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쉬운 토박이말(순우리말)보다는 한자어나 외래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우리 말글 생활의 역사가 말은 입말로 비롯되었겠지만, 글은 한자를 언어 표현의 수단으로 수백 년간 써 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말과 글은 분리해서도 쓰이지만 서로 깊은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말하기에서 어휘를 선택할 때 글에서 쓰던 한자어가 더 익숙해져서 한자어를 선택할 수도 있다.

또 글공부깨나 했다는 사람들이 쉬운 토박이말보다는 남이 잘 모르는 어려운 한자어나 사자성어를 섞어 쓰면 유식하게 보이던 시절도 있었다.

요즘같은 고학력 시대가 아닌 6,70년대에는 이른바 ‘인텔리’라고 하는 지식인들이 우리말에 외국말(주로 영어)을 섞어 쓰기를 좋아했으며 보통사람들은 이들을 유식하다고 보았다.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다. 쉬운 토박이말 중심으로 문장을 구성하기보다는 적당히 어려운 한자말이나 영어를 섞어 쓰면 높이 평가 받기도 하였다.

요즘도 그런 교수가 있는지 모르지만 대학에서 시험지 답안이나 논문을 쓸 때 한글 문장 안에 한자를 되도록 많이 섞어 쓰고 전문용어 따위를 영어로 쓰면 훨씬 후한 점수를 받는다는 것은 흔히 들어본 이야기다.

이러한 언어습관이나 한자 사대주의가 우리말 속에 스며들어 요즘에도 남아있는 모습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머리털이란 말 대신에 두발, 모발이란 말을 쓰며, 입안은 구강, 누에치기를 양잠이라 하고 옷보다는 의상이라는 말을 선호하기도 한다.

또 우리말은 외국어에서 보기 힘든 대우법(존비법)이 발달하였는데 토박이말이 예사말로 쓰이고 이에 대응하는 한자말이 높임말로 굳어진 것들도 있다.

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를 때, 아무개아버님이란 말도 쓰지만 부친, 가친, 가존, 춘부장과 같은 한자말이 많으며, 선생님이 사는 집을 선생님 댁이라고 해야지 선생님 집이라고 하면 결례가 되는 경우처럼 토박이말과 한자말의 의미 격차를 벌여 놓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언어 현상들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드신 이전은 물론이고 그 후에도 우리가 한자 문화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말글 생활을 해 온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한 낱말에 대해 이와 같거나 비슷한 뜻으로 여러 가지의 어휘가 존재하는 것은 언어생활에서 그 의미나 느낌, 언어 환경에 따라 적당한 말을 골라 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1차 언어인 아버지라는 낱말과 같은 뜻을 가진 2차 언어(위에 든 한자어)가 십여 개가 되는 것은 다른 시각에서 보면 언어의 경제성이 떨어진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1차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2차 언어는 합리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낭비적 요소일 수 있다.

어떤 국어학자는 “지금 우리말에는 1차 언어와 2차 언어(한자어) 외에 새롭게 3차 언어(영어 등의 외래어)가 함께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기술한 바 있다(남영신, 2000년).

그러면 이렇게 1, 2, 3차 언어로 된 말들은 어떻게 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경제적인 것일까?

아내라는 말을 예로 들어보자. 이 낱말은 토박이말 ‘아내’가 1차 언어다. 2차 언어로는 한자말 ‘처(妻)’가 있고, 3차 언어로 외래어 ‘와이프(wife)’가 있다.

국어에 관심이 적은 사람일지라도 우리는 ‘아내’라는 말을 우선으로 하고 경우에 따라 ‘처’를 쓰며, ‘와이프’라는 영어는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상식적인 답이 나온다.

결국 우리말 가꾸기의 바람직한 방향은 토박이말을 우선으로 쓰고, 그 다음이 한자말이며 부득이한 경우에 외래어는 쓰더라도 외국어는 우리말에 섞어 쓰지 않는 것이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봐 덧붙이면 한자어나 외래어는 토박이말과 함께 우리말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들을 자연스럽게 섞어 쓰며 말글생활을 하고 있지만 되도록이면 1차 언어인 토박이말을 널리 찾아 쓰도록 노력하자는 것이며, 한 낱말이 3차 언어까지 통용되는 경우 1차 언어를 중심 언어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