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민주적 절차를 훼손했는지 여부였다. 민주적 가치와 도덕성을 최우선시하는 진보정당에서 발생한 일이라니 처음에는 그저 의아하기만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진상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종파주의의 추악한 잔상이 양파껍질 벗겨지듯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정파(政派)의 이익을 위해 투표를 조작하고 폭력을 동원하고, 급기야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이름의 음모적 냄새 가득한 이른바 ‘배후’도 드러났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조직논리에 익숙한 이들에게 ‘공정한 규칙의 절차적인 제도화’라는 민주성의 원칙은 애초부터 안중에도 없었던 듯 보였다.

여론의 질타 앞에서도 이들은 반성이나 정치적 책임은커녕 ‘조직 보위’를 외쳐댔다. 정당활동을 마치 조직활동하듯 했다.

그러는 와중에 19대 국회 임기가 시작됐지만, 그들은 아직 버티고 있다. 심지어 자당(自黨)에서 조차 의원직 사퇴를 권고하고 제명에 출당조치를 내리려 하는 마당에도, 그들은 아직도 버티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여전히 공당(公黨)의 비례대표를 추천하는 데 왜곡과 조작이 가해졌다는 데 있지만, 국민의 시선은 이들의 소위 ‘종북주의’를 우려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하고 준수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가진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국민들에게 오히려 불안과 우려, 불신을 심어주고 있는 꼴이다.

치열한 냉전의 역사적 경험을 겪은 우리 사회가 이념 문제에 민감한 것만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계급 모순과 사회적 불평등 의제를 넘어 민족 모순을 이야기하고 친북(親北)에 종북(從北)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다.

구시대적이라는 국가보안법(國家保安法)이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憲法)의 가치와 그것이 규정하는 질서를 부정하는 이들이 대한민국 국회 의정활동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떤 경우라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색깔론’에 ‘매카시즘’이라고 애써 그들을 옹호하고 기성 정치권을 비판하려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정치적 라이벌을 근거 없이 옥죄고 탄압하려는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겉으로 드러난 문제의 양태는 분명 정당내 의사 결정의 민주적 절차가 훼손됐다는 데 있지만, 이제 문제의 본질은 헌법적 질서와 가치를 어떻게 수호할 것인가로 모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떤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기반해 주의 주장을 펼치고,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운동가였거나 활동가였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이 투표 조작과 왜곡을 통해 획득하려고 했던 것은, 공공과 다중의 이익과 이해관계를 조정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기본질서와 가치를 수호하는 입법권력이었다는 데에서 논점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한국전쟁이 정전(停戰)된지 60여년이 지났지만, 연평해전과 대청해전, 천안함과 연평도, 아직도 국지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봉건국가(封建國家) 북한이 3대 세습체제를 이어가도록 종전(終戰)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평화(平和)의 가치를 지향하고 민족(民族)의 단합을 염원하는 것과, 안보(安保)를 굳건히 하고 호국(護國)의 의미를 가슴깊이 되새기는 것이, 가치적으로 서로 다르지 않다. ‘제주해군기지’, ‘인천상륙작전기념공원’은, 평화의 가치를 부정하고 호국안보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종북주의와 색깔론, 깊은 우려와 염려속에 시작되는 19대 국회에 어깨가 무거워진다.

박상은  국회의원 (새누리당·인천 중동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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