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무단정치(武斷政治) 시대 중 최우의 집권기가 TV역사드라마를 통해 방영되고 있다. 극중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권좌(權座)는 본래 임자가 따로 없다하고 당시 무신정권의 최고 권부인 도방(都房)의 주인이 되려고 흑심을 품은 자들이 한 둘이 아님을 내비치는 장면을 시청했던 기억이 난다.

최우의 아버지 최충헌은 천민 출신이었던 권력자 이의민을 축출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최씨는 4대에 걸쳐 60여 년 간 정권을 잡았다.

제거된 이의민은 소금장수인 아버지와 여종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의 신분제도 상 이의민은 천민에 속했다. 이의민의 신분과 집권과정을 보아온 최충헌의 노비 만적은 난을 일으키며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어찌 원래부터 있었겠는가!”라고 외쳤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말의 시원으로 알려져 있다. 

최고 권좌 주인의 씨가 따로 있을 수 없겠으나 그 자리는 결코 아무나 앉는 자리가 아님은 분명하다. 나라를 이끌 지도력을 갖춘 사람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지금 경향각지에서는 연말 대선 주자로 일컬어지는 인사들이 자천타천으로 “언제까지나 잠룡(潛龍)으로 있을 수 없다”하고 하늘로 날아오르겠다며 벼르고들 있다. 

바야흐로 대선정국이다. 우리는 무자격자가 권력을 쥐면 잠시 집권은 할 수 있었으나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곤 했던 사실을 역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 그런 권력은 오래가질 못했다. 최후 또한 비참했다.

대권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면 민생은 뒷전이라는 말이 어쩌면 솔직한 표현일지 모른다. 표와 직결되지 않는 정책은 구상조차 용납되지 않는다. 안중에도 없다.

이것이 대선주자들의 속내일 게다. 하지만 국민들은 어느 것이 진정 국민을 위한 정강(政綱)인지 알고 있다. 우리가 선택한 지나간 역대 대통령들을 되돌아보면 모시한번 고르지 못하고 삼베만 골랐다가 후회하곤 한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우리 헌법 상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의 대통령은 왕조시대의 왕에 비유되곤 한다. 대통령에게 그 만큼 권력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이미 권력의 맛을 본 것인가. 내가 아니면 안 된다이다. 내가 아니면 누가 나라를 지키랴가 아니라, 내가 아니면 지존의 자리에 앉을 적임자는 없다고 한다. 대권 주자들 중에 진정 국가안위(國家安危),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모습들이 안 보인다. 

지금 정국은 연말 대선을 향해 흥행몰이가 한창이다. 대통령의 자리가 어떻게 인기를 얻어 앉을 수 있는 자리인가.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一紅)이라 했다. 이를 모를바 없는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국무총리를 지낸 인사, 권부의 최고 실권자라 할 수 있는 대통령 실장을 역임한 인사, 대학교수, 국회의원 등등이 나서 여전히 권력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며 최고가 되겠다고 나서고 있다.

권력을 향한 무한욕망인가. 이렇듯 너도나도 대통령에 출마하겠다고 한다. 가히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의 군웅할거(群雄割據)를 방불케 한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은 대다수가 퇴임 후에도 존경과 추앙을 받는다. 미국의 경우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는 날에는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들이 나란히 참석하여 취임식을 지켜보고 각자의 고향 등지로 비행기를 타고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한 없는 부러움을 느끼곤 했던 필자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그렇지가 못하다. 영 아니다. 심히 부끄럽고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전임 대통령들이 한자리에 나란히 있는 모습은 청와대에 걸려있는 역대 대통령들 사진 외에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주필 원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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