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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라면 한 그릇과 걸인
귀가하는 길이었다. 도원역 앞을 지나는데, 내 앞에서 예기치 못한, 희한한 활극이 벌어진다.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청년은 큰 길을 건너 잽싸게 골목으로 달아나고, 누더기를 걸친 작은 청년은 소리소리 지르면서 쫒아간다.

“조금만 주란 말이야. 점심도 못 먹었어. 조금만 주고가.”

행인 몇이 걸음을 멈추고 나처럼 이 활극을 감상하고 있다. 목적을 달성치 못한 누더기는 낭패감 때문인지 힘 빠진 모습으로 돌아와 앉는데, 그 옆에는 두 사람이 더 있었다.

그 중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못 본 체하며 가려는데 “할아버지. 라면 한 그릇만 먹게 돈 좀 주세요.” 하는 투박한 목소리가 나를 붙잡는다.

‘라면 한 그릇’이라는 말이 내 마음을 흔들었나 보다.

오던 길을 되짚어 가, 호주머니에 있는 천 원짜리를 잡히는 대로 건네고 돌아섰다.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머리를 조아린다.

누더기 같은 옷은 말할 것도 없고, 세수를 하지 않은 저 얼굴 하며, 해어지고 뒤틀린 구두라니... 진창을 오래 포복하더라도 저보다는 나을 것이다.

문제는 저들이 저렇게 된 원인이다.

사회의 밑바닥을 헤매는 저들. 저들을 저렇게 만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본인들 책임인가, 아니면 정부의 책임인가. 대답은 대체로 둘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본인 스스로의 책임이라는 생각이다. 나도 여기에 무게를 두고 싶다. 몸만 건강하다면, 무슨 일을 못해 비럭질을 한단 말인가.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거나 극단적으로 게으른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긴 그렇다. 이 건조한 논리 앞에 누가 감히 반론을 제기하랴. 하지만, 저들의 불행의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가.

인간에게는 숙명적인,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불행이 얼마든지 있다.

어찌하여 그대는 스위스나 덴마크 같은 복지국가에서 태어나지 않고 분단 국가인 한국에서 태어났는가.

아프리카의 후진국에서 기아로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그곳을 선택했기 때문인가.

우연히 겪은 천재지변,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 사악한 인간의 농간에 의한 추락 등 여러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본인들 스스로의 책임이라면서 외면해 버린다면 경솔한 짓이 될 것이다.

둘째, 정부의 책임이라는 견해다. 정부는, 말할 것도 없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책임을 가진 기관이다.

그런 막중한 책임을 진 정부가 무얼하면서 저들을 저렇게 방치하는가.

도대체 사회복지비나 후생비 또는 소외계층 구제를 위한 예산은 어디에 쓰고 있는가. 물론 정부측에서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어디 돈 쓸 곳이 한두 곳인가.’

세계 최고의 부국인 미국에도 걸인은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많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무산계급 독재로 재산의 펑등을 구현하겠다는 공산국가, 곧 중국에도 걸인은 있다.

천당이나 극락세계가 아닌, 지구 상의 어느 나라에나 걸인이 없는 곳은 없으리라. 문제는 그 숫자에 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인 스스로는 재기하려는 결심을 하고, 정부는 과감하게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다시 일어서 보겠다는 결심과 정부의 지원이 손을 맞잡을 때 효과를 볼 수 있다. 어느 한 쪽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끝으로, 나는 사랑의 실천을 평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성직자들이 이들에게 좀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갈망한다.

‘라면 한 그릇’을 호소하던 그 걸인의 음성이 내 귓가를 맴돈다. ‘라면 한 그릇’...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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