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최원식 인하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인하대학교 인문학부 최원식(62) 교수는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다. 하지만 그의 삶은 학교 사회와 국문학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한국 지성사의 주요 축을 담당해온 '창작과비평'의 편집위원과 주간을 역임하면서 일찍이 민족문학론과 동아시아론을 화두로 던졌다.1990년대 초반 창비에 썼던 '탈냉전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 '한국문학의 근대성을 다시 생각한다' 등의 논문은 오늘날 인문학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방법론적 성찰을 제공하고 있다.

그의 이론적 화두 중의 하나는 지역담론이다. '황해문화' 편집위원으로 창간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전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라(Think Global, Act Local)'를 모토로 지역의 중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틈틈이 썼던 '인천론'을 묶어 낸 '황해에 부는 바람'(다인아트, 2000년)은 인천 연구의 관점은 물론 지역운동과 지역문화의 과제를 갈무리했다.

지난 24일 본보 김영빈 정치부국장이 인하대 연구실에서 최원식 교수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2007년 12월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임기를 마친 뒤 지역사회 활동이 뜸한 것 같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나이가 들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다. 국문학 연구와 평론 등 본업에 충실하려고 하고 있다.”

최원식 교수는 초대 대표이사로 문화재단의 기틀을 잡았다. 1천억원 기금 조성 건을 비롯해 문화재단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그는 “물러난 뒤 근처에 얼쩡거리지 않는 게 돕는 것이다. 문화재단이 있어야 할 자리를 잘 지키면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며 한발 빼는 듯한 답을 했다.

대신 최 교수는 “인천시가 새로운 인천을 만드는 키워드로 문화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21세기가 문화의 시대라고 하는데 여전히 시행정에서 뒷전이다. 기금을 채우느냐보다 문화를 ‘새인천’을 만드는 시정의 중심에 놓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전임 시장이 벌려놓은 일을 수습하는 것도 문화적 관점이 필요하다. 문화를 키워드로 삼으면 풀릴 수 있는 문제가 많은데 안타깝다.”

국문학연구자, 문학평론가, 사회비평가, 실천적 지식인 등 많은 수식어가 붙어있다. 가장 애정이 가는 명칭이 있다면.

“한국문학연구자가 본래 자리 같아요.”

인중, 제고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한 그는 “고교 때 고려대 김흥규 교수, 서울대 조남현 교수 등 제고 선배들과 연결되면서 진로를 아주 쉽게 정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김흥규 선배를 은인으로 꼽았다. 선배 덕에 대학원에 다니면서 광성중학교에서 교사를 할 수 있었고, 28살 되던 해에는 그의 추천으로 계명대 교수가 됐다. 이후 영남대 교수를 거쳐 1982년 고향인 인천의 인하대로 오기 전까지 대구 생활 5년에 대해 최 교수는 인생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특히 1980년 영어의 몸에서 풀려난 김지하 시인과의 만남을 통해 지적 자극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고 한다.

“8년 선배인 김지하 시인은 ‘동아시아론’의 싹을 틔어 준 분이다. ‘아프리카의 생명력과 동아시아의 지혜로부터 가톨릭이 배우지 못하면 가톨릭의 미래가 없다’는 선배의 말에 필(feel)이 꽂혔다.”

그는 일찍이 동아시아론을 강조했다. 1993년에 쓴 ‘탈냉전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을 시작으로 총 14편의 동아시아론을 묶어 낸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2009)는 그에게 ‘임화문학예술상’을 수상케 했다.

아직까지 일반시민에게 생소하다. 동아시아론의 요체는 무엇인가.

“세계사의 흐름은 변모한다. 19세기는 영국, 20세기는 미국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의 시대가 저물고 대신 동아시아가 중심에 서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작 동아시아는 준비가 안 돼 있다. 동남아시아는 그나마 지역적 협력체(아세안)가 있지만 한국(북한), 중국, 일본 등 동북아는 경제적 협력에도 불구하고 이에 걸맞은 문화 또는 사상적 비전은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동아시아 시대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최 교수가 동아시아론에 주목하기 시작한 때는 옛 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인 1990년대 초반으로 대다수 학자들은 권력의 축이 미국으로 더욱 기울어질 것으로 내다봤으나 최 교수는 미국의 추락을 전망하면서 동아시아의 역할에 주목한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서구가 내세웠던 비전은 21세기를 지도할 이념이 아니었다. 새로운 모델로 동아시아적 가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동아시아론의 핵심에는 한반도 문제가 있다. 분단을 연착륙시키는 게 동북아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 각각 동아시아를 강조하면 ‘중화주의’, ‘대동아공영권’이란 오해를 살 수 있고 따라서 한국발 동아시아론을 통해 한·중·일 3국이 제국의 길을 포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 최원식 교수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인천 앞바다가 전 세계의 화약고로 떠올랐다. 동아시아론과 연계해 인천은 어떠한 실천에 나서야 하는가.

