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이춘희 인천도시개발공사 사장

“도시에는 동그라미, 네모, 세모 등 여러 모양이 있는데 이 형태를 미리 산정해 놓고 도시모델을 얘기하는 건 잘못됐습니다. 도시는 형태로만 봐서는 안되고 훗날 들어와 사는 사람들이 만족스럽고 행복해야 좋은 도시라는 생각입니다. 결국 도시를 설계하는 사람이 얼마나 살 사람의 고민들을 많이 듣고 반영했느냐가 성공한 도시와 실패한 도시의 차이죠.”?

지난달 13일 취임한 인천도시개발공사 이춘희(55) 사장에게는 늘 ‘도시계획전문가’라는 호칭이 따라 다닌다.

하지만 화려한 이력만큼이나 거창할 거라 기대했던 이사장이 꿈꾸는 도시모델은 의외로 원론적이고 서민적이었다.?

그래선지 이 사장은 도시를 ‘도시민들의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자주 표현한다. 여기에 좀 더하면 미래에 대한 배려와 철학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 사장이 인천에서 꿈꾸는 도시는 ‘도시민들이 삶이 질펀하게 묻어나는 신명나는 미래도시’인 셈이다. ?

“인천을 배우겠습니다.”?

이춘희 사장은 아직 인천을 잘 모른다. 사장 선임 전에 인천에 대해 따로 공부할 시간도 없었지만 인천에 와서 살아보지도 않고 인천을 안다고 얘기하는 건 더 웃기는 얘기라는 설명이다.?

도시개발공사와 인연을 맺게 된 과정도 따로 준비할 시간이 없었을 만큼 짧았다고 털어놓는다. ?

인생을 크게 3기로 나눠 1기가 학교 다니며 준비하는 기간, 2기가 직장에 들어가 능력을 발휘하는 기간이었다면 이사장은 이 무렵 노후를 대비하는 3기를 준비할 생각이었다.

때마침 고려대, 전북대, 전주대 등에서 강의를 해왔던터라 일부에서 제의도 오고 해서 평소 생각대로 대학 강단에서 인생의 3기를 설계할 계획이었다. ?

하지만 새만금군산경제자유구역청장을 그만 둔 8월19일 무렵 외부의 제의를 받았고 실제 사장 공모를 위한 자료를 내고 며칠 지나서야 도시개발공사에 대한 자료를 조금 볼 수 있었지만 그는 업무 파악이라는 것이 그런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취임 4주째를 맞는 이 사장은 요즘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쁘다.?

“부부가 아무리 좋은 얼굴로 사진을 찍어도 그 속사정은 아무도 모르듯이 시간은 걸리지만 인천이나 도시개발공사도 직접 들어가서 보고 느껴야 정확히 읽어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도시평가에도 시기가 있다.?

도시는 도시계획 그 자체로 평가해서는 안 되고 좀 더 철학적인 부분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충분히 녹아있어야 한다고 이사장은 얘기한다. ?

따라서 도시에 대한 평가 시기도 구조가 완성된 시점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두 들어와 살기 시작한 이후나 되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분당, 일산, 평촌, 산본 등 국내 1기 계획도시들도 건설 후 사람들이 들어가서 살기 시작해 굴다리가 생기고 포장마차가 생기면서 본격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천송도국제도시도 뼈대만 갖추어졌지 현재는 평가받을 만한 도시의 개념으로 보기에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제는 그 뼈대에 살을 어떻게 붙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할 때라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사장이 생각하는 인천은 적어도 앞으로 몇 십년 동안은 성장발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도시다.?

한가지 색깔로만 만들어진 도시는 매력이 없듯이 인천은 과거-현재-미래가 뒤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아 어느 도시보다 매력적인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그만큼 할 일도 많다는 반증이다.?

송도국제도시의 문제를 포함해 교통, 환경, 지역사회 문제 등 도시로서 가지고 있는 과제에 신·구도심의 불균형까지 모두가 앞으로 인천시와 도시개발공사가 함께 풀어가야 할 일들이다.?

인천도시개발공사의 과제들?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요즘 공사 내부사정을 묻는 질문에 대한 이사장의 짧은 답변이다.?

여기에 취임사에서 밝힌 유동성, 수익성, 정체성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유동성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동안 인천에서는 시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많은 일들을 벌였는데 문제는 시간과 능력, 그리고 재정력에 비해 보다 많은 일을 벌이다보니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동안은 남의 돈을 빌려 벌어가면서 사업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경기가 워낙 어렵다보니 불가능합니다.”?

경기 침체에 따른 영종하늘도시 해약사태가 잇따르고 있는데다 공사채 발행도 이제는 쉽지 않다보니 자금은 통제되고 벌려놓은 사업은 많고 어려움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고 털어놓는다. ?

이러다보니 원래대로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워 27개 사업 중 일부는 포기하거나 연기해야할 수밖에 없는 입

장이다.?

수익성은 없고 공익성만 있는 사업은 인천시의 예산사업으로 유도하고, 수익성이 있지만 공익성이 없는 부분은 민간사업에 맡겨야 한다는게 이사장의 생각이다. ?

도시개발공사는 공익성과 수익성이 함께하는 사업들을 추진하고 민간기업이 할 수 있는 수익사업을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현안사업 추진 여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검단신도시 사업의 경우 재정능력에 비추어서 워낙 큰 사업이다보니 어느 정도 보상이 이루어지면 단계별 개발과 공사착수 시기 조절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털어놓는다. ?

올바른 프로세스관리자의 역할?

이 사장은 모든 일을 할 때 윗사람도 설득해야 하지만 아랫사람을 설득하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새만금군산경제자유구역청장 시절에도 그는 직원들을 설득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방법으로 토론을 권한다. 그래서 요즘도 그의 방문은 늘 위 아래로 열려있다.?

이 사장은 공직자를 프로세스관리자에 자주 비교한다. 도시민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서 보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담아내려면 시민을 클라이언트로 생각하고 관계자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절차와 과정을 관리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범죄 없는 도시만들기’도 도시설계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시작부터 어떤 구조로 설계하느냐에 띠라 범죄가 자주 발생하기도하고 발생하지 않기도 한다는 얘기다. ?

도시계획은 유비쿼터스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도시를 밝게 설계하고 밝게 만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도시를 설계하면서 이런 모양이면 행복할 것이라는 추측은 안된다. 도시를 밝게 만들고 멋지고 재미있는 도시를 만들어 내는 일도 결국 프로세스관리자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인천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할 것이고 다른 많은 분들도 저를 만날겁니다. 그 만남을 소중히 생각하고 공부하는 자세로 프로세스관리자의 역할을 해낼 생각입니다.” ?

당장 유동성 해결을 위해 걸음을 재촉하는 이사장이 인천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인천을 설계하는게 아니라 시민들의 생각을 알아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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