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점자 창시 박두성 선생' 문화사업선양회 부회장 박현재씨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셨다면 생가 복원과 기념공원사업은 입 밖에도 내지 못했을 겁니다. 자신을 내세우는 분이 아니셨으니까요.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 자부심을 주고, 뜻과 정신을 기리자는데 의미를 두고 여러분들이 나서셨습니다. 사실 부회장 자리도 맡으라고 하셔서 맡게 됐죠.”

시각장애인들의 한글점자 ‘훈맹정음’ 창시자 고 송암 박두성(1888~1963)선생 손자 박현재(68) 박두성선생문화사업선양회 부회장은 말했다.

지난 12월 인천시의회는 박두성 선생 생가 복원과 기념공원사업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문화사업선양회는 강화 교동의 생가와 주변의 부지를 매입 기념공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수산동에 있는 묘지도 이장할 계획이다. 지난 3월에는 둘째 딸인 화가 박정희 여사 모녀가 기금조성을 위해 그림전을 열었다. 하지만 여태껏 부지 매입 진행과 사업을 위한 용역착수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시와 강화군의 예산지원도 아직 추진되지 않은 상황이다.

박두성 선생은 시각장애인들의 대부 또는 세종대왕으로도 불리운다. 강화 교동에서 태어난 박두성 선생은 일제시대 한국농아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들과 인연을 맺었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겨 한글점자를 개발하고, 성서와 각종 책자를 점자로 번역해냈다.

박두성 선생은 교육적인 업적뿐만 아니라 인격과 품성으로도 추앙을 받는 인물이다. 율목동 그의 집에는 항상 시각장애인들이 모여들었다.

“대청마루에는 시각장애인 손님들이 늘 앉아계셨어요, 할머니는 끼니때마다 밥상을 차리셨습니다. 찬은 없어도 밥상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대했어요. 새벽에 거지가 문을 두드려도 빈손으로 보내는 법이 없었죠.” 박 부회장은 박두성 선생의 생전 모습을 회상했다. 가족에게는 애정표현이 없어도 시각장애인들이나 이웃에게는 항상 따뜻하고 인자한 분으로 반추했다.

정부는 박두성 선생에게 1992년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했고, 2002년 당시 문화관광부는 이달(4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

“오는 8월 추모제때는 밑그림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예산 확보가 가장 힘들겠죠. 2~3년 안에는 뭔가 결실이 있었으면 해요.”

“장애인들도 받기보다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죠.”

박현재 부회장은 시각장애인문화센터를 세우는 것이 소망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음악 미술 등 취미를 익혀 무대에 올려 관객에 기쁨을 주는 것도 ‘나눔’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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