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다문화 사회로 가는 길-1) 여성

이제 다문화 가정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은 국적을 넘어 하나의 가정을 이뤄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인천시 전체 인구의 2.3%에 해당하는 1만 3천 227가구가 다문화 가정이다. 결혼 이민자 수는 7천 172명에 달한다.

그러나 사회적 편견과 제도적 테두리는 아직도 이들의 한국살이를 힘들게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다문화 가정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국민들의 편견과 함께 법적인 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에 정착한 이들이 바라는 건 크지 않다. 가족들과 행복하게 생활을 꾸려가는 것 단 하나다.

일반 한국인들 처럼 살아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번 1편에서는 결혼을 통해 한국에서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이주여성과 편협한 일부 시선에 희생돼 고통을 받고 있는 이주여성을 비교해 본다. 그리고 평화로운 다문화 가정을 구성하기 위해 개선돼야 될 부분을 진단해 본다.

이웃·시댁식구 자식처럼 대해줘 문화차이 있지만 이젠 한국사람

▼ 긍정사례
정춘홍(33·여)씨는 아침에 눈을 뜨면 가족들을 위해 아침 식사 준비를 한다. 전기 배선 업체에 다니는 남편과 6살 난 아들을 위해서다. “잘 먹고 열심히 살아야죠.” 정씨는 힘차게 말했다.

   
중국 출신인 정씨는 2001년 한국에 왔다. 조선족인 그는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동네 여성들을 따라 한국을 찾았다. 처음 취직한 곳은 식당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설거지만 했다. 3개월이 지나 조금 말문이 트이자 설거지를 벗어나 김밥을 쌌다. 식당 주인들도 정씨의 사정을 헤아려 자식처럼 잘 대해 주었다.

그러던 중 지난 2004년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미리 한국에 정착해 있던 외숙모가 소개를 시켜줬다. 정씨는 남편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어느 정도 돈을 벌면 중국으로 넘어가 살아야지’라고 생각했던 정씨는 이내 생각을 바꿔 한국에 정착해 살기로 마음먹었다.

걱정도 했었다. 시댁 식구들이 행여나 괴롭히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그러나 기우였다. 시댁 식구들은 정씨를 가족 같이 대해줬고 정씨는 그런 시댁 식구들이 남편보다 더 든든하고 의지가 됐다.

그렇게 살아온 한국 생활 10년. 정씨는 본인 스스로가 이제 한국 사람이 다 됐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정씨의 된장찌개를 먹을 때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린다. 처음 한국에서 취직한 식당에서 갈고 닦은 솜씨다.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기도 좋아하고 아이의 유치원 학부모들과 자주 만나 교육 정보를 주고받기도 한다. 아이 역시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려 논다.

가부장적인 한국 남성의 모습도 이제는 익숙하다. 결혼 초기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하던 남편은 이제 집에 들어오면 손 하나 까딱 하지 않으려 한다. 처음에는 이 부분을 놓고 다투기도 많이 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 남자들이 다 그렇지 뭐”하며 넘겨 버린다.

“중국에서는 남편들이 가정 일을 맡고 있거든요. 여자가 왕이에요. 그런데 한국은 그게 반대예요. 처음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도 있었지만 지금은 한국사람 다 됐어요” 정씨는 말했다.

이런 정씨에게도 걱정은 있다. 바로 아이 문제다. 지금은 나이가 어려 친구들과 잘 어울려 지내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아이가 행여나 친구들에게 “너희 엄마 중국 사람이라며”하고 놀림을 당할까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어린 마음에 아이가 상처를 입지나 않을까 정씨는 가장 걱정스럽다. 이런 이유로 정씨는 둘째 아이를 가질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제 아이는 한국 사람이에요. 이민자라는 색안경이 우리 아이들을 다치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제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정씨는 말했다.

행복한 가정 부푼꿈 무시에 좌절 결국 이혼…고향으로 갈 수도 없어

▼ 부정사례
1일 아미(34·여)씨는 한국이주인권센터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남편과의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인 가운데 한국이주인권센터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던 아미씨의 눈가는 어느 새 촉촉이 젖어 있었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한국 땅을 밟았지만 정작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치욕과 모욕뿐이었다. 필리핀 출신인 아미씨는 지난 2001년 남편을 만났다. 부모님을 여의고 남매들과 살던 중 모 종교단체의 중매로 남편을 소개받았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본인은 물론 가족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판단한 그는 남편을 따라 한국을 찾았다.

