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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냄새 나는 세상 '흠뻑'…효 실천·추억쌓기 '덤'⑨가림고등학교 '농촌봉사활동'
1990년대 중반, 전남 진안에 용담댐이 들어서면서 수십 년 동안 가꿔온 기름진 논과 밭, 과수원, 집들이 모두 물이 잠겼다.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실의에 빠졌고 일부 수십여 가구가 인근 배넘실마을에 터전을 마련했다. 하지만 마땅한 소득원이 없던 이들은 당장에 먹고 사는 문제에 닥칠 수밖에 없었다. 농경지를 개간해 배추와 무 고추 등 농작물을 심었지만 매년 가격폭락으로 빚만 늘면서 깊은 시름에 잠겼다.

상황을 보다 못한 금양교회 이춘식 목사(현 배넘실마을 위원장)는 어느 날 밭에 방치된 배추를 트럭에 싣고 도시 교회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배추 장사를 했다. 배추뿐 아니라 고추 감자 고구마 콩 한봉꿀 등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직거래를 확대해 나가면서 배넘실마을과 도시 교회들과의 교류의 물꼬를 텄다.

배가 넘나들었다는 유래에서 이름이 붙여진 배넘실마을은 전국 교회는 물론 단체와 기업, 학교까지 도농 교류를 확대하면서 점차 생기르 띠기 시작했다. 많은 봉사자들로 인해 마을 환경이 바뀌었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찾아오는 관광객도 늘어 활기가 넘쳐났다. 배넘실마을은 자생적, 자발적인 공동체와 바람직한 마을 만들기 모델이 된 셈이다.

인천 서구 가림고(교장·정영숙)도 이 공동체 복원 작업에 큰 역할을 했다. 2005년부터 매년 배넘실마을을 찾고 있는 학생들은 도심에서 느낄 수 없었던 시골의 정겨움을 맛보고 수몰민들의 애환을 느끼며 공동체를 이해했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방법을 터득하며 ‘사람냄새 나는 세상’에 흠뻑 취했다.

▲배넘실마을과 가림고의 만남

2003년 개교한 가림고는 2005년 배넘실마을로 처음 봉사활동을 떠났다. 교회를 다니던 한 교사가 마을 소식을 듣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한 일이었다. 학교 차원에서 학생들의 봉사활동 시간을 인정해줄 수 있는데다 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배울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농활을 갔다 온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교사들도 마을에서 겪은 활동을 통해 믿음을 갖고 지속적인 교류를 약속했다.

이듬해 윤재로 제2대 교장이 부임한 후 가림고는 본격적으로 배넘실마을과 자매결연을 맺고 지금까지 매년 방학 때마다 60~70명의 학생들이 꾸준하게 농활을 펼치고 있다.

▲가림고 학생들의 흔적이 묻어나는 배넘실마을

60~70명의 학생과 10여명의 교사, 가림고 지역사회어머니회 등 총 100여명의 대인원은 배넘실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동네를 둘러보고 집집마다 방문해 ‘신고식’을 한다.

2박3일의 일정을 알차게 쓰기 위해 담장 벽화그리기 팀, 감자 캐기 팀, 잡조제거 팀 등 마을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서 활동을 한다.

   
특히 5년여 동안 진행한 담장벽화 그리기는 배넘실마을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대부분 노인들이 살고 있는데다 시멘트 담장 등으로 삭막했던 마을을 벽화를 통해 아름답게 가꾼 것이다. 가림고 교사들과 마을 이춘식 목사가 논의해 담장에 그림을 스케치하면, 학생들과 주민들이 페인트를 정성스럽게 칠했다. 마을 담장 곳곳에 그려진 그림은 배넘실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일을 하는 학생들은 대화를 통해 농촌을 이해하고 땀 흘려 얻는 노동의 즐거움으로 보람찬 경험을 얻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형성된 관계는 공동체를 더욱 돈독하게 만든다.

학생들이 집에서 쌀을 가져오면 마을 부녀회가 식사를 준비한다. 마을에서 나는 농산물로 반찬을 만들어 학생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매일 이야기꽃을 피운다. 매 식사 때와 새참, 야식 때 마다 차려주는 찐 옥수수 찐 감자 수박 등은 시골의 정을 느낄 수 있다. 밤이면 마을 주민들이 모여 삼겹살 파티를 열고 노래 등 장기자랑 시간이 펼쳐진다.

