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정왕섭 부평농협조합장

지난달 실시된 제14대 부평농협 조합장 선거에서 3선에 도전한 정왕섭(63) 후보가 60.9%의 표를 얻어 당선됐다.

지난 2003년 어려움에 처한 부평농협을 맡았던 정 조합장은 다시 2015년 3월까지 부평농협을 이끈다.

그동안 정 조합장은 부평농협을 본 궤도에 다시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앞으로 그는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는 농협으로 만드는데 온힘을 쏟을 계획이다.

그의 고향은 계양구다. 그의 선조들은 파주 금촌에 살았다. 300여년 전 10대조가 이 지역으로 옮겼다.

이 때문에 정 조합장의 인천에 대한 애착과 사랑은 남다르다.

예전 계양구는 대부분 농촌이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도 농사일을 보고 배웠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서울로 진학을 했다. 아버지가 서울에 근무했고, 친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공부를 했지만 방학 때는 고향에 와 농사일을 도왔다. 당시 그의 집안 농사일은 고모부가 맡았다.

“농사일을 하지 않아도 됐지만 집안의 큰 아들이라는 책임감이 작용했는지 열심히 했습니다. 힘들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그는 학교를 마치고, 군대를 다녀온 후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고향으로 내려온 그는 누구보다 농사와 지역 활동에 적극 나섰다. 물불 안 가리고 일을 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3만3천여㎡ 규모의 논과 밭농사를 지었던 그는 1975년 조합에 가입했고, 1980년 영농회장을 맡았다. 또 통장, 새마을지도자로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그의 이런 진심이 담긴 노력은 사람들에게 점차 알려졌다.

지방자치제가 부활할 때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정치를 권유했다. 그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집안, 특히 부인의 반대가 심했다. 출마를 할 때 부인을 속인 것이 그의 마음에 짐이 됐다.

그러나 농촌과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1991년 기초의회에 처음 진출한 그는 재선에 성공해 계양구의회 의장을 지냈다. 그는 의원 활동 동안 미력하고,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농촌과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는 구의원이 아닌 구청장으로 더 많은 봉사를 하고 싶었다. 구청장에 도전했지만 쓴 맛을 봤다.

선거에 실패했다고 농협 일에 대한 관심도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당시 부평농협은 너무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정치를 집안에서 좋아하지 않은 상황에서 젊었을 때 가입한 부평농협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이 상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조합장직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그는 2003년 첫 조합장 도전에 성공했다. 조합장직을 맡았지만 무슨 일을 먼저 할지를 정하지 못할 정도로 자신은 물론 부평농협도 혼란스러웠다.

부평농협은 전국에서 손에 꼽히는 규모가 큰 농협이었다. 특히 인천에는 최고의 농협이었다.

잘 나가던 부평농협은 1990년대 중반부터 위기의 조짐이 나타났다. 그러나 누구도 인식하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조합장이 된 그는 오래 전부터 쌓여 풀기 어려운 많은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했다. 부평농협의 정상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찾았다.

부평농협의 주인은 조합원들이지만 이들의 관심은 부족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그가 선택한 방법은 각종 교육이었다.

교육을 통해 조합원들이 부평농협에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조합원을 초청해 조합의 비전 발전 계획을 알렸다.

직원들의 능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도 병행했다. 중앙회에서 진행하는 MBA 과정에 가장 많은 직원을 보냈다.

지난 2009년부터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토털 마케팅 역량 강화 프로그램인 ‘TMSP(Total marketing Stimulation Program)’을 진행하고 있다.

TMSP는 일과 후 시간을 이용해 일주일에 6시간씩 10주간 진행된다. 교육의 습관화 및 정착화를 위한 사후 교육과정도 마련돼 있다.

“부평농협이 살려면 직원 능력의 업그레이드가 필수였습니다. 시대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

는 교육에 집중했습니다. 또 마찬가지로 조합원들을 위한 다양한 교육도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노력은 얼마 안돼 좋은 실적으로 나타났다. 그는 부평농협이 어려웠던 때에 중앙회로부터 지원을 받았던 200억원을 2005년에 모두 갚았다. 2006년에는 9년만에 처음으로 흑자로 전환시켰다.

취임 전인 2002년 12월 말 기준 부평농협 예수금 잔액은 3천615억원에 불과했다. 2003년 말 4천34억원, 2년 후 5천158억원, 지난해 7천796억원으로 두배 이상 늘었다.

상호금융대출금 잔액도 마찬가지다. 2002년 말 2천715억원에서 다음해 3천201억원, 2008년 5천779억원, 지난해 6천287억원으로 2.3배 성장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7년 연속 클린뱅크 달성도 빼놓을 수 없다.

앞으로 그는 멀리 보는 경영을 통해 지속가능 경영의 잠재력을 키우고 불투명한 경영환경 속에서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는 부평농협을 만들어 나갈 방침이다.

이를 위해 그는 ‘실용적 교육지원 사업 확대’, ‘지속가능 경영을 위한 사업역량 강화’, ‘정도경영으로 사랑받는 농협’을 이번 조합장 선거에서 약속했다.

실용적 교육지원 확대를 위해 모든 조합원들이 골고루 혜택을 받는 맞춤형 지원 사업 발굴을 계획하고 있다.

내부통제시스템 역량 강화로 사고를 없애고, 전문 인력을 양성해 인사·교육시스템을 구축하고 업무시너지 극대화로 생산성 향상 등이 정도경영의 방향이다.

그는 조합원을 소중하게 여겨 영농용품 교환권 지급 및 종합건강검진, 영농자재 및 농기계 구입, 농작업을 위한 보험가입, 자녀 장학금 지원 등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그는 부평농협 역사 정리에 온 힘을 기울인다. 1972년 설립된 부평농협의 역사를 정리해 ‘부평농협 40년사’를 발행할 계획이다.

“부평농협 40년사에 고난과 기쁨의 현장에서 서있던 조합원들의 숨은 이야기와 열심히 땀을 흘린 모습, 미래 청사진 등을 담아내겠습니다.”

부평농협이 위기를 극복하고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역할보다는 조합원 등 주위의 도움 때문이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은 것을 잊지 않은 그는 60억원을 자매 농협에 지원했다. 또 타지역의 미곡종합처리장(RPC) 지원을 위해 50억원을 내놓았다.

지역 사회를 위한 활동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명절 때마다 사랑의 쌀을 지자체와 공공기관에 보낸다.

경북 청송농협에서 임대한 사과나무에서 수확한 과일을 모두 관내의 불우이웃에게 전달하고 있다. 부평농협 내 각 지점도 자체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펼친다. 그는 주위와 함께 하는 부평농협을 꿈꾼다.

정 조합장은 “조합은 조합원들의 무한한 관심과 아낌 없는 사랑을 받아야 한다”며 “부평농협을 변화와 혁신 마인드, 창의적 도전 정신으로 무장해 지속가능한 조합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