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9개월의 교육청 생활 마감이 눈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교육계를 떠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인천시교육청의 ‘마당발’ ‘영원한 주사’ 유준우(58)씨가 오는 26일 정년퇴임식을 갖는다.

유준우 주사의 현 소속은 시교육청 교육지원과 홍보팀 지방별정 6급으로 사진촬영이 주요 업무다.

5급 사무관 이상을 해야 나중에 후손들이 쓸 지방(紙榜)에 ‘학생부군신위(學生府君神位)’를 면하게 된다는 공무원 사회의 뒷말도 있건만 그는 근 40년 경력에 6급으로 현직을 떠나는 것에 대해 별다른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다.

박봉이나마 상당기간 고용직으로 그를 거두어 주고 또 마음껏 일하도록 허락해 준 교육청에 감사하다는 말 뿐이다.

그래서 인지 교육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주사’가 아닌 ‘선생’으로 부른다.

사실 교육계에서 어느 교장이 어느 학교에 근무하는 지, 모 공무원이 어느 학교 출신인지를 알고 싶으면 인사부서를 찾기보다 유 주사에게 묻는 게 빠를 정도로 그는 많은 정보를 머리와 가슴에 담아놓고 있다.

하지만 한결 같이 변치 않는 부지런함과 사람 좋은 붙임성, 작은 체구에 늘 밝은 표정의 동안(童顔)이 상호작용을 해 나름대로 그를 잘 안다는 사람들도 그가 정년을 코앞에 둔 고령(?)라는 사실을 제대로 아는 경우는 흔치 않다.

“경기도 인천시 시절인 1967년 19살의 나이에 창영초등학교 내 인쇄소에서 촉탁으로 일을 하게 된 게 인천시교육청과의 첫 인연이었습니다. 창영초에서 한 4~5개월 일을 했는데 제가 일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당시 이 학교 이강민 교장이 교육장으로 가시면서 저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 교육청에서 발간업무를 맡게 됐습니다.”

40년 전에는 학교 내 인쇄소에서 활자 인쇄를 했다고 하니 컴퓨터 전자 결재가 일반화된 요즘의 학교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시절의 이야기다.

충남 당진 출신으로 가정 사정이 여의치 않아 많이 배우지 못하고 1961년 인천으로 올라왔다는 유 주사는 사진촬영을 정식으로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그 어렵던 시절에도 집안에 카메라가 있어 오늘의 사진 기사가 될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현 유명 코미디언인 이혁재씨의 부친 이강희씨, 아직도 현역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박근원씨 등이 당시부터 사진을 같이 찍던 사람들이다.

30여 년 전에도 교육 관료들이 시청각 자료 및 영상자료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점은 기록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있는 현대인들이 되새겨봐야 할 부분이다.

유 주사는 이미 1978년에 인천교육을 화면에 담은 8㎜ 영화를 직접 제작했었다며 열정을 갖고 일하던 당시를 자랑한다.

그 때부터 많은 교사들이 과학전람회나 교육자료 전시회 출품을 위해 도움을 청했을 정도로 촬영 솜씨를 인정받았다.

요즘이야 사진 기사들이 디지털 카메라 한대 만 들고 다니면 그만이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유 주사는 흑백, 칼라, 슬라이드 필름을 넣은 3대의 카메라를 준비하고 있어야 했다.

암실에서 사용하는 약품과 확대기의 열기 때문에 실내 온도가 40℃에 육박하는 가건물에서 땀흘리며 근무하기도 했다는 유 주사는 요즘의 사진기자나 사진 기사들이 많이 편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단지 교육관련 사진을 찍고 인화·현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진을 각 언론사에 전달하는 것까지가 그의 업무였던 시절도 있었으니 인천교육 홍보의 시작과 끝이 그의 발에 달려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유 주사가 인천시교육청에서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어김없는 출근시간 때문이다.

시간외 근무 수당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기기 전부터 그는 30년이 넘게 오전 5시50분까지 교육청에 도착, 신문 스크랩을 해왔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기관이 신문스크랩을 하고 스크랩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까지 생겼지만 홍보의 개념이 제대로 도입되기도 전에 유 주사는 새벽에 나와 교육과 관련된 각종 기사를 정리해 윗분들에게 보고했다.

또한 해당 기사가 나간 학교 등에도 자료를 전달, 잘못이 지적된 사항을 시정하고 자랑할 것은 더욱 널리 알리도록 권장했다.

“한 때는 과별로 잘못된 기사가 나가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지요.”

유 주사는 경험상 오보가 나가는 주요인은 취재원이 기자에게 제대로 설명을 해 주지 않기 때문이라며 공무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면 숨기기보다는 상대방을 잘 이해시키고 사실대로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교육청이 단발성 행사기사보다 교육정책을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기획 기사 자료를 많이 만들어 학생,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에게 인천교육의 방향을 바로 전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요즘도 각 행사장에서 찍은 사진을 전자우편 등을 통해 해당 학교나 교사에게 전달, 역사의 한 페이지로 간직하도록 힘을 쏟고 있다.

유 주사는 자신이 평생을 바쳐 찍은 사진 자료들을 가장 중요한 보물로 여기고 있다.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의 사진첩과 파일로 보관돼 있는 교육 자료가 인천교육의 앞날을 제대로 밝혀주는 등불로 거듭 태어날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가 전자화되면서 전파력은 강해졌으나 많은 정보가 제대로 보관되거나 저장되는 것 같지 않아 오히려 ‘풍요속의 빈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자신이 찍은 수많은 사진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보관될 수 있을지 불안해하는 눈치도 보인다.

지금까지 자신이 지근거리에서 사진 촬영을 했던 교육장과 교육감의 이름을 줄줄이 풀어놓는 유 주사는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김천홍 전 교육위 의장을 가장 기억에 남는 교육계 인사로 꼽고 있다. 그 어른의 진심어린 충고가 지금도 자신의 삶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횡단보도가 아니면 절대 길을 건너지 않아 친구들이 그와 함께 길을 걷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할 정도의 원칙주의자기도 한 유 주사이기에 그는 사회선배로서 가끔은 직급상의 윗사람이나 기자들에게도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연수구 지역 한 아파트 단지의 입주자 대표 회장으로서의 그의 활동을 들어보면 결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후배 공무원들에게는 ‘교육 분야의 전문가가 될 것’을 주문한다. 어느 자리에서 일을 하든 거쳐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맡은 일에 대해서만은 최고 전문가라는 평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또한 남을 배려하는 자세를 잃지 말 것을 당부한다.

유 주사는 퇴임을 앞두고 인천 교육에서 기억될만한 사진 80여 장면을 담은 화보집 발간에 여념이 없다.

“그동안 매일 찬 새벽 출근과 늦은 퇴근으로 제대로 남편 역할을 못했던 만큼 이제 집사람과 여행이나 마음껏 다녔으면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생생한 그의 표정을 보면 인천교육 홍보를 위해 그가 할일이 더 남아있는 것만 같다.
김기준기자 gjkimk@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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