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人터뷰> 36. 안길원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회장

   

안길원(66) 무영건축 회장이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회장으로 지난 8월18일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출근 첫날 집무실에서 만난 안 회장은 '봉사에 문외한'이라 걱정부터 앞선다는 겸손을 표했다. 하지만 벌써 머릿속은 인천지사의 미래에 대한 구상들로 가득차 있었다. 인천지사를 '국제도시 인천'에 걸맞은 적십자로 설계해 보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그는 백령도와 인하대에 장학금 지원·아시안게임 유치 활동, 꿈나무 체육발전 기금 지원 등 인천을 위해 나누고 활동한 '인천사람'이다. 2009년에는 인천사랑 노래를 제작해 보급하기도 했다.

무영건축을 굴지의 건축회사로 키운 '성공한 기업인'의 또다른 출발. 빨간 스트라이프 넥타이를 맨 '은발의 청년. 그에게는 부담감보다 열정이 넘쳐났다. 그는 인간에게는 세 부류의 천적이 있다고 했다. 게으른 사람, 소극적인 사람,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 인천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계신데, 인천지사 회장을 맡게 된 것은 조금 의외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사실 내가 올 자리는 아니다. 박애주의를 실천하고 공헌을 많이하는 분이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락을 했지만 걱정이다.

인천지사 건물을 설계하면서 인연을 맺었고 적십자활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적십자 본연의 활동이 사회를 위한 일이라 내 뜻과 생각이 맞는 점도 있었고. 혹시라도 내가 일을 함으로서 조금이라도 인천에 적십자에 보탬이 된다면 해야하는 일 아닌가 생각했다.

사실 내가 올 자리는 아니다. 박애주의를 실천하고 공헌을 많이하는 분이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락을 했지만 걱정이다. 인천지사 건물을 설계하면서 인연을 맺었고 적십자활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적십자 본연의 활동이 사회를 위한 일이라 내 뜻과 생각이 맞는 점도 있었고. 혹시라도 내가 일을 함으로서 조금이라도 인천에 적십자에 보탬이 된다면 해야하는 일 아닌가 생각했다.

 
■ 인천지사를 ‘어떻게 이끌겠다’는 청사진은 그리고 계신지요. (출근 첫날)너무 성급한 질문이죠.

그건 그렇다(웃음). 지구촌 시대다. 국경이 없어졌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글로벌 해야하지 않겠는가.

인천이 글로벌도시로 한국의 ‘경제 수도’로 성장하고 있는 단계다. 그렇다면 인천지사도 글로벌화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다문화 정착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싶다. 이 부분은 중앙적십자와도 공감을 한 상태고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받기도 했다.

인천이 먼저 교류를 시작하려고 한다. 특히 동남아시아 국가와 적극적인 교류를 시작할 생각이다. 우선 10월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해 하노이 적십자와 연계활동을 추진하려고 한다. 베트남 두 곳에 회사(무영건축)의 지사가 있다. 아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나 백령도로 피난와 터를 잡게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북 교류나 지원에 대한 구상을 여쭙는다면 민감한 질문인가요.

남과 북이 만나서 얘기하다보면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은 북과 최대접경 도시다. 인천시 역시 대북 교류 강화에 대한 구상을 갖고 있다. 시와 같이 할 수 있는 일은 같이 하고 시가 할 수 없는 일들은 우리가 찾아서 할 것이다. 교류와 지원이 별개는 아닌 것 같다. 소통하고 교류 하다보면 어떤 형태로는 지원도 이뤄지지 않겠나.

■ 백령도에서의 성장기를 듣고 싶은데요. 피난 오셔서 가족들과 고생 많이 하셨죠. 인천 유학·대학 시절까지 말씀 좀 해주세요.

1951년 9살때다. 철수선을 못타서 초도에서 전마선을 타고 바람따라 물결따라 두무진에 도착했다. 많이 배고팠다. 피난 초기 고구마 수확이 끝난 밭을 파헤쳐 먹을거리를 찾고 풀을 뜯어 밥을 지어 먹었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엿을 고아 팔았기 때문에 땔감을 대기 위해서 집안의 남자들은 낮에는 나무를 하러 다녔다. 백령도에 주둔한 미군들에게 엿을 생필품과 교환해 되팔아 연명했다. 아버지는 낚시로 잡은 고기를 인천에 나가 팔아 생필품을 사서 파는 일을 했다.

사실은 내가 2년 젊게 살고 있다. 가정이 어려워 2년간 학교를 끊었다(웃음). 공부를 꽤나 잘했는데 인천고에 입학할때 나이로 인한 감점제가 있어서 나이를 고쳤다. 처음에는 하숙하다 가정형편이 괜찮아 져서 송현동 집을 마련했다.