인천시는 최근 ‘6·15 남북공동선언 11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을 비롯해 오는 10·4 때도 포럼 등을 구상하고 있다.

“지난해 연평도 포격 사태 때 인천시민들을 소개(疏開)할지 모른다는 말도 있었다. 깜짝 놀랐다. 인천시민들에게 남북관계는 생사가 걸린 문제다.”

최 교수는 “심포지엄 등 행사도 중요하지만 남북관계와 관련한 정책에 대해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하며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시정부가 어떠한 비전을 통해 새인천을 건설할지를 놓고 시민들과 진정으로 소통해야 한다. 산적한 현안들을 하나하나 풀어내 인천시민들이 이전 시정부 때보다 좋아지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은 시가 남북관계 진전에 기여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인천시민의 마음을 잡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시정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안상수 전임 시장과 송영길 현 시장에 대해 평한다면.

“안 전 시장은 인천시를 활력있게 이끈 측면이 있다. (뭔가 생각하며) 언젠가 안 전 시장이 “인천에서도 부동산 투기붐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는데, 이게 과했던 것 같다.”

최 교수는 중국 개혁개방 초기에 대두된 ‘선부론(先富論)’을 안상수 시장에 빗댔다.

“등소평은 부자들을 많이 만들어서 중국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후 중국도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지금은 ‘균부론(均富論)’으로 바뀌고 있다.”

인천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비전은 이해가 되나 안 시장 때는 명품도시란 이름으로 난개발이 진행되는 등 ‘선부론’이 도를 넘어서 인천을 토건도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안 시장의 선부론에서 선회, 송 시장은 균부론으로 가야 한다. 안 시장 때와 다르게 디자인해야 하는데 잘 되고 있다고 얘기하기 힘든 것 같다.”

시민사회계에서 특히 실망스러워하는 분위기라고 하자 최 교수는 “그렇다고 송 시장에게 등을 돌려서는 안 된다. 더 나은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선 송 시장을 견인해야 한다. 일이 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시장에게 어떤 조언을 할 것인가.

“송 시장이 열심히 하는 스타일인데 워낙 전임 시장이 벌려놓은 일들이 많아서…. 우선 얘기를 들어야지.” 시장은 소통을 강조하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시정을 이끄는 분들과 시민들 사이에 새로운 인천을 만들기 위한 구심점이랄까,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민감한 인사 문제도 물었다.

“중국 진나라에는 외지 사람을 고급관료로 쓰는 객경(客卿)제도가 있었다. 텃세를 부리며 객경을 몰아내고자 하는 시도도 있었지만 진나라는 객경을 유지해 결국 중국 천하를 통일했다.”

최 교수는 “향토주의만 강조해서는 안되고 훌륭한 사람(객경)이 인천에 오면 좋다. 그러나 시민들이 보기에 능력에 걸맞지 않는 자리에 객경을 앉히는 것이 문제”라며 사람을 잘 쓰는 것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지역 현안을 꼽자면.

“토건사업을 빨리 정비해야 하지 않을까. 시장이 바뀌었는데 토건주의가 물러났는지 모르겠다. 물론 송도국제도시를 비롯해 현재 진행중인 사업들이 있는 만큼 토건을 완전히 폐지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토건주의가 계속되면 지방자치는 결국 질식한다.”

그는 토건주의가 땅값을 올리고 일부 사람들만 살찌우는 등 정치와 경제의 비민주화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또 토건주의가 판을 치면 문화, 역사, 공동체 등 다른 가치들을 압도하면서 사회가 개발지상주의에 함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향후 구상하고 있는 삶은.

“평생 대학에 있었다. 어느정도 궤도에 올라선 인하대 한국학과를 더욱 발전시키고 싶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본업인 강의와 연구에 최선을 다하겠다.”

대학과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특히 지역사회와 관련해서 보자면.

“지역사회와 연계한 연구 및 방향 제시 등이 필요하지만 본질은 대학 자체를 키우는 것이다. 대학이 좋은 선생을 모시고 이에 따라 좋은 학생들이 모이면 발전할 것이고 결국 지역사회에 기여하게 된다. 그러나 희망이 안 보인다. 대학이 사회를 비판하거나 어떤 방향을 제시하기 전에 자신을 비판해야 한다. 민주화는 대학 정문 밖에서 딱 멈춰있다.”

인천에 좋은 대학을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배어있는 것 같았다.

최 교수는 자신 스스로 학자로서 결격 사유가 있다고도 했다. 글을 모아 다수의 책을 냈으나 단독 저서는 없다는 것이다.

“학자는 저서로 말한다. 은퇴를 전후해 한국현대문학사 등 그간의 공부를 정리하는 책을 쓰고 싶다.” 대담=김영빈 정치부국장 kyb@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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