모든 일정이 끝나면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구입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돕는다. 이 교류는 인천에 와서도 지속된다.

▲미당마을에 꽃 피는 효(孝)

배넘실마을의 교류에 이어 2007년 충남 청양군 미당마을에서도 봉사활동 요청이 왔다. 청양이 고향인 윤재로 교장은 지리상으로도 가까운데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심어줄 수 있을 것 같아 학기 중 놀토(노는 토요일)를 이용해 1박2일 주말 봉사활동을 추진했다.
   


미당마을도 매년 60~70명의 지원자들이 몰린다. 모판 나르기, 고추 버팀목 심기, 장곡사 일대 환경정화 등 일손 돕기도 있지만 무엇보다 홀몸노인 방문으로 효 실천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마을 이장 또는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조를 짜 사탕 설탕 양말 치약 등 생필품 보따리를 갖고 혼자 사는 어르신의 집을 방문한다.

어르신이 살아온 삶을 회상하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으면 학생들은 조용히 말동무가 돼 주고 어깨나 다리를 주무르고 팔짱도 끼며 자연스런 스킨십을 한다.

집 안팎 청소는 물론 학생들이 준비해온 장기자랑으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 헤어질 시간이 되면 학생들은 시골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 생각에, 마을 어르신들은 도시에 있는 자녀와 손자손녀 생각에 어김없이 눈물을 쏟는다.

최근 많은 가정들이 핵가족화 되면서 노인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미당마을 활동을 통해 다시금 어르신들에 대한 효와 사랑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학생들은 농활을 통해 이웃과 어울려 사는 방법, 마을을 지키기 위한 공동체의 노력, 어르신에 대한 예의, 자연의 푸근함과 정겨움을 깨닫고 소중한 추억을 담아간다. 조자영기자 idjycho@i-today.co.kr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며 얻는것 많아"
가림고 교사·학생


“선생님! 올해는 언제 배넘실마을에 가요? 미당마을도 가는 거죠? 빨리 갔으면 좋겠어요.”

매년 학기 초마다 가림고에는 농활 일정을 묻는 학생들의 문의가 줄 잇는다.

1학년 땐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농활을 갔던 학생들은 2학년이 되면 농촌과 공동체에서 느꼈던 삶과 효, 도심에서 배울 수 없던 교육을 또 한 번 실현하기 위해 농촌 행을 택한다.

   
지난해 배넘실마을과 미당마을을 다녀온 교사와 학생들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저희 같은 도시 학생들이 농사일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오히려 그 분들께 피해나 끼치지 않으면 다행이죠. 하지만 그러한 생활 속에서 어르신들과 부딪히고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며 알게 모르게 얻어지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학생들은 어르신들의 일손을 도우며 꾸중도 듣고 칭찬도 받으며 사람과의 소통법을 자연스럽게 익힌다. 노인들과 가깝게 지낸 세대도 아닌데다 낯선 사람에게 말도 못 붙여 쭈뼛쭈뼛 하다가도 어르신들이 먼저 다가와 진심으로 대해주면 이내 경계심이 풀어진다. 어색했던 관계도 개선되고 노인에 대한 선입견도 무너지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수몰민들의 아픈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지만 마음의 벽을 허물고 그들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넉넉한 마음씨를 갖게 되는 것이다.

교사들도 “매년 농촌을 갈 때면 논밭의 보리와 벼를 처음 보는 학생들이 굉장히 많다”며 “직접 눈으로 보고 살아 있는 농촌 교육을 몸소 느끼며 자연과 친해진다”고 말했다.

반찬도 더덕, 두릅 등 도시에선 잘 접하지 못하는 것들이 나와 처음엔 꺼리지만 재료의 신선함과 향긋한 맛에 입맛도 자연스럽게 바뀐다.

마을 뒷산에 올라가 소리도 질러보고 정자에서 쉬며 농촌의 여유로움도 만끽하며 도심에서의 스트레스도 풀 수 있다.

학생들은 “함께 농활을 간 친구들과 한 공간에서 지내며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마을의 또 다른 공동체와 어울리며 상대방에 대한 예의, 예절을 익힐 수 있었다”며 “일회성 봉사가 아닌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을 통해 농촌 마을이 더욱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자영기자  idjycho@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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