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양재덕 실업극복국민운동 인천본부 본부장
윤인중 생명평화기독연대 운영위원장
조성혜 주민자치를 여는 인천희망21 대표
이총각 청솔의집 관장
사 회: 송정로 선임기자
장 소: 인천신문 접견실
일 시: 12월4일 오후 2시



송 = ‘사건으로 본 인천 민주화운동사’를 8회에 걸쳐 실었다.

특정 시기, 특정 사건 중심으로 일부분만 간추린 것이지만, 지역언론 최초로 인천의 민주화운동을 사(史)적으로 다뤄 화두를 던져보았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간략히 평한다면.

양 = 사건별로 정리했지만 맥을 잘 짚었다고 본다. 이를 축으로 좀 더 보완하고 정리하면 전체 운동에 통사가 될 것이다. 앞으로 보완해야할 사항을 검토해나가야 겠다.

윤 = 인천이 미래가 있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인천의 정체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데, 언론의 역할이 크다.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은 정체성 정립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인천이 뼈대 있고 자기 철학이 있는 도시로 자리잡기 위한 측면에서 이번 연재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조 =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잘 됐고, 사진 자료도 새로웠다.

운동 내용이 사안에 따라 의견차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러한 점을 개인인터뷰를 통해 보완해 보여줌으로서 매끄럽게 처리했다.

아쉬운 점은, 87년 6월항쟁 이후 부터 민중노선이나 독자적 정치세력화, 사회민주화 운동 등 반독재에서 투쟁 전선이 분화되는 시점이라 볼 수 있는데, 이 과정이 앞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 뒤늦게 나마, 한계는 있지만 지역신문에서 8번에 걸쳐 민주화운동사를 기사화한 것은 그것으로 의미가 있다.

잊혀져가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볼 수 있었고, 새롭게 다가왔다.

송 = 7, 80년대 인천에는 노동자도 많았고 학생출신 운동가도 많았다.

인천 민주화운동의 특징이나 앞으로 중요하게 다뤄야할 부분이 있다면.

양 = 전국적인 민주화운동과 인천을 별개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전국적 흐름과 함께하면서 인천의 특징을 봐야한다.

이번 연재에서는 주로 노동운동과 반독재 투쟁에 초점을 맞췄는데, 또 중요한 것은 굴업도핵폐기 투쟁, 선인학원 시립화운동 등 90년대 초반에 전개된 시민사회의 민주화운동이다.

이 운동들이 중요한 것은 강고한 시민적 연대를 이뤄내고 결국 그 뜻을 관철시켜냄으로서 앞으로의 활동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게됐다는 점이다.

96년 말부터 전개된 ‘노동법 안기부법 개악철회 투쟁’도 인천 민주화운동에 중요한 지점이다.

85년 대우자동차 임협과정에서 보여준 민주노조 운동도 중요하다. 그 독재의 삼엄한 시절에 대우노조의 선도적 투쟁은 고요한 암흑의 정막에 경적을 울린 사건이었다. 이 투쟁은 기아와 현대자동차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윤 = 인천의 민주화운동도 시기별로 특색이 있다.

70년대는 동일방직 노조민주화 운동과 종교계를 중심으로 했고 80년대는 노동운동의 확장과 노학연대를 꼽을 수 있다.

90년대 넘어오면서 시민사회 운동이 활발이 이뤄졌다. 특히 80년대 노동, 학생운동 등 전국적 운동세력이 인천으로 합류됐던 사실에 주목한다.

조 = 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보자면, 인천에는 자유공원이나 동인천 등 지명, 행정구역 명칭 등이 침략의 상징으로 불려진 것이 많은데 이를 회복하기 위한 운동도 주요하게 다뤄졌으면 좋겠다.

이 = 한국 가톨릭 운동이 65년 벨기에서 처음 건너와 전국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는데, 인천에서 특히 활발했다. 가톨릭노동청년회(Joc 지오세) 운동이 사건화 된 중요한 사례가 강화 신도직물 노조탄압사건이었다.

