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점가 신포동/번잡을 피해 골목길/후미진 목로집에서/홀로 대포잔을 기울인다//네온싸인 반짝이는/딴 세상 같은/대형 디스코텍을 바라보며/좀은 나이들어 외로와 뵈는/술집 아저씨와 대작을 하노니//매립의 화석지대/땅속 조가비들의 절규가 들린다//…> 의료시인 임평모의 ‘신포동에서’이다. 그는 다시 신포동을 노래한다.

가난한 문인들을 노래한 ‘또다시 신포동에서‘이다. 신포동에서 지고새며 노래하다 간 작고 시인들을 들먹인다.

하긴 신포동을 노래한 이가 임시인만은 아니다. 최병구도 손설향도 한상억도 신포동을 노래했다. 손설향은 “백항아리집”을 한상억은 “타지도 않은 목을 적시기 위해”를 되뇌인다. 그만큼 신포동은 컬컬한 목을 추기기 위해 찾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대폿집이 많았다. 그곳에서 문인들은 밤이 깊는 줄도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마셔댔다.

그래서 신포동은 밤이 없으며 잠이 없는 곳이었다. 밤이 깊었어도 잠이 없으니 그것은 밤이 아니었다. 서슬이 퍼럴 만큼 통금시간이 엄격했던 시절에도 어느 구석에선가 취한 아우성이 흘러나왔다. 밤이 새도록 2차 3차를 섭렵하고도 모자라 꼭두새벽에 아직 열지 않은 해장국집 빈지를 걷어차는-그래서 신포동에는 밤이 없었다.

그렇듯 시끌하던 신포동이 조용하고 불꺼진 밤이 된지 오래다. 정확히는 90년대말 유행의 첨단으로 진열되던 패션가로 변신하면서부터였다.

이전의 시끌하던 대폿집이나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신포일보’로 불리우던 다방들이 모두 옷집으로 바뀌면서 지금 신포동의 밤거리는 불빛만 휘황할뿐 조용하다.

대낮처럼 불밝히고 고성능의 스피커가 요란하지만 실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처럼이나 꽉 차 보이던 신포시장도 전같지가 않고 한산하다. 임시인의 싯귀 “매립의 화석지대”는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그런만큼 신포동 상인들의 몸부림은 차라리 눈물겹다. “옛 명성을 되찾자”느니 “신포동 발전추진위”를 발족시키겠다느니 하던 움직임이 다시 일고 있다.

최근 상가연합회의 신포권역 활성화 대책 공청회가 그것이다. 과연 신포동이 기지개를 펼 날은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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