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5체를 일컫는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그 중 어느 한 서체에 통달하는데만도 수 십년 세월이 걸린다는 말이 과장되지 않을 만큼 깊고도 먼 것이 서예의 길이다.

인천의 한 중진 서예가가 열고 있는 ‘30서체 천자문전’이 국내 서단의 집중적인 조명과 관심을 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심은 천자문전’.

인천시 강화군 출신인 심은 전정우선생(57·강화군 하점면 이강리 심은미술관 관장)이 지난달 25일부터 서울 부남미술관에서 열고 있는 전시에는 서단의 주요 인사들을 비롯한 사회 각계 인사와 후학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 작가가 무려 30가지 다른 서체로 천자문을 쓴 경우가 세계 서예 역사상으로도 알려진 바 없는데다, 작가의 내공의 깊이가 서체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심은 선생을 만나 30서체 천자문전의 의미와 그 준비과정, 앞으로 계획을 들어봤다.



-‘천자문’을 전시 주제로 삼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천자문은 말 그대로 각기 다른 천가지 글자를 모아놓은 책입니다. 서예인들로서는 그만한 좋은 글감이 없지요.

하지만 의외로 명필로 이름을 떨치신 분들도 천자문을 쓴 예는 드물어요.

그 만큼 어느 경지에 올랐다 해도 특별히 마음먹지 않으면 천자문을 자신의 서체로 남길 기회는 많지 않다는 점이죠.

저는 2년여전 공부하는 마음으로 천자문을 택했습니다.

각 서체로 천자문을 쓰면 많은 도움이 되겠다싶어 전, 예, 해, 행, 초서 등 널리 알려진 서체부터 천자문을 써나갔지요.

다음엔 목간체(나무나 대나무 등에 쓴 서체), 종정문(鐘鼎文 : 중국 은나라·주나라 때, 쇠붙이와 그릇붙이 따위에 새겨져 있던 고문(古文)) 등으로 범위를 넓혀나갔지요.

결국 10체, 20체, 30체까지 엄청난 분량으로 늘어났고, 주위의 권유로 전시를 열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92년 개인전 당시 시대별 주요서체로 쓴 작품을 발표해 화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당시와 이번 전시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92년과 96년 개인전에서 선보인 서체는 20체였죠. 내용도 천자문이 아니었구요.

서예를 익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새로 발굴되는 서체나 특이서체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0여년전에는 익히지 못했던 갑골문 등에 새로이 도전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 글자들은 워낙 오래전의 문자라, 현재 발굴된 자료만을 바탕으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천자문의 천개 글자가 갑골문자로 다 있을 수 없지요. 제 필의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글자는 갑골문으로 이렇게 썼을 것이다’하는 제 나름의 오랜 연구 결과를 토대로 글자를 만들었지요.

즉 그 서체에 서풍(書風)이 맞도록 모색을 했어요. 잘하고 못하고는 후세의 평가에 달려있겠지만 최대한 각 문자의 특징을 살려가며 만들어 썼기 때문에 후학들의 공부·연구에는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시대별로 한자가 어떻게 변화발전해왔는지 흐름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지요.

-30서체가 큰 글자, 세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시되었군요.

▲처음에는 펜으로 초고를 만들었어요. 천자 중 비어있는 글자를 만들어 채워가며 원본을 만든 거지요.

각각 15㎝ 크기의 큰 글자를 4자씩 쓴 한지를 책으로 묶으니 30권(서체별)이 나왔습니다. 그것을 또 서체별로 세필로 써 한 눈에 시대별 천자문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천자문 문구 중 오늘날에도 유익한 문구나 글자를 뽑아 창작품도 내놨습니다.

어떤 분이 따져보니 2년여 만에 이만한 분량을 쓸려면 1주일에 천자문 1체씩 쓴 셈이 된다고 하시더군요.

강화 미술관과 종로 서실(심은서실)을 오가며 정말 촌음을 다퉈 작품을 완성했습니다만, 그 양보다 질적으로 승화된 작품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요.

