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여러 도시의 구 시가지를 여행하다 보면 옛 것들이 잘 보존되어있어서 볼 거리는 많지만 주민들이 현대적인 도시서비스를 충분히 향유할 수 있는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도심지역은 건물들이 서로 붙어있고 길이 좁기 때문에 일조나 조망이 불량하고 사람과 차량의 통행도 불편하다. 때로는 도시생활에 필수적인 일상기능을 수용할 공간마저 부족해 보일 정도로 비좁고 옹색하다.

그러나 도시 내에서 이루어지는 시민들의 활동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런 상황을 다소 이해할 수 있다. 즉, 그들은 도시공간의 무분별한 확산보다는 기성 시가지의 효율적 이용에 무게를 더 두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성시가지를 철거하고 새로이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공공공간을 보다 복합적이며 정교하게 재활용함으로서 도시의 특성도 살리며 현대적 도시서비스를 수용하고 있다.

파리시는 일찍이 대부분의 이면도로들을 일방통행화하여 교통흐름을 단순화하고 남는 공간을 주차공간으로 전환하였고, 노상주차장도 장애인차량, 일반차량, 오토바이, 공공임대 전기차량, 공공임대 자전거, 하역차량, 택시, 버스 등을 위한 주차공간으로 세분하고 있다. 심지어 버스의 내부공간도 이용계층의 행태나 수요에 따라 노약자석, 휠체어와 유모차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확보하고 있다.

보르도 시내의 가론강변 길은 세로로 분할되어 차량 외에 좀 더 다양한 교통기능을 수용하고 있다. 도로의 가장 바깥에 건물이 입지하며 건물로부터 도로의 중심까지 보행로, 자전거 도로, 차로, 주차장, 시가전차 승강장, 시가전차 궤도 등의 순으로 이용되고 있다. 도로의 나머지 반쪽도 마찬가지이다.

도시공간을 분할하여 특정 기능만 독점적으로 수용하는 것과는 반대로 시차적으로 동일공간에 다양한 기능을 수용하는 경우도 있다. 파리 제16구의 어느 광장은 작은 도로로 둘러싸인 주택가의 광장이다. 평소에는 비어있어서 주민들이 휴식, 주차 그리고 간단한 스포츠를 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화요일과 금요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신선한 식품과 생필품을 공급하는 야시장으로 쓰이고 주말에는 벼룩시장, 그림시장, 야외음악회 등이 개최된다. 시장이 끝나는 시간은 정확하게 지켜지며 폐장 후 바로 청소차량이 투입되어 평소와 같은 광장으로 되돌려 놓는다.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도시공간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도시기능간의 질서를 확립하여 경합에서 후순위로 밀릴 수 있는 필수기능들을 보호하거나 도시기능들을 복합적으로 수용하여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하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인천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어떤가? 과거 도시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던 시대에는 도시공간의 양적 수요 충족을 위하여 저렴한 땅을 찾아서 무분별한 시가지 확산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도심지역은 충분히 이용되지 못한 채 낙후되었고 외곽지역은 기반시설이 충족되지 않은 난개발이 일어나서 양 지역 모두 삶의 질이 악화되는 현상을 초래하였다. 도시개발 수요의 증가는 어느 정도까지 외곽지역의 시가지화가 불가피 하지만 도심지역의 충분한 활용이 전제되지 않는 시가지 확장은 도시전체의 균형적인 발전을 저해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도심의 공공공간이 양적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공공공간의 신규확보 노력보다는 기존 공간에 수용해야 하는 기능간의 질서를 확립하고 상호친화력이 있는 기능들이 복합적으로 입지하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도시공간을 활용하는 시민들의 의식수준과 준법정신도 도시공간을 복합적이고 정교하게 사용하는데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특정기능으로 지정된 공간에 대해서는 해당 기능으로만 사용하고 시차적인 토지이용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현재의 토지이용이 다음의 토지이용으로 전환하는데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한다. 결국 시민과 정부가 도시공간을 유한한 자원으로 인식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시가지의 무분별한 확산을 억제하면서도 필요한 도시기능들을 적재적소에 갖추는 것이 스마트한 도시발전의 첩경이다.

계기석  안양대학교 도시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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