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박병만 한국노총 인천본부 의장

고(故) 노무현 대통령 시절 비정규직 보호법이 탄생했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의무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강제한 이 법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기업들은 비정규직 근로자들과 초단기 계약을 맺거나 외주화를 선택했다. 정규직화를 막는 편법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 지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타임오프제(근로시간 면제 제한 제도)'를 지난해 도입했다. 전임자가 급여를 받으면서 노조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하고, 무조건적인 급여 지급도 막았다. 복수노조를 허용하되 교섭 창구는 단일화한 노조법 개정안도 시행을 앞두고 있다.

노동계는 노무현·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대변화를 맞았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노조 문제에 접근하는 상황에서 노조 단체들은 투쟁과 함께 연대를 꾀했다. 진보 성향이 강한 민주노총은 투쟁을 택했고, 보수로 분류되는 한국노총은 연대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3년 만에 돌아온 한국노총 이용득(58) 위원장은 노조법 전면 재개정과 한나라당과의 정책 연대 파기를 외쳤다. 민노총과의 통합·연대도 언급했다.

노동계는 올해 또한번 변화를 앞두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한노총 인천지역본부(이하 인천본부) 박병만(55) 의장을 만나 인천 노동계의 오늘과 내일을 물어봤다.

지난 1988년 노조 전임자 활동을 시작한 박 의장은 1992년 동양제철화학(현 OCI) 노조 위원장으로 당선된 뒤 7차례 재임한 '노조통'이다. 박 의장은 지난 2005년 인천본부 의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지난 2006~2007년 화학연맹 사무처장을 거치면서 절치부심해 2008년 3월 의장에 당선됐다.

한국노총 인천본부 의장으로 선출돼 3년여가 흘렀다. 그동안 성과에 대해 평가한다면.

▲한국노총은 합리적인 노·사 관계를 추구한다. 선배들도 일방적인 투쟁이나 타협이 아니라 노·사가 모두 윈-윈(Win-Win)하는 노동 운동을 하고자 노력했다. 모두가 이해하는 노동 운동이 목표였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반문했을 때 믿음과 신뢰가 생기면 노·사 분쟁이 없어지고 나아가 고용 안정과 확대가 된다고 봤다. 고용 활성화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지역에서 노·사 문제를 근복적으로 치유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 노·사 간 신뢰가 쌓여야 한다고 봤다. 또 산업 안전에 대한 홍보와 기업 방문을 통해 안전한 사업장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인천에서는 ‘기업 살인’이라 불리는 산업 재해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 결과, 3년여 동안 심각한 노·사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근로자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사업장을 만드는데 고심했고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무엇보다 노·사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었다는게 컸다. 인천본부를 전국 16개 시·도 지역본부 가운데 제일가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 조합원 수와 예산·조직 규모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의욕만 갖고는 되지 않았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체제가 출범했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지.

▲이 위원장의 생각과 한노총 노동 운동 기조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 위원장은 3년여의 공백 기간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한노총의 기조를 다지고, 다양한 정책을 강구했던 당사자이기 때문에 더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위원장이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는 이유는 유독 우리나라만이 노·사 문제를 정부에서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타임오프제 등 생소한 정책을 내놓고 강행만 했다. 과거 우리 생각과 다른 정책들은 혼란을 낳았고 정착하지 못했다. 해외에서도 노조 전임자 문제 등은 노·사 자율로 지정하도록 했다. 정부의 강행 방침으로 도입은 했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방향과는 다른 길이다.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에 과격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대화를 중단하거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한노총은 그동안 많은 자제를 통해 경제 회생을 도왔다.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양보하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애썼다. 이 위원장 체제가 다시 시작된 것은 원래 틀로 되돌아가기 위한 길이다.

인천본부가 비정규직 문제 등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지적이 있다.

▲한노총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공교롭게도 GM대우가 민노총 소속 단위 사업장이라 그렇게 비춰질 수 있었다. 그동안 한국노총은 비정규직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다. 표면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한국노총은 큰 틀에서 정부와 교섭을 진행하고 있고, 단위 사업장에서도 한국노총이 주도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생각이 달라서 나서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인 비정규직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민주노총과 다르지 않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이전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이전 논란은 과거에도 두 차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경기도의 노동자나 기업체 수가 인천보다 많기 때문에 본청을 이전하자는 논리다. 그런 이유라면 인구가 적은 도시에는

기관이 있을 필요가 없다. 인천은 광역시이다. 세계적인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고 자체 평가한다. 몇 개 없는 기관이 타 시·도로 이전한다는 것은 자존심 상할 일이다.

특히 인구 280만명의 인천에 노동 기관이라고는 중부고용노동청과 인천북부지청 2개 뿐이다. 각 정부부처가 한정된 예산을 갖고 일한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노동 행정의 공백은 불 보듯 뻔하다. 본청이 움직이면 인력과 자금이 빠져나간다. 부산을 추월해 제2도시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 수로 본청 이전 문제를 논의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노동계는 물론 지자체와 정치권, 시민단체에서 한 목소리로 반대해야 한다. 280만 시민들이 함께 생각해야 할 문제다. 필연코 저지하고 무효화해야 한다. 이상한 발상으로 다른 걸(산업단지 등) 제의한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다.

인천본부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데 지역 현실과 괴리감이 많은 것 같은데.

▲지역 기업이 떠나는 상황에서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업이 지역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전국을 돌아다녀보니 지자체장이 기업을 유치하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전임 안상수 시장에게 기업 유치와 관련해 많은 요구를 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역할 분담을 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노·사·민·정협의회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지만 제의도 없었다. 타 지역은 기업 부지를 싸게 내주고 세제 혜택도 준다. 우리 행정은 그러지 못했다. 공장 하나를 세우는데 규제가 많다.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기업은 계속 떠나갈 것이다. OCA의 경우에도 화학공장이라고 ‘기계를 멈춰라’, ‘이전해라’ 요구가 많았다. 이제는 지양해야 한다. 공장이 무질서하게 공해나 배출하지 않는다. OCA가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전북 군산만 하더라도 도지사나 시장이 나서서 지원을 약속했다. 시를 비롯한 각계각층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

인천본부의 올해의 주요 사업은.

▲산업현장의 재해율을 낮추는데 역점을 두겠다. 또 노·사·민·정 체제 아래에서 기업을 유치시켜 고용 안정과 확대를 가져오는데 주안점을 두겠다. 오는 7월 시행을 앞둔 복수노조 허용 등에 대해서 적극 대응하겠다. 한국노총 새 집행부의 수장이 강력한 투쟁 의지를 갖고 있다. 일방적인 투쟁이 아니라 잘못된 관행을 바꾸자는 것이다. 그동안 한나라당과의 정책 연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큰 틀에서 국민 경제를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의지였다. 그러나 단순한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정책 연대가 필요 없다는데 모든 조합원들이 공감했다. 당분간은 불협화음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식상하고 불편하게 생각하는 투쟁은 성공하지 못한다. 합리적으로 할 것이다. 노·사 문제는 자율로 푸는 것이 상식이다. 관행처럼 정책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 대담=양순열기자 syyang@i-today.co.kr 정리=이환직기자 slamhj@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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