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구도심 재생사업 실상

인천은 낡았다. 가장 먼저 근대문물이 들어온만큼 가장 먼저 낡아가고 있다. 아직도 일제강점기 시절의 건물이 곳곳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 중구. 셋방살이 기억이 물씬 풍기는 단독주택과 다닥다닥 붙은 다세대주택이 늘어선 서구와 남구. 인천의 외각으로 인식되며 개발이 더뎠던 계양구와 부평구.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를 가운데 두고 길게 늘어선 구도심들.

그런 구도심을 새롭게 재생, 재창조해야 한다는 것은 옳은 얘기다. 그러나 인천의 구도심 재생사업은 결과적으로 실패로부터 시작했다. 시작도 하기전에 주요 구도심재생사업 지역들의 계획이 무산됐다. 그것도 누구보다 개발을 원했을 그 지역주민들에 의해서다.

정해준 보상금을 받아 쫓겨가듯 살던 곳을 나와야하는 공영개발방식에 반대하거나 전반적인 부동산 침체현상에 따른 사업성을 걱정한 목소리도 있었다. 천편일률적인 고층건물이 아니라 지역의 특성과 문화, 역사를 살린 개발을 원한 쪽도 있다.

그렇게 제물포역세권 개발이 무산됐고 가좌IC주변, 인천역이 차례로 '구도심 재생사업'에서 몸을 뺐다.

이제 남은 곳은 동인천역 주변과 가정오거리(루원시티), 도화지구 뿐이다. 물론 212곳의 재개발·재건축 지역도 있다. 시간은 흐르고 시장이 바뀌었지만 남은 도시재생사업지역들의 날씨도 여전히 '흐림'이다.

◆ 가정오거리(루원시티)

이제는 가정오거리보다 루원시티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해져가는 곳이지만 현재는 사업부지의 모습도 사업 추진 방향도 썰렁하기 그지없다.

보상을 받은 주민들은 빠져나갔고 철거가 안 된 건물들은 ‘공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적잖은 시간 동안 보상문제로 원주민들과 시, LH공사가 갈등을 겪었지만 이제는 사업 자체가 위기다.

LH공사는 최근 루원시티 사업부지를 매각할 의사를 밝혔다.

토지 매각 구상은 루원시티 사업에서 발을 빼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입체복합도시라는 모델을 국내 처음 도입하는 이 사업은 경인고속도로 직선화와 간선화를 전제로 추진됐다.

루원시티가 청라지구(영종도 연육교)와 서울까지 교통망이 이어질 경우 수요가 있지만, 고속도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LH공사가 한 것으로 보인다.

송영길 시장은 지난달 29일 인천시의회 시정질문 답변을 통해 “루원시티는 경인고속도로 직선화사업 및 인천도시철도 2호선 건설사업과 연계돼 구도심을 개발하는 핵심적인 인천시 도시재생사업”이라고 규정한 뒤 “상업·업무·주거가 공존하게 되는 루원시티와 고속도로 직선화를 통해 연결되는 청라경제자유구역이 윈-윈(win-win)하는 복합도시로 특화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경인고속도로 관리권 이관을 재추진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개발 계획 등 종합적인 계획을 재수정하고 있다”고 말해, 토지이용계획 변경도 시사했다.

임기중 마무리하겠다고 했지만 루원시티를 바라보는 눈은 마뜩치 않다. 여전히 LH공사의 입장이 사업추진에서 토지매각으로 잡혀있다.

이 때문에 인천시의회가 루원시티 사업의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토지주택(LH)공사 본사 측과 만날 계획이다.

이 사업의 공동사업시행자인 LH공사 ‘루원시티사업단’과 인천시와의 공식 논의가 수개월째 답보상태에 머물자 손실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루원시티사업단과 인천시 등 사업시행자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LH공사 본사와 시의회가 만나기로 한 데는 이 사업으로 인한 손실 규모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이다.

LH공사 지역도시개발처는 이미 시의회를 방문해 중재를 요청한 바 있는데, 시의회는 최근 토지매각 검토 등 계획 변경을 위한 용역건이 불거지자 해법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판단이다.