단지 남에게 보이기 위해 글씨를 흉내내는 수준에서 그친 것이라면 아무리 많은 작품을 낸들 스스로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제 작품에 대해 많은 분들이 호평을 해주고는 계십니다만, 앞으로 더 많은 정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선생의 제자인 이남례씨는 ‘전시장을 찾은 서예계 중진 및 각계 인사들은 천자문을 30서체로 쓴 이번 작품들은 그 희소성이나 수준면에서 값어치가 매우 크다며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삼성리움미술관 같은 유수의 시설에서 상설전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전했다.)

-서체가 무려 30종류라니 감히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힘든데요.

▲글자의 세계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비슷해 보이는 글자도 자세히 살펴보면 획의 끝 처리나 꺾임 부분이 확연히 달라요.

같은 음의 한자도 시대에 따라 모양이 완전히 다르죠.

임금의 도장(옥새)에 쓰던 글자와 일반인이 쓰던 글자, 진시황이 도량을 통일한다는 의미로 쓴 글자, 벽돌이나 화폐에 쓰던 문자, 솥이나 돌에 새긴 문자 등 인류 역사와 함께해온 문자를 연구하다보면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됩니다.

저 역시 그 마력에 빠져 다니던 직장마저 그만두고 서예에 전념하게 된 것 아닙니까. 하하.

-직접 운영하시는 강화 심은미술관에서도 전시할 계획이 있으시지요.

▲그렇습니다. 수요일(13일)까지 이곳 전시를 마치면 12월16일부터 내년 2월말까지는 심은미술관에 작품을 걸 것입니다.

강화에 앞서 서울 전시가 있었던 것은, 새로 문을 연 부남미술관 홍춘표 관장의 권유와 배려때문이었는데, 이제 제 고향인 강화에서 인천 분들을 맞아야지요.

다만 심은미술관은 장소관계상 이곳에서 전시하던 전 작품을 다 걸 수는 없어 아쉽습니다.

-새삼 선생님의 쉼없는 열정과 도전의식에 놀라게 됩니다. 서예인으로서 삶,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주신다면.

▲앞서도 말씀드렸듯 서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제 인생을 송두리채 바꾸어놓은 획기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한번도 이 길을 후회해본 적이 없어요. 갈고 닦을수록 부족함에 고개숙여지고, 더 겸손하게 전력해야 한다는 각오와 다짐이 생기곤 합니다.

천자문 역시도 이번이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도 새 천자문을 써나가는데 온 힘을 쏟을 것이며, 저만의 필의를 살려 더 나은 천자문을 쓰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그 창작의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은 길이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해보고 싶습니다. 손미경기자 mimi4169@i-today.co.kr

〈심은(沁隱) 전정우 선생은〉

◇이력
▲강화군 출생 ▲연세대 화학공학과 졸업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근무

◇사사(師事)
▲한문 - 해오 김관호 선생 ▲서예 - 여초 김응현 선생 ▲전각 - 구당 여원구 선생

◇주요 수상경력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 특선(85) ▲동아미술제 서예부문 미술상, 전각 특선(87)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예부문 대상(87) ▲국제서법대전 서예우수상, 전각 은장(94) 등 다수.

◇주요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전(89) ▲중국 건륭박물관 서법전(91) ▲제1회 개인전(92)~제4회 개인전(2006) ▲서울 정도 600년기념 서예대전(94) ▲국제서법교류전 동경대전(95) ▲한국서예의 오늘과 내일(96) ▲세계서예비엔날레 초대전(97)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전(98)~ ▲상해당대중국서법명가 국제요청전(99) ▲퇴계의 시문과 서예의 만남전(2001) ▲한중일 대표작가 30인전(2005)외 다수.

◇현재
▲강화 심은미술관(www.simeun.org, ☎032-933-0964) 관장 ▲심은서실 운영 ▲국제서법예술연합 이사 ▲한국전각학회 이사 ▲고려대 교육대학원 서예최고위과정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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