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도 훨씬 지난 어린 시절을 기억하며 아직도 눈물짓는 박정희(84)여사.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자라온 그에게는 정말 운명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점자를 창안하신 아버지의 딸로 태어난 것이 나의 운명이지. 대를 이어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일하라는 하늘의 뜻이었던 거야. 점자 만드실 때 옆에 있다 간혹 혼나기도 했는데.”

인천시사회복지협의회가 올해 처음으로 시행한 제1회 인천사회복지상에서 박 여사가 대상을 차지했다.

한글 점자 창안자인 송암 박두성 선생의 딸로 태어나 시각장애인을 위해 벌인 다양한 활동이 인정을 받은 것이다.

“누가 눈 버리고 싶어 그러나? 눈뜬 사람도 살기 힘든 세상인데 눈감은 사람들은 더 살기 힘들 것이라고 아버지가 늘 말씀하셨지. 결국 아버지가 점자를 만드셨고 그 제작 과정 동안 나는 항상 아버지 곁을 지켰어.”

시각장애인들과 보낸 어린 시절, 그는 그들의 누나였고 동생이었다. 어려움이 닥치면 항상 박 여사를 찾아오고 보니 때론 남편에게 때론 시어머니에게 눈치가 보일 정도였단다.

“결혼 한 지 얼마 안 돼 하루는 남편이 이렇게 많은 시각장애인 형제들이 있는지 왜 이야기 하지 않았냐고 묻더라고. 자꾸 사람들이 찾아오면 내가 귀찮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어린 시절 자라온 환경이 그렇고 보니 부담이 아니라 생활일 뿐이지.”

경성여자사범학교를 졸업했지만 결혼 후 교사직을 그만두고 평범한 주부로 살아간 그에게 시각장애인들을 물질적으로 돕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동네아이들을 모아 과외를 시작했고 사범학교 시절 배웠던 특기로 그림교실을 열었던 것이다.

“의사인 남편도 퍼주기를 좋아했는데 내가 빌붙어 시각장애인을 도울 수는 없었어. 한 달 내내 부업을 해 쌀 한가마니 만큼의 돈을 모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 줬지. 내게 주어진 특기마저도 사람들을 도우라는 하늘의 뜻인 것만 같아.”

현재 박 여사는 동구 화평동 ‘평안 수채화의 집’ 원장으로 그림을 그리며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전시회를 수차례 열어왔다.

한국점자도서관이나 인천시시각장애인복지관 및 송암 기념관 건립 등에 전시회 수익금 수 천 만원을 내놓는 등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랑을 몸소 실천해 오고 있다.

“이제 내가 저 세상으로 가면 어쩌나 걱정도 했지만 그건 쓸 데 없는 짓이었어. 또다시 대를 이어 내 자식들이 외할아버지의 뜻을 받겠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대견할 뿐이야. 아주 옛날, 아버지가 맹인학교 선생으로 가시겠다고 결정하셨을 때 우리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거였어.” 이은경기자 lotto@i-today.co.kr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