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얼굴 속에 기미 한 점 한 점, 특히 하얗게 변해버린 당신의 머리 한 올 한 올과 갈라터진 당신의 곱던 발뒤꿈치를 보면서 끝없이 고마움을 전합니다.”

배우자에게 연애편지를 꾸준히 쓰고 있는 이들이 있다. 보통의 부부라면 낯간지러운 일일 게다. 그들은 ‘ME’를 중심으로 곰삭은 부부의 정을 나누고 있다.

21세기 가족의 해체·붕괴 따위와 같은 말들이 운위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ME’ 성원들에게는 언감생심이다.

‘당신은 결혼생활의 참맛을 아십니까?’ 오는 29일 가톨릭대학 성심교정에서 인천ME 가족모임이 실시된다. 2년에 한번씩 실시되는 대대적인 잔치이다.

▲ ‘ME’의 기원

‘ME’는 ‘Marriage Encounter’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혼인의 다시 만남’으로 직역할 수 있으나 흔히 ‘부부일치운동’이라고 일컬어진다. 부부간에 더 깊은 사랑과 풍요로운 결혼생활을 하기 위해 창안된 프로그램이다.

1958년 스페인의 가브리엘 칼보 신부가 부부 사이의 관계를 강화하면 자녀 문제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서 ‘ME’가 나왔다.

1962년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28쌍의 가난한 노동자 부부들이 주말마다 모였다. 가브리엘 신부의 프로그램이 현실에 적용된 것이다.

5년 후 ME는 미국 노틀담대학에서 꽃을 피운다. 갤라거 신부는 부부들이 변화되는 것을 목격,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ME’는 96개국으로 확산됐다.



▲ 인천 ‘ME’

인천에 근대 제도나 문물이 제일 먼저 도착했다는 것은 상식이다.

‘인천ME’는 ‘전국ME’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976년 2월 주한미군을 위한 ‘ME’ 프로그램이 개설됐다.

이때 부평2동의 설요한 신부 추천에 의해 두 부부(한영식&모춘자, 최정길&김춘자)가 참여했다.

몇 차례 더 실시된 주말 ‘ME’ 프로그램에 인천의 부부들이 꾸준히 참석하기 시작, ‘ME’가 한국에 정착됐다. 1977년 6월에는 제1대 인천 ‘ME’ 대표로 정건순&김영애 부부가 선출됐다.

이후 인천에만 262차 주말 프로그램이 진행, 총 6천900쌍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 17분의 신부님과 33부부가 주말발표 봉사를 하고 있다.

▲ ‘ME’는 어떤 프로그램?

‘ME’는 주말 강습에 참여해 눈과 마음으로 배우자를 바라보는 방법을 배운다.

갈등을 겪거나 무미건조하게 지내는 부부에게 다시 사랑이 감돌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결혼문제상담소나 카운슬링교육, 종교교육으로 보면 의미가 왜곡된다.

금요일 저녁 7시~일요일 오후 5시까지 2박3일간 총 44시간 ME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세 부부와 한 신부가 조를 이루고 돌아가면서 살아온 경험을 발표한다. 대화 방식을 스스로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말뿐만 아니라 글로서도 대화한다. ME 회원들에게는 편지가 일상화돼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결혼생활 3년이 지나면 프로그램을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또한 가톨릭에서 시작됐지만, 신도/비신도를 가리지 않는다. 개신교 목사부부, 불교 법사 부부도 참여한 적 있다. 또한 결혼을 하지 않는 수녀, 원불교의 정녀들도 참여했다.

우리나라는 한해 32만 쌍이 결혼하고, 이혼건수가 13만 5천 건이나 된다. 아시아에서는 1위, OECD국가 중에서 2위에 올랐다. ‘ME’적 가치관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진 것이다.

▲ 참여방법

매월 세 번째 수요일 저녁 8시, 부부가 함께 아래 장소에서 설명을 듣고 신청서를 작성하면 된다.

인천지역(중구, 동구, 남구, 연수구, 남동구) - 답봉 가톨릭회관 312호

부평지역(부평구, 계양구) - 부평4동성당 교육관
서구지역 - 서곶성당
부천, 시흥, 안산지역 - 소사성당 성가정회관
김포, 강화지역 - 김포성당
인터넷 홈페이지(www.incheonme.com)와 전화로 문의할 수 있다. ☎(032)761-1015 김창문기자 asyou218@i-today

"부부가 원만하면 세상이 달라져요"

인천ME 정광웅 신부

정광웅(마르코·44) 신부는 천주교 인천교구청에서 가정사목부와 ‘인천ME’ 대표팀을 책임지고 있다.

정 신부는 부부와 가정문제가 원만하면 사회에서도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지론이라고 밝혔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이를테면 가정이 편해야 나라도 편하다는 동양적 가치와 닿아있다. 가정이 최고의 베이스캠프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1999~2004년까지 이탈리아에서 유학, ‘혼인법’으로 학위를 받고 교구에서 이혼문제에 대한 재판을 맡고 있다.

“이혼 때문에 법정에 선 부부를 보게 되면 열의 아홉 커플은 입에서 독한 냄새가 납니다. 바로 속이 타들어가는 냄새지요. 어떤 부부나 갈등이 있기 마련인데, 그 해결방식을 몰라서 이혼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 신부는 부부간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 바로 ‘ME’ 프로그램이라고 말한다.

이혼부부 수로 인천이 1위라는 통계청 발표를 접하고, ME에 더욱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고 한다. ME의 2박3일 프로그램에 참석한 커플 중에서 이혼은 단 한 건도 없다고 일축한다.

부부만 원만하면 자녀문제는 물론 고부갈등 따위는 남의 세상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사회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교구와 주교님이 가정성화에 많은 관심을 표명하면서 힘이 되고있다는 한다.

정 신부는 인천시, 중구청과 연계해 상담프로그램(‘가정지원센터’)을 준비, 인천이 이혼율 1위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도록 매진하겠다고 각오를 다녔다.

16년째 참여 "지금도 신혼기분"

김형일 도초옥 부부

김형일(미카엘·54), 도초옥(미카엘라·54) 부부는 1990년 ME를 경험하고, 93년부터 경험발표 봉사자로 나섰다. 정광웅 신부와 한 팀이 돼, 인천ME의 대표팀을 맡고 있다.

이들 부부는 가정불화나 자녀문제가 있어서 ME를 찾게 된 것이 아니다.



‘잘 살고 있다’라는 자신들의 생각이 착각일 수 있다는 후배의 권유로 호기심이 발동했고, 어느새 16년째 ME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27년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지만 지금도 신혼기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부부간 서로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얻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부부에게 가장 소중한 재산목록을 꼽으라면 서로에게 쓴 편지란다. 연애시절에는 한번도 편지를 써본 적이 없는 이들은 ME에 참여하면서 어느새 노트 열 대여섯 권 분량이 됐다.

서로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코끝이 찡해질 때 부부애는 최고가 된다고 한다.

“결혼할 때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들 하지만, 이후에는 쏙 잊고 사는 게 대한민국 부부의 현실입니다. 우리부부는 신혼 때 감정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고, 깊은 정이 묻어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2박3일간 진행되는 ME프로그램에 참여하다보면 마음속에 고인 물이 소나기가 돼 싹 쓸어내는 과정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나이보다 젊게 보인다는 말들을 많이 듣게된다며 미소를 전한다.

부부는 지기들에게 말로 ME를 권유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부의 집에 방문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부부애의 원천을 묻게된다는 것이다.
김창문기자 asyou218@i-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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