수 동생으로 맞았죠. 힘든 살림에도 ‘수저 하나 더 놓으면 된다’고 선뜻 받아들였대요. 보통 사람 마음으로 되는 게 아닌데.”

글러브를 벗은 그녀의 손은 작고 가냘팠다. 칭칭 동여맨 흰 붕대 위로 핏자국이 얼룩져 있었다.

“당분간은 권투선수로만 살래요. 챔피언이 되면 내가 행복하고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해 지겠죠. 여자 박혜수는 목표를 이룬 뒤에 찾을래요.”

알록달록한 귀걸이가 빛나는 청춘의 유일한 사치라면 사치였다. 사진을 찍기 위해 주무기인 스트레이트를 날리는 포즈를 주문하자 순간 눈이 빛났다. 독기를 품은 승부사의 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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