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남으면 해야지’하지 말고 ‘이 날은 언제나 비워 놓는다’하는 마음을 가져야 봉사를 할 수 있더군요. 봉사는 결코 누군가를 섬기는 것이 아니랍니다. 말기암환자들을 돌보며, 내 주변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용서하고, 삶에 감사하자 하는 교훈을 얻어요. 제가 섬김을 받는 거지요.”


인천시약사회 김영미 부회장(51). 남동구 만수동에서 미성온누리약국을 운영하면서 꼬박 5년간 말기암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로 활동해온 자원봉사자다.

약국을 하며 1주일에 하루 4시간씩 자리를 비운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시간제 약사를 두고서라도 환자를 만나는 약속만큼은 어기지 않는다.

“아이들이 웬만큼 크고 내 나이도 40이 넘으니 마음에 두었던 봉사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로는 생소한 ‘호스피스교육’을 한다는 신문기사를 보고는 바로 등록을 했죠. 자비를 내고 받는 10주교육이었는데 환자들을 돌보기 위한 유익한 내용이 많았어요.”

길병원으로 처음 봉사를 나가던 날, 두렵고 떨리던 마음은 지금도 생생하다.

참혹한 모습의 환자를 보고, 같은 팀의 다른 봉사자는 정신을 잃어 오히려 입원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누군가를 처음 만난다는 서먹함, 더구나 그가 환자인지라 봉사를 마치고 집에 오면 탈진하다시피 했지만 시간이 역시 해결해줬다.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꼬박꼬박 찾아와 돌봐주자 환자들은 하나둘 마음의 문을 열었다.

이혼으로 헤어진 배우자를 찾아내 화해를 주선하고, 미움이 쌓인 가족간 갈등을 풀도록 다리가 되어 환자들이 고통에 신음하다 세상을 떠날 때 미움도 증오도 없이 평온하게 눈을 감을 수 있도록 해주는 호스피스.

이들은 생의 마감을 앞둔 환자들에게는 천사요, 지팡이다.

“위암 말기인 어느 미혼여성이 그래요. ‘물 한컵을 한번이라도 시원하게 마셔봤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우리에게는 너무도 쉽고 하찮은 일이 환우들에게는 가장 큰 소망이지요. 그들을 위해서라도 신체건강한 우리가 더 열심히, 더 도우며 살아야지 생각해요.”

그는 어릴 적 소아마비로 한 쪽 다리가 불편하다.

생전 처음 자신이 장애인이란 걸 절감한 때는 대학입학을 앞둔 때였다.

지원하고자 하는 약학대에서 장애인이란 이유로 받아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을때 절벽앞에 선 기분이었다.

큰 장애물을 딛고 선 경험은 딱한 이웃에게 스스럼없이 손내밀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지난달 30일 인천시호스피스 시민의 밤 행사에서 자원봉사부문 시장상을 받은 그는 ‘상을 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라며 얼굴을 붉혔다. 손미경기자 mimi4169@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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