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만 나면 시베리아등 세계 곳곳을 누비는 이우평선생(인천백령종고 지리담당)은 지역에서 알려진 여행가.

최근 이 선생은 세계의 지붕 네팔, 안나푸르나 남봉(SOUTH PEAK)를 10일간 다녀왔다.

이번 여행기를 통해 네팔 사람들의 삶과 종교, 자연과 신 등 그들의 생활상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본보는 이선생이 직접 둘러본 히말라야 설산의 산행기를 5회에 걸쳐 나눠 싣는다.



이 번 해외 기행은 평소에 꿈꾸어왔던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설산을 둘러보기 위하여 지난해 1월31일부터 2월9일까지 10일간 네팔 수도 카트만두 및 안나푸르나 산군 일대를 찾아 간 것이다.

여행을 통하여 인간, 자연 그리고 신, 이와 함께 삶과 종교가 일치된 네팔 사람들의 생활상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으며, 세계의 고봉들을 한 아름 담고 있는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를 직접 살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정식 국명은 네팔 왕국이며, 수도는 카트만두, 면적은 147천㎢, 인구는 약 2,212만 명, 종교는 힌두교 89%, 불교 7.5%, 이슬람교 3%, 언어는 네팔어를 사용하고 있다.

살아 있는 힌두교와 불교 문화의 유적지로서 특히 하늘이 열리는 세계의 최고봉들이 연집(連集)한 히말라야 산맥을 안고 있어 1년 내내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1월31일 새벽 5시에 서둘러 집을 나서야 했다. 연락한 콜택시로부터 소식이 없어 직접 챙긴 무거운 카고 백을 머리에 이고 택시를 잡아탔다.

어째 여행 시작부터 삐걱거리는 듯 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네팔에 이르는 중간 기착지 홍콩 공항에서 2시간을 넘게 연착했다.

홍콩에서 네팔 비행기 표를 구하여 갈아타는 데 애를 먹어야만 했다.

네팔의 국영 항공회사인 네팔 항공은 별도의 수속 데스크 없이 조그마한 TV 모니터 하나를 놓고 캐시 퍼시픽(cathy pacific) 항공의 곁방살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니터에 네팔 국기가 나오는 걸 보고서야 힘들게 수속을 마칠 수가 있었다.

국제 사회에서 약소국가의 설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4시간 넘게 비행하여 밤늦은 시각 11시가 넘어서야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첫날의 여정은 다소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동경해오던 이국 땅 네팔에서 무사히 첫날을 맞을 수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모든 여행에서 그렇듯이 첫날 밤 아침 잠자리는 눈이 일찍 깨이는 법, 정신이 너무 또렷하여 홍차 한 잔으로 이른 아침 새벽녘의 고요를 즐기고 있는데 창밖으로 마치 신의 나라임을 예고하듯 한 무리의 까마귀 떼가 울음소리를 내며 날아가고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늘 오전 일정에 잡힌 카트만두 시내의 부다나스(Budha nath) 사원과 파슈파티나스(Pashupati Nath)사원을 둘러보기 위하여 길을 나섰다.

호텔 앞에 늘어선 세계 각국의 차량들 사이로 우리 한국 차도 제법 눈에 띄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밝아 보이긴 하였으나 삶에 대한 열의가 그렇게 강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먼저 티벳 난민촌 거리에 위치한 티벳 불교인 라마교의 성지로 알려진 부다나스 사원을 찾았다.

많은 티벳 사람들이 스투파(탑)를 중심에 두고 오른쪽으로 돌며 기도를 드리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사원내부전경-사탑 맞은편 계단에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과 그 가족들이 기도를 드리며 영생을 기원하고 있다.

마치 티벳에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탑을 돌며 벽에 걸린 마네(mane)라고 하는 원통형 종(prayer wheel)을 돌리곤 하는데,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이 통에는 라마교의 유명한 성구인 ‘옴마니 반메홈(의미:당신의 거룩한 꽃 속에 나 온전히 안기나이다)’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 사원은 약 2000년 전에 건립된 것으로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 놓았으며 부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형상을 본 떠 탑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작은 불씨 하나씩을 들고 땅바닥에 엎드려 기도하고 그 앞으로 스님들은 쌀을 뿌려가며 신의 축복을 비는 모습을 뒤로하며 사원을 빠져 나와 다음 장소인 파슈파티나스 사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파슈파티나스 사원은 힌두교 최대의 성지로서 역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으며, 우리에겐 시체를 화장한 후 강에 버리는 곳으로 이미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사원 입구에서부터 무언가 태우는 듯 한 매캐한 냄새가 느껴졌다. 사원 입구에는 화장 의식에 쓰이는 꽃을 파는 아낙들이 쭈그리고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슈파티(짐승의 주인)는 시바신을 말하며, 힌두교도들은 이곳에서 재로 변하여 강에 뿌려져야만 시바신의 곁, 즉 천국에 간다고 믿기 때문에 인도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노인들은 죽을 때가 되면 이곳으로 와 기숙을 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기다린다고 하니 인도·네팔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들에게는 죽음이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삶 그 자체, 아니 그 이상을 넘어 신과 만나는 하나의 의식으로 성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성스러운 곳이다 보니 네팔 왕비도 일 년에 한번은 이곳에 와 목욕을 하고 물을 마시며 경배를 드린다고 한다.

죽은 사람의 재를 강에 뿌리고, 그 강물에 밥도 짓고 설거지, 그리고 목욕도 함께 한다고 하니 우리 방식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긴 하지만 힌두교도들에게는 갠지스강의 원류인 이강 또한 신의 축복인 셈이다.

화장 광경을 적나라하게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점심을 뜻밖에도 맛있게 먹었다. 오후에는 포가라로 이동하기 위하여 공항으로 발길을 옮겼다.




시바신의 제자인 사두(sadhu)- 하루 한 끼 식사를 하며 여자 생각이 나지 않게 대마초를 피울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을 소유한다.

공항으로 가는 도중 시내 곳곳에 무장한 군인들을 여러 차례 목격할 수 있었다. 최근 몇 해 전부터 네팔 전역에 걸쳐 공산당 마오이스트(maoist)들이 자주 침범하는 사례가 있어 주요 도시마다 공공기관 및 주요 건물에 경비가 삼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오후 일정에 잡힌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카트만두 도시에 대한 감상을 적어보면,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거리에는 각종 쓰레기와 오물이 넘쳐 났으며, 오리 닭 개 돼지 소 말 등 온갖 짐승들이 오가고 자전거, 오토바이, 그리고 각종 자동차 및 버스 등이 뒤엉켜 있었다.

여기에다 각종 노점상, 행상들과 수많은 보행자들이 정신없이 오갔다. 수도가 이런 모양이라니… 우리 생각으로는 쉽게 이해가 가질 않았다.

타임 머신을 타고 우리나라 60년 대 시골 도시의 풍경으로 회귀를 해야만 이해가 가는 광경이었다.

예정 시간보다 약 1시간가량 늦게 비행기에 올라 비행 시간 30분을 못 미쳐 포가라에 도착하였다.

비행 도중 창밖으로 멀리 세계의 지붕이라 일컫는 히말라야 산맥의 눈 덮인 설산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절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또 다시 차를 갈아타고 2시간 못 미쳐 달려 등산이 시작되는 나야풀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여기서 또 다시 1시간을 넘게 걸어서 목적지인 비레탄티 롯지에 도착하였다. 피곤함이 엄습해왔다.

식사를 마치고 총총하게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과 힘차게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에 취하여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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