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부개동의 한 음식점에 ‘깜짝 잔치’가 벌어졌다.

지난 70년대, 당국의 탄압과 감시 속에 인천에서 노동문제 상담과 교육, 노조 결성을 지원하면서 노동자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황영환씨(70·부평구 산곡동)의 조촐한 칠순잔치였다.

이날 잔치는 고사(固辭)할 것이 뻔한 주인공이 전혀 모르게 당일 ‘한번 만나자’며 불러내 마련된 것이다.



 
자리를 준비한 이들은 70년대 동일방직, 반도상사, 원풍모방, 광야교회(청천동)에 다니던 노동자들로 직·간접적으로 그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아왔던 사람들.

당시 원풍모방 노조지부장이었던 방용석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전 노동부장관)과 양대 노총 관계자, 오순부, 양재덕, 김지선, 최연봉, 정명자, 허성례, 이혜란씨 등 50여명이 이날 자리를 함께했다. 조용한 성품의 황씨는 이날 음식점에서 모임의 성격을 한참 뒤에 알아채고는 깜짝 놀라 ‘사기 당했다’며 당황스러워했다.

산곡동 ‘한국베아링’의 노동자였던 그는 71년 가을 전태일을 위한 노조의 모금 문제로 부당하게 해고당했다.

그리고 72년부터 인천 산업선교회 간사로 일하면서 노동실무 상담과 교육에서부터 사업장 내 소모임 조직 등 당시로선 몹시 험한 노사문제 전문가로서 79년말까지 인천서 활동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서울 이화동 등지서 같은 일을 계속하면서 지난해 말 건강 때문에 문을 닫을 때까지 만 35년을 ‘노동상담’이란 외길을 걸어왔다.

그는 72년 노동자 5명과 함께 중앙정보부에 연행돼 “간첩과 접선했으니 자수하라”며 5일간 고문당하다 풀려나기도 했다.

또 78년 동일방직 해고 사태 이후, 해고자 등과 함께 ‘연극 사건’에 연루돼 지독한 고문을 받고 정식재판을 통해 10일만에 풀려나온 후 수 년간 경찰의 감시 속에 살아야 하는 등 굴곡의 70년대를 인천의 고통받고 소외당한 노동자들과 함께 보냈다.

양재덕 실업극복국민운동 인천본부장은 그에 대해 “노동자를 위해 한 길을 걸어온, 깨끗한 분으로 원칙에 철저하셨다”고 말했다.

이날 뜻하지 않게 칠순잔치상을 받은 황씨는 “처음엔 고맙기도 하면서 괘씸하기도 했다”며 “그러나 내 고집을 꺾고 좋은 추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내 생전 처음으로 금메달도 받고 감사패도 받았는데, 참 미안스럽다”고 말했다.송정로기자 goodsong@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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