그러나 남편은 아미씨를 인간적으로 대해 주지 않았다. 이혼 경력이 있는 남편은 결혼 이후에도 전처와 잦은 만남을 가졌다. 아미씨가 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처를 집으로 불러 술을 마시기도 했다. 남편이 전처와 술을 마실 때면 아미씨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고 술 시중을 들어야 했다.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남편은 월급을 본인을 위해서만 사용했다. 아미씨에게는 생계비조차 주지 않아다. 한국말도 서툰 아미씨는 어렵사리 공장에 취직해 간신히 생계를 이어갔다.

시댁 식구들 역시 아미씨를 무시하고 구박했다. 시어머니는 툭하면 “재수없다. 나가버려라. 니네 나라로 돌아가 버려라”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남편 역시 “내가 널 왜 데려왔는지 모르겠다. 니네 나라로 제발 사라져라”고 구박했다.

하지만 아미씨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외국으로 시집가 이혼하고 돌아왔다’는 주변의 시선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경제난을 겪고 있는 가족들의 생계도 걱정이었다. 아미씨는 모든 치욕을 꾹 참고 결혼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지난 2007년 남편이 집을 나갔다. 전처와 함께 살기 위해 아미씨를 버린 것이다. 한국말도 서툴고 도움 받을 곳을 몰랐던 아미씨는 3년 동안 혼자 생활했다. 그리고 어렵게 이혼 결정을 내렸다. 인천지법은 두 사람의 이혼과 함께 “남편은 부인에게 위자료 1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남편은 위자료는 고사하고 “이혼을 할 수 없다”며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아미씨를 버리고 집을 나갔던 남편은 이혼도 해주지 않을 생각이다. 위자료와 함께 고통에서 벗어날 것이라 생각했던 아미씨는 또 한 차례의 법적 싸움을 앞두고 있다.

“한국에서 가정을 꾸리고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너무 힘드네요. 못 사는 나라에서 왔어도 사람이잖아요” 아미씨는 울먹였다.

'돈 받고 한국 온 여성' 치부 큰 문제 결혼중매업체 제재 방안도 마련돼야

"돈으로 여자를 샀고 그 여자를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일부 시민의 저급성이 다문화 가정을 망치는 가장 큰 문제 입니다." 한국이주인권센터 최현모 사무처장은 이같이 강조했다.

   
결혼중매업체들에게 돈을 주고 외국 여성들을 소개 받은 일부 남성들이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하나의 물건으로 취급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지난 7월 결혼 일주일 만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남성에게 살해된 탓티황옥씨가 가까운 예다. 부인을 물건과 같이 취급한 저급한 남성성에 탓티황옥씨는 머나 먼 타국에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최 처장은 이주여성들을 "돈만 보고 한국으로 넘어온 속물"처럼 취급하는 일부 시선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루 한 끼 먹고 살기도 어려운 자국 사정에서 보다 나은 삶을 열망하는 그들의 바람을 단순히 '돈 받고 한국으로 넘어온 여성'으로 치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족의 삶과 본인의 삶을 위해서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게 바로 이주 여성들. 세상 그 누구도 이들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주 여성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각이 변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이와 함께 제도적 개선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혼한 이주 여성의 경우 한국으로 귀화하기 위해서는 이혼한 남편의 결격 사유를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정식적으로 재판을 하지 않는 이상 이는 불가능하다. 즉 한국에 남기 위해서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이주 여성은 물론 다문화 가정을 망치는 하나의 장애물로 작용한다고 최 처장은 주장했다.

이뿐 아니라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결혼중매업체에 대한 제재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여성을 돈으로만 보고 한국 남성들의 구체적인 신상 정보도 알려주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결혼을 성사시키고 있는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문화 가정은 말 그대로 다양한 문화를 갖고 있는 가정입니다. 그런데 한국인의 잣대로만 이들을 재단하려 하면 문제가 있지요. 다문화 가정이 한국인으로서 정착해 살아갈 수 있도록 인식과 제도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최 처장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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