한국 가톨릭 최초로 주교단 성명서까지 낸 큰 사건이었다. 지오세 운동은 동일방직, 이천전기, 한국유리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성 사업장에서 민주노조 운동이 시발됐다는 것도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지오세가 들어오면서 사회운동으로 확산돼 노동현장에 충실했다는 것, 노동자 1세대들이 (조직운동을 용이케했던) 기숙사 생활하던 섬유, 방직등 여성노동 집약적인 사업장에서 시작됐다는 점이 인천 운동사에 연구돼야 할 것이다.

송 = 과거 민주화 운동이 이루려고 했던 것들, 그 기본 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민주화 운동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떻게 진화했는지, 또 현재는 어떻게 진행하고있는 것인지.

이 = 7, 80년대에는 주로 독재에 항거하는 싸움이었다. 노동자 농민 학생 등의 운동권이 독재에 결연히 맞서 투쟁하는 운동이었고, 자발적 운동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땐 ‘같이 죽고, 같이 살자’였다. 실제 단순했다. 이대로는 살 수 없기에, 더 물러설 수 없는 처지에서 인간임을 선언하는 운동이었다.

윤 = 70년대 운동에는 휴머니즘과 인간에 대한 연민이 있었다.

80년에 들어가면서 변혁적인 사회이론이 들어오면서 70년대가 무시되고 재평가 됐다. 80년대 운동에 과학성과 조직성은 높아졌지만, 70년대의 따뜻한 인간미, 공동체 정신은 80년대 이후 매말라 간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70년대가 낭만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따뜻한 인간미와 그런 정신문화가 적극적으로 다시 조명되야 할 것으로 본다.

70년대의 인간미와 80년대 이후의 변혁적 운동논리가 긍정적으로 결합한다면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 당시는 도망가고 싶고, 뛰쳐 나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동료가 있고 잡아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오히려 지금은 삭막하지 않나. 사건 위주로, 회의 위주로.

양 = ‘과거’라 하면 92년도 이전으로 봐야 할 것같다. 이승만의 독재를 4.19가 무너뜨리니까 군사 독재가 등장했다.

군사 독재 18년이 결국 무너졌는데, 신군부가 나타나 다시 군사독재를 8년간 연장시켰다. 전두환은 광주를 밟고 집권했지만 민주세력은 8년간 다시 싸워 무너뜨렸다.

노태우 정권이 파행적이긴 하지만, 92년 김영삼 문민정부를 탄생시켰고, 이때부터 독재라는 표현이 명분을 잃은 것 같다.

조 = 90년대는 문민정부라는 김영삼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운동노선의 분화가 있었다. 민중의 정당이라는 독자세력화 노선을 놓고 대립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노협·민주노총 건설, 전교조 설립 등 노동조합이 전국적인 힘으로 확대되었고 여성운동 등 시민운동도 확대되었다. 그렇지만 전국 단일조직이 결집력을 갖고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운동의 확대도 있었지만 분산도 동시에 있었다.




사진설명 : 왼쪽부터 양재덕 본부장, 윤인중 운영위원장, 조성혜 대표, 이총각 관장

윤 = 87년 6월 항쟁에서 부터 92년까지가 민주화운동의 꽃을 피운 시기다. 통일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이 각기 부문별 역할을 맡아 분리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조 = 7,80년대가 제조업이라면, 90년대는 대기업(조선, 철강, 사무직) 등의 조합이 생기면서 노동운동의 영역이 확대됐다.

다양한 분야의 운동이 공간을 함께 했고 시민사회 운동 역시 활성화됐다. 정권교체나 낙천낙선운동 등 대규모 운동이 가능했던 이유는 90년대를 이끌어온 운동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윤 = 87년 6월 항쟁 이후 7,8,9월의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90년대의 사회 민주화가 있지 않았나 싶다. 이때의 투쟁은 대단했다. 정치, 사회적 금기라는 금기는 이때 다 벗어 던졌다.

양 = 박정희 정권의 18년과 전두환 정권 8년이란 군사정권으로 우리사회 구석구석에 군사문화가 지배했다.

이때 노조하면 무조건 해고되고, 노동삼권은 완전이 무시당했다. 6월 항쟁은 군사독재에 대항한 반독재 운동의 정점이었다.

