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문화예술교육은 예체능교육?

교육이라는 단어에서부터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초중고 12년간을 대학 입시에 저당 잡혀야 하는 이 나라 교육 현실의 체험자라면 부자연스런 일은 아닐 터이다.

그런데 그 교육이라는 단어 앞에 문화예술이 붙는다면?

이는 혹 예체능이라는 이름의 정체모를 오랏줄에 묶여 교실 저 구석 변방과목으로 귀양살이 가버린 음악, 미술 따위를 일컫는 말이 아닌가?

학창시절 미술시간, 음악시간이란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 갇혀 준비물 못 챙겼다고 매 맞는 시간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준비물 잘 챙겨서 적당히 때우면 되는 시간들이었건만 뭐가 모자라 새삼스레 교육씩이나 한단 말인가.



 
2005년 여름. 강화도 화도마리 공부방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여 동요앨범을 만들고 있다.

문화예술을 죽이는 학교교육

그러나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여기서 말하는 학교문화예술교육이란 녹음기 틀어놓은 듯 가르치는 선생과 앵무새처럼 외우는 학생들 사이의 그런 교습을 말하는 게 아니다.

도무지 기성 교육제도 하의 문화예술 교육이란 게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문화예술 알레르기 환자들을 양산하게 되는 모순 된 시스템이다 보니 그 치유책으로 등장한 것이 학교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인 것이다.

불가(佛家)에서 이르길 아비를 만나면 아비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했던가?

문학을 만나면 문학을 죽이고 미술을 만나면 미술을 죽이는 것이 오늘날의 문화예술교육 현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선생은 가르치고 학생은 배우는 일방통행식 교육이니 도무지 자유로운 상상력이 발붙일 자리가 없을 수밖에.

일방통행식 교육에서 쌍방향 교육으로

동서고금의 훌륭한 교육적 사례 치고 일방통행식 교육이 통했던 적은 거의 없다.

학생은 선생에게 감동하고 선생은 학생 눈높이에서 공감하는 교육이야말로 참교육일 터이다.

여기서는 선생과 학생의 구분이 그리 완강하지 않다. 서로가 서로를 배우는 상호교육. 이것이야말로 학교문화예술교육이 추구하는 참교육이다.

교과서의 울타리 벗어난 표현의 자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거니와 백번 듣는 것보단 한번 보는 편이 낫고 백번 보는 것보단 한번 해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학교문화예술교육은 그래서 체험을 중시한다.

학생들이 직접 교과서의 울타리를 벗어나 직접 만들고 느껴보는 가운데 배움의 즐거움은 배가된다.

프랑스의 유명한 영화감독 프랑소와 트뤼포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방법은 영화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자유로운 표현 속에 자유로운 상상력이 깃들게 마련이고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시민들은 이러한 교육적 환경 속에서 성숙한다.

이들 없는 문화도시는 상상할 수조차 없을지 모른다.
강경석 인천문화재단 문화네트워크팀 netka@ifa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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