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혼란의 극에 달했던 난세에도 백성을 섬기고, 공정함을 생명으로, 의로운 길을 걸었던 인재들이 무수히 많았다.

아무래도 국민이 ‘졸’로 보여 조롱하고 싶은 모양이다. 요즘 국정감사장의 모습이 그렇다.

한쪽에서는 민주당이 ‘대선 패배 한풀이용 국감’을 꾀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새누리당이 ‘국감을 두려워하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하는데 여야 모두 민심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건 확실하다. 거기다가 국정원 선거 개입, 검찰 지청장의 증언 등등을 보면 아찔해진다.

국감이 뭔가? 행정부의 지난 1년간 직무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고 의회에서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제도 아닌가. 그런데 구태 만연이고, 시정의 범부들이 보아도 해괴한 일이 연일 속출했다.

누군가 ‘삼류 삼국지 무대’를 방불케 한다고 했다. 정부와 여당과 야당, 이 삼각구도가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책략에 빠져 허튼 공방으로 싸움을 일삼으니 나오는 비아냥.

그러니까 ‘박심’을 등에 업고 ‘바지사장’ 지도부에서 한 자리를 노리는 몸부림, 대선 패배 이후 ‘무뎌진 반대당의 칼날’을 감추려고 꼼수 공세로 일관하는 행태가 읽힌다는 의미겠는데 삼국지 무대에 그런 모습은 극히 일부일 터다.

격렬한 갈등과 혼란 속에서도 미래를 향한 고뇌가 있었다. 불법과 무지가 판치는 듯했으나 의기(義旗)도 힘차게 휘날렸다. 배신과 파괴를 일삼는 무리가 설쳤으나 나라를 구하고 백성들을 평안케 하려는 인재도 무수히 많았다.

예로부터 훌륭한 지도자는 좋은 인재를 참모로 거느렸고, 그들 역시 좋은 지도자를 찾아 섬기면서 대업을 이루도록 지혜를 발휘했던 것이다. 오늘의 행정부를 비롯 여야 지도부에 포진한 ‘바지사장’ 그룹이나 ‘땜방대표’들과는 격(格)이 달랐다.

조조 휘하의 책사 순욱은 관도대전을 앞두고 이런 말을 했다.

“예로부터 커다란 과업을 이루고, 못 이루고 하는 것의 이치는 이렇습니다. 실로 재능이 있는 사람은 비록 세력이 약하다 할지라도 장차 강해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비록 강하다 할지라도 반드시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지금 우리가 싸우려 하는 상대(원소)의 인물됨을 헤아려 보면 겉으로는 너그러운듯하나 내심으로는 사람을 꺼려 일을 맡기고도 그 사람을 의심합니다. 그리고 머뭇머뭇 망설이며 결단력이 없어 기회를 놓치기 일쑤입니다. 부하를 통솔함에 있어 느슨하여 명령 계통이 서지 않지요. 그런가 하면 명문 집안에 의지하여 은연중에 지혜로움을 꾸미려 하고 명예로움에 집착합니다. 그러므로 능력은 보잘것없으나 헛된 명성만 높은 자들이 그의 주변에 넘칠 뿐이지요.”

요즘 그 이름이 뉴스를 도배하다시피 회자되는 국정원장, 법무장관, 여당 대표 등 소위 현 정권의 실세라는 사람들 모두에게 순욱의 말은 뜨끔한 지적일 터다.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나 국회의장 선거 등에서 요직을 노리는 인물들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대선 패배 이후의 충격과 좌절에서 벗어나 생존의 길을 모색하는 야당 측 인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들부터 처절하게 성찰하고 뼛속까지 바꿔 더 나은 비전과 대안으로 강력하면서도 유연한 정당으로 발돋움하지 못한다면 1987년 민주화 이후 대선에서 패배한 정당들이 겪어야 했던 수난과 실패는 계속되지 않겠는가.

순욱은 상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그치지 않고 ‘정치 투쟁을 하려면 정의로워야 한다’면서 3대 강령을 내놓았다. “지금 저들이 그들만의 정치판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좋은 자리를 노리는 싸움이고 권력의 맛을 누리려는 몸부림, 이익의 재분배이자 자기들끼리 새롭게 짜려는 권세의 관계망으로 대의에 진력하는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가 말한 정치투쟁의 속성이다.

순욱의 3대 강령은 이랬다.

백성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야말로 최대한 시세에 순응하는 것이다. 즉 대순(大順)이다. 지극히 공정한 자세로 세상의 영웅준걸들을 복종시키는 것이 최대의 전략, 즉 대략(大略)이다. 의(義)를 받들고 넓혀서 영웅준걸들을 이르게 하는 것이 최대의 덕행, 즉 대덕(大德)이다.

대순은 지극히 높고, 대략은 지극히 공정하며, 대덕은 지극히 의롭다. 이 세 가지 강령을 가지면 높은 산이나 큰 강물처럼 웅장한 기세로 어디를 가도 정정당당하게 이기지 못하는 법이 없다. 설령 누군가 반대를 하고 문제를 일으키고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하더라도 그런 자들은 하찮게 날 뛸 뿐이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몰라 스스로 멸망을 자초할 것이다.

국감장에서 거론되는 지위 높은 인물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동시에 국민을 어리석게 보는 정치인들에게도 숙독을 권하고 싶다.

아무튼 지금처럼 난세나 다를 바 없이 난맥상을 노출해건만 적당히 시간이 흐르면 박근혜 정부의 인기가 되살아나 정국 주도권을 갖게 되리라 기대하는 쪽이나 반대로 불통의 이미지와 국기 문란의 비호, 공약 파기 등으로 민심이 자기 쪽으로 올 것이라 여기는 쪽이나 지금 같아서는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듯이 보인다.

복지국가의 완성과 남북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서 국민 앞에 떳떳한 대순·대략·대덕의 강령을 실천하는 인재는 어디에 있을까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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