그와 함께 노동운동이 폭발했다. 그 폭발은 민주노총과 전교조로, 시민단체로 가는 과정이었다.

전국연합이 90년대 초반을 이끌어갔다. 김영삼 정권 이후는 지배와 피지배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국민 스스로가 주인이 되가는, 다양한 요구의 관철 과정이었다.

조 = 현재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이 많이 분리되어있다. 그러나 이제 민주화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시민운동 세력과 진보운동·민중운동 세력이 연대해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송 = 민주화운동도, 시민, 노동운동에도 요즘 ‘감동’이 없어진 것 같다. 사회를 위해 옳고 필요한 일을 하는 것임에도 많은 이들은 별로 마음을 내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 = 개인, 개발주의로 사람들이 많이 변하고 있다. 7,80년대는 자본주의가 완전한 체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본주의에 대한 사고가 적었다. 90년대에는 속속들이 들어와 있다.

생활패턴 자체가 서민적 감동을 오히려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변했다. 각박한 시대다. 맞벌이는 크게 늘고 가족끼리도 얘기할 시간이 없는 사회다. 개인적인 일들에 파묻혀 공공성이란 것이 무너지고있다.

양 = 독재는 아주 치열하고 사람을 탄압하고 죽이기까지 하는데 이에대해 항거하면 감동을 줬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만한 싸움이 없고, 오히려 FTA 같은 것은 많은 시민들도 모르는 사이 들어오고 있었다. 경제적 상황은 파행적으로 진행되고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시대로 가고 있다. 과거의 의식화 과정도 사라지고 있다.

윤 = 민주화 이슈가 당시에는 독재 타도에 있었지만, 절차적인 면에서 민주화를 요구해온 것이었다. 운동의 주체도 분명했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민주화운동이 주목해야할 곳은 지역운동이라는 생각이다. 지역의 관점에서 좀 더 주민속으로, 지역 기초단위로 공동체 운동이 스며들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송 = 인천의 민주화운동 계승 사업과 관련해 어떤 일들을 해나가야 하는가.

조 =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민주화운동의 정신과 주체를 재생산하는 것이다.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과 후세대들에게 민주화운동의 재생산과 확대를 위한 소프트웨어가 많이 필요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있다고 해도 여기에 실질적인 운동가가 없다. 너무 관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건축물이나 기념물을 만드는 데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기록문화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당대 역사를 살았던 사람들의 다양한 체험 등을 들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들이 과제가 아닌가 싶다.

이 = 진정한 민주화의 계승을 추진하는데 있어 과거 반민주화 인물들의 청산부터 제대로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또 하나는 그 당시 그 많은 민주화, 대중운동을 온몸으로 했으면서 잘 알려지지 않고 묻혀 있는 사람들, 유명을 달리하거나 당시의 희생으로 삶의 밑바닥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삶들이 재조명되야 한다. 언론도 이런 측면에서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

양 = 계승사업과 관련해, 우선 민주화라는 용어만 나와도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문제다.

보수진영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시민들도 부담감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선, 우선 운동의 반성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당시의 잔혹한 탄압에 대해 필연적 대응이기도 했지만 그 과격성이 보수집단의 입장에서 보면, 운동권이 체제변혁적인 ‘레드 컬러’로 악선전돼 왜곡된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독재정권과 이해가 맞물려 있는 집단군에 의해 의도적으로,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민주화운동이 올바르게 인식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윤 = 87년 이후에 민주화 운동하던 사람 중 국회의원이 되거나 요직에 들어간 사람이 많은데, 여기서 이전의 관료들과 다른 면모도 있겠지만, 민주화 세력 역시 ‘그 세력이 그세력’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밑바닥까지 내려앉은 사람들도 많다.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어떠한 평가도 없고, 이들의 어려움 조차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을 살펴보고 재평가 하고 다시 민주화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 = 함께 가자. 언론도 앞서 가주길 바란다. 나 조차도 이번 신문 연재를 보고 김병상 신부님이 감옥생활을 하신 구체적인 과정과 실상을 제대로 알게됐다. 민주화 운동을 시민들에게 제대로 인식시키고 후대에 전해주는 일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정리 = 송효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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