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의 마지막을 이곳, 장수초등학교에서 마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부모가 돈이 없다고 그 자식까지 가난한 것이 아니며 옷을 허름하게 입었다고 그 사람의 인격까지 허름한 것은 아니지요.

어려운 분들이 많이 사는 곳이어서 인천의 어느 초등학교보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학생들이 많지만, 그 어린 제자들과 함께한 지난 1년여는 40년이 넘는 제 교사생활의 백미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소중했습니다.”

인천장수초등학교 방만자 교장. 장수초교 어린 제자들과 지내온 시간을 얘기하며 언뜻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교장 승진 후 첫 발령지인 이 학교에 방 교장은 유달리 애착을 느꼈다.

“돈이 없어 졸업여행을 포기한 6학년생이 40명이 넘는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어요.

친구들은 들떠서 버스를 타고 떠나는데 그 뒤에 남아 슬픔에 잠길 아이들을 그냥 볼 수 없었어요.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후원금을 모았습니다. 부모들이 먼저 동의하지 않은 일인데 만일 좋지 않은 일이라도 벌어지면 어떻게 책임을 지려느냐고 주위에서는 모두 말렸습니다.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어요. 다들 즐겁게 다녀온 걸 보니 내가 더 기쁘더군요.”

지난달 이 학교에서는 ‘지역사회기관 프로그램 연계를 통한 방과후 학교 활성화방안의 시범학교 운영보고회’가 열렸다.

방 교장을 중심으로 한 교사들과 학생들의 하나된 마음이 만들어낸 독특하면서도 알찬 보고회도 보고회였지만, 완전히 달라진 학교 풍경도 화젯거리였다.

손수 시장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학교 곳곳 버려진 땅을 아름답게 꾸미는 솔선수범이 교사들의 적극성을 일깨우고 제자들의 스승사랑을 불러왔다.

생활에 매여 아이의 학교일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부모들도 서서히 변했다.

‘제자’를 최우선에 두고 모든 일을 처리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부모들의 관심과 참여는 높아졌다.

‘인천 교육계에서 방만자를 모르면 간첩이란다’ ‘옳은 말이지만 너무 직설적으로 말을 하는 사람’ ‘천사같은 선생님’ ‘여왕벌’. 방 교장에게는 수많은 별명이 따라다닌다.

그만큼 자기주장과 교육철학이 뚜렷하고 교육열이 강한 교육자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천 교육계 첫 여성 연구부장·교무부장, 인성교육 전국 1등급, 탁월한 무용연수와 지도로 받은 문화부장관상 등 화려한 이력은 교사 누구나 채울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의 교직 40년이 어떠했는지 알게 한다.

“아이들 일이라면 내 돈 쓰는 것도 아까워하지 않는 분이지요. 가난하다고 친구들에게 따돌림받는 한 제자에게 새 옷을 사 입히고 목욕을 시키고 머리를 깎아주는 등 정성을 쏟아 다시금 환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는 일화도 들었어요. 추운 곳에 아이들 세워두는 것도 용납하지 않으시는, 속정 깊고 따스한 분이시죠.” 이 학교 김정선교사의 말이다.

‘다시 내 인생을 시작한다면 남을 더 이해하는 눈을 갖고 싶다. 내 주위 모든 사람을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는 법부터 배우고 실천하고 싶다.’ 내년 2월이면 교직을 떠나는 방 교장은 요즈음 회고집에 실을 글을 정리하며, 지난 42년 참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손미경기자 mimi4169@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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