그러다 인하공대에 진학했다. 인하공대도 최고의 최고학교였기 때문에 서울대로 진학하지 않았다. 그 당시는 건축다운 건축이 없었을 당시라 친구와 함께 건축과를 선택했다.

(피난시절 전교1등을 하던 손자에게 할머니는 면서기가 되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60년전 면서기는 밞을 굶지 않고 살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었다고 했다.)

■ 졸업후 대한주택공사에 입사했다가 무영건축을 창업하셨는데, 건축가에 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인가요.

그렇다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그 당시 꽤 괜찮은 직장이었는데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기술·건축사 자격시험 등 매번 시험에 도전할때마다 합격했다.

창업후 열심히 일했다. 그만큼 회사도 발전했다. 우리회사는 사원으로 입사에 사장이 된 사람도 있다.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이룰 수 있는 직장이다.

■ 회사 경영이념이 매출 1%는 사회 기부다. 또 회사를 대를 물려 주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당연히 내놓아야 하는 것들이다. 기업의 이윤을 사회로 환원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정한 소통이다.

회사는 같이 일군 것이니 모두가 주인이다. 모체인 무영건축은 대를 물려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실천할 것이다. 창사 30주년이 되는 2015년까지 회사를 ‘글로벌 톱 10’에 올려 놓은 후 은퇴 할 것이다.

■ 인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그간 지역사회에 공헌활동을 활발히 하셨는데….

내가 성장한 곳도 꿈을 키운 곳도 인천이다. 인간으로 만들어 줬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건축가로 만들어 줬다. 누가 뭐래도 내 뿌리는 인천이다. 뿌리를 지키는 일을 하고 싶었다.

창업초기에는 거들떠 보지 않았는데 철이 들었다고 해야하나. 재산에 대한 큰 욕심도 내지 않으려 한다. 집사람 또한 그런것에 별 관심도 없고. 다만 집사람한테는 미안한 점이 있다. 신문이나 타인들을 통해 좋은 일한 소식을 들었을때 ‘왜 먼저 말을 하지 않았느냐 말리고 싶은 마음 없는데’라며 섭섭해할 때다. 하지만 그때뿐이다(웃음)

■ 성공한 기업가로서 젊은이들에게 성공 비결이나 자신만의 철학을 얘기해주시죠.

그런 말을 듣기 부담스럽고…. 나는 회사의 상머슴이다. 해외출장을 다녀와서도 아침에 도착하면 바로 회사로 직행한다. 밑에 사람이 좀 힘들겠지.

24시간을 시분초로 나눠 30시간 처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사람들이 들으면 웃겠지만) 거처는 집무실이며 집은 단지 잠자러 가고 밥 먹는 곳이다.

총각시절부터 아침 5시에 일어나 일곱가지 신문을 본다. 그래야만 사회를 제대로 볼 수 있으니까. 논조가 다르니까 다 봐야 한다. 7시 뉴스도 꼭 챙겨봐야 아침밥이 먹힌다. 눈이 나빠져서 안타깝지만 책도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한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이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소통을 잊지 말고 뿌리를 지키라는 것이다.

송도국제도시에는 그가 이끌고 있는 무영건축이 설계한 인천타워가 들어선다. 151층 초고층 건물은 ‘글로벌 인천’의 상징물이 될 것이다. 이번에는 글로벌 인천지사를 설계하고 짓겠다고 나섰다. 인천지사가 적십자의 위상을 대표하는 상징이 될 수 있도로 혁신을 꾀하겠다는 각오다.

“사진으로 사계의 오묘함도 담아보고 저술 활동도 하고 싶어요”

아름다운 은퇴를 꿈꾸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간 해온 ‘인천사랑’ 실천에는 은퇴라는 말을 삼가했다.

 


 

   
안길원 회장은

▲1944년 6월 21일 황해도 출생

학력

▲1963년 인천고등학교 졸업

▲1967년 인하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 졸업

▲1997년 중앙대 건설대학원 수료

▲1997년 중국 청화대학교 연수

▲1998년 미국 미시간 대학교 건축 및 도시계획대학 최고급과정 수료

▲2001년 경기대학교 공학석사

▲2009년 경기대학교 공학박사

경력

▲1969 ~ 1970 한국양회산업 건설사업부 근무

▲1970 ~ 1980 대한주택공사 근무

▲1980 ~ 1985 동인건축그룹 대표

현재활동

▲1985 ~ ㈜ 무영건축 대표이사 회장

▲2001 ~ TMI(한·중합작회사) 회장

▲2005 ~ (주)엠와이이엔씨 회장

▲2006 ~ (주)무영아멕스 회장

▲2006 ~ 새얼문화재단 비상임 이사

▲2009 ~ 인천광역시 체육회 부회장

▲2009 ~ 인천시 ‘사랑의 집고치기 범시민협의회’ 위원

▲2010 ~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제12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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