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과 프랑스의 르아브르(Le Havre)

르아브르는 프랑스의 제2의 항구도시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인천과 비교되는 도시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도 맥아더의 상륙작전이 감행된 인천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르아브르는 우리나라와 여러 가지 인연을 맺고 있다.

우선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방송인 이다도시가 르아브르대학 출신이며, 한진해운과 현대해운과 같은 국내 굴지의 기업체가 르아브르에 지사를 두고 있다. 또한 작년 12월에는 인천항만공사가 인천개항이래 최초로 자매결연을 맺었던 르아브르항과 실질적 유대강화를 다짐하는 행사를 갖기도 했다. 인하대학교와 르아브르대학교는 10여년이 넘도록 매년 20여 명의 학생들을 상대교에 유학시키고 있으며, 교수진과 연구진도 활발히 교환하고 있다. 양 교의 이러한 학술교류 프로그램으로의 하나로 필자도 올해 지난 5월2일부터 16일까지 르아브르대학교 불문과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고 돌아왔다.

르아브르가 있는 프랑스로 가기 위해서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12시간정도를 서쪽으로 날아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극동에 위치해 있는데 반해 프랑스는 우리의 반대편인 서쪽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프랑스의 지역시간은 우리나라의 지역시간보다 8시간 느리다. 달리 말해서, 우리가 프랑스로 간다면 이론적으로 8시간 젊어지는 것이다.

르아브르는 프랑스 북서부의 노르망디 지방에 위치해 있다. 노르망디(Normandie)란 노르망(Normand)이 사는 땅이란 뜻이며, ‘노르망’이란 북쪽을 의미하는 노르(Nord)란 단어와 사람을 의미하는 ‘Man’이란 단어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노르망’이란 ‘북쪽 사람’이란 의미인데, 이 지역 사람들을 이렇게 부른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오늘날 복지국가의 모델로 간주되는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는 과거에 몹시 가난하고 살기 힘든 나라였다. 혹한의 긴 겨울 때문에 농업과 어업이 모두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해적질을 했다. 우리는 이들을 바이킹(Viking)이라고 부른다.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이들이 프랑스에서 노략질을 시작한 건 799년부터이다. 이들의 무자비한 약탈, 방화, 납치는 주기적으로 자행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일군의 덴마크 출신 해적 무리는 지금의 노르망디 지방을 점령해 파리까지 공격해오는 과감성을 보이기도 하였다. 가뜩이나 어지러운 정국으로 골머리를 앓던 프랑스의 국왕 샤를르 3세 르 생플(Charles III le Simple)은 911년 덴마크 바이킹의 족장이었던 롤롱(Rollon)에게 이 지역을 아예 할양하여 바이킹과의 전쟁을 종결지었다. 그리고 북쪽에서 온 바이킹들이 거주하게 된 이 지역을 노르망디라고 명명한 것이다.

이렇게 정착한 노르망디인들은 1066년 영불해협을 건너가 영국의 앵글로색슨족들을 정복해 버린다. 그리고 이 노르망디의 침략군 사령관이었던 윌리엄 공작은 앵글로색슨의 마지막 왕이었던 해로드 2세를 죽이고 영국 왕 윌리엄 1세로 즉위하였다. 소위 노르만 정복(Norman Conquest)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영국은 300년간에 걸쳐 노르망디인의 지배를 받았고, 영국 왕실과 귀족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오늘날 프랑스어와 영어의 약 60%정도 어휘가 동일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노르망디인의 영국 점령 초창기 때 앵글로색슨인들의 반항을 그린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로빈 훗’이다.

르아브르란 명칭은 ‘항구’란 보통명사가 고유명사화 한 것인데, 한 때 노르망디의 작은 포구였던 이곳이 프랑스의 제2 항구도시로 성장하게 된 것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롬부스 덕분이다. 그가 발견한 서인도 항로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전하던 16세기 유럽의 무역판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북서부의 유럽 상인들이 이탈리아까지 오는 대신에 좀더 가까운 네덜란드의 안트웨르펜 항구나 프랑스의 르아브르 항구에 가서 수출입 업무를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서양으로 직접 연결되는 르아브르항은 허브항으로서의 입지혜택을 톡톡히 본 것이다.

우리의 인천항 역시 인천공항과 더불어 동북아의 허브항으로 주도권을 잡기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덕분에 인천은 이제 국제도시로서의 위용을 날로 더해가고 있으며, Airport, Seaport, Teleport, Businessport, Leisureport를 연결한 Penta-port로서의 도시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인천은 유락시설도 많고, 언제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붐빈다.

그런데 프랑스 제2의 물류기지인 르아브르는 너무도 조용한 도시이다. 저녁 8시만 넘으면 거리에서 행인을 찾아보기 힘들며, 몇 개 되지 않는 선술집조차 텅 비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무지 국제적 항구도시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건전한 도시다.

도시가 이렇게 한적한 이유는 프랑스인들의 생활습관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18세기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유럽의 개인주의는 집단적 놀이문화를 퇴조시킨 반면, 가족적 규모의 놀이문화를 정착시켰다. 그래서 이들의 대부분은 친구들과 놀아도 집에 초청해서 논다. 술집을 어슬렁거리는 이들은 함께할 가족과 친구가 없는 사람들뿐이다. 사람들의 성향이 이렇다보니 술집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식당이 발달하게 되고, 가족 단위로 산책하기 좋도록 도시가 구성된다.

모든 놀이를 지나칠 정도로 술에 의존하는 우리와 가족단위의 휴식공간이 부족한 인천시가 어느 정도 모방해볼 문화적 측면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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