이미 8천억원 가량 손실이 예상된다는 전망이 나온 데다 금융 이자만 연 800억원에 달하는 등 루원시티 사업이 LH공사 뿐만 아니라 인천시 재정에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의회와 지역도시개발처는 상업용지에 대한 대안 마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루원시티와 관련된 경인고속도로 일반도로화는 국토해양부의 정책적 판단이 선결돼야 하지만 토지이용계획이나 핵심시설 유치 등에 대한 논의는 시급한 현안이다.

도시재생사업 중 유일하게 가장 많은 진척도를 보였다는 루원시티는 그러나 출발점부터 다시 삐걱거리고 있는 셈이다.

◆도화지구

제2행정교육문화타운을 콘셉트로 결정된 도화지구는 인천대학교와의 부지 문제를 놓고 공방이 예상되고 있다.

인천대학교가 송도국제도시로 캠퍼스를 이전한 지 1년. 인천시 남구 제물포 북부역세권은 고사 직전에 놓였다. 그러나 이를 해결할 대책은 전무한 상황이다.

10년째 이곳에서 상가를 임대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착찹하다. 10년 전 보증금 5천만원을 내고 이곳에 터를 잡았을 당시만 해도 상황은 좋았다. 밀려드는 학생들 덕에 월매출 5천만원은 너끈히 올렸다. 월세 150만원과 관리비 등을 내고도 짭짤한 수입이 보장됐다. 그러나 인천대가 이전한 후 현재는 하루 만원을 벌

기도 힘들다. 손님 없이 하루를 그대로 보낸 날도 있다. 보증금 5천만원은 월세 대신 깎여 현재 1천만원으로 줄었다. 월세를 몇차례 더 못내면 이마저도 쫓겨날 판이다.

제물포 북부역 상권에서는 빈 가게를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점포 임대’라는 쪽지와 함께, 자물쇠로 굳게 걸어 잠근 가게들이 현 제물포 역세권의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문제는 제물포 북부역세권을 살릴 대책은 물론이고, 이를 해결할 방안에 대한 논의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제물포 역세권 개발 사업도 취소됐고, 인천대에 버금가는 유동인구를 갖춘 단체의 유입도 계획에 없다.

제2행정타운을 도화지구로 옮기려는 계획이 추진 중이지만 5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그 기간 동안 상인들이 버텨줄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제2행정타운은 서구 루원시티에도 기회가 있어 완전히 도화지구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제물포 역세권 주민들은 물론 남구 역시도 확실한 대안을 찾아 내지 못하고 있다.

남구의회 문영미 의원은 “주민들을 살릴 수 있는 대안을 갖고 인천시와 논의를 해야 하지만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 손을 쓰지 못하는 상태”라며 “대안을 찾기 위해 인천시와 남구, 그리고 주민들간의 논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동인천역 주변

동인천역주변재정비촉진사업은 총체적 난맥상에 빠졌다는 지적이다.

‘배다리역사문화마을 만들기위원회’(이하·배다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인천시청에서 동인천역주변재정비촉진사업에 대한 시의 추진 의지 등을 묻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배다리위원회는 시가 지난 8월 배다리 일대를 역사문화마을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도 아무런 후속조치를 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개발에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간의 갈등만 고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배다리위원회는 전임 시장이 벌인 도시재생사업이 총체적으로 실패했으며, 이에 따른 문제는 시장이 바뀌고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동인천지구의 보상비와 사업비를 합하면 2조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돼야 하지만 시가 신청한 국비지원금 1천14억원 중 단 2억원만이 배정됐다.

배다리위원회는 “안개 같은 상황 속에 동인천지구는 개발 찬·반, 또는 재산권을 규제하지 않는 민영개발 민원 등으로 민-민 갈등, 민-관 갈등만 심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시가 배다리 역사문화마을 조성계획을 발표한 이후 후속조치를 하지 않아 배다리 지역에서는 투명한 정보가 부재한 상태에서 주민들의 반목과 대립만 폭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업은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않는 상황이지만 이 지역이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면서 도시가스 공급시설조차 가설하지 못한다고 배다리위원회는 설명했다.

배다리위원회는 “도시행정은 더이상 전임자의 실책에 귀속되는 일이 아니므로 이 사업이 수년 내에 가능한 사업인지부터 솔직하게 밝히고, 주민들을 설득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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