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60년 전통의 권오길손국수

다시마, 단호박, 검정쌀, 메밀, 백년초, 녹차, 태양초(고추장), 쑥…. 이런 천연재료만으로 순수하게 색을 낸 노랑, 연두, 주홍빛 국수들.

지난해 하반기, KBS 텔레비전에서 주말드라마 ‘슬픔이여 안녕’이 방영될 때 사람들은 극중에 나오는 색색깔의 아름다운 국수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런 국수가 어디에 있지?’ ‘실제 우리도 사먹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곳은 우리 곁에 있었다!!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 계산시장내 자그마한 한 점포. ‘권오길손국수’라는 간판이 붙어있고 텔레비전에서 보던 바로 그 국수들이 매장앞에 가즈런히 진열돼 있다. 가게안은 국수뽑는 기계와 포장대, 진열장 등으로 비좁을 정도지만, 이곳이 전국에 웰빙국수 바람을 몰고온 현장이다.

“이렇게 이름이 났을 때 가게를 늘려서 국수를 많이 만들어내면 돈을 더 벌텐데 왜 비좁은 옛날 가게를 고집하느냐며 한심하다는 얼굴로 쳐다보시는 분들도 있어요.(웃음)

제 속뜻은 모르시구요. 저는 돈을 버는 장사꾼으로보다는 진짜 국수, 누구나 맛있다고 알아주시는 국수를 만드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흰 가운에 모자를 쓴 주인장 권오길씨(47)가 소탈하게 웃는다.



수십년 국수를 먹었는데도 여전히 여름이면 하루 두끼는 국수를 먹어야 할 만큼 그 자신 국수예찬론자이자 국수애호가인 권씨. 어려웠던 시절, 먹고 살기 위해 국수만드는 일을 시작했던 아버지(지난해 작고)를 도우며 ‘국수’를 처음 알게됐던 때부터 지금까지 왜 그렇게 국수가 좋은지 모르겠다.

“사실 국수는 없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으로 돼 있고, 동그랗거나 각진 모양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지 않습니까. 그런 평범함을 깨고 싶었습니다.

얼마든지 모양 변신이 가능하고, 웰빙식품으로 고급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지난 수 년간 겪었던 시행착오와 연구과정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인공색소, 아니 천연색소도 안되고 오직 진짜 천연식물 분말만을 사용하자, 호화(면이 익는 정도)시간은 줄이고, 노화(먹는 동안 면이 불어나는 정도)시간은 늘이자, 면 가닥가닥이 얇으면서도 각이 지지 않도록 해 목넘김이 부드럽도록 해보자….

그는 가게안에 휴대용 가스렌지 4대를 놓고는 동시에 면을 끓이기 시작해 시시각각 어떤 면발 맛이 나는지를 수십차례 분석하며 면의 반죽, 숙성, 소금의 양 등이 최상의 조화를 이루는 접점을 찾아나갔다.

색깔 역시 가장 고우면서 제 맛도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당 수만원씩 하는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국수를 뽑는 기계나 말리는 방식도 옛 어른들의 지혜를 그대로 따랐다. 무조건 빨리 많은 양의 반죽을 만들어낼 목적으로 만들어진 현대식 기계는 옛 것보다 국수의 쫄깃함을 덜 낸다는 것이 그의 지론.

말릴 때도 외부의 건조와 내부의 숙성, 다시 외부 건조를 2~3회 반복하며 정성을 들여야 소금기가 고루 면발에 배 최상의 국수가 된다.

국수기계를 오래 다루다보니 스스로 필요한 기계도 개발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무거운 반죽을 계속 옮겼더니 두 팔을 못쓰겠어요.

커다란 집게를 천장에 매달아 반죽롤을 자동으로 이동하게 했더니 너무 편해요. 넓적한 국수 반죽은 서로 붙지 않도록 밀가루를 조금씩 뿌려줘야 하는데 일일이 손으로 하려니까 힘도 들고 양도 일정치 않아요. 그래서 이렇게 자동센서와 모터를 달아 원하는 양 만큼 전분이 내려오게 했어요.”

텔레비전 드라마에 참여하게 된 뒷 얘기가 궁금했다.
“원래 ‘무한지대Q’라는 프로에서 먼저 소개가 됐어요.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60년 된 곳들을 소개하는데 어느 면류업계에서 우리 집을 알려줬다네요.

그 후 국수제조업을 주 내용으로 하는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드라마를 준비하던 제작팀들이 우리 집을 알고는 찾아왔더라구요. 이 가게에서 현장촬영을 하려고 했는데 너무 비좁으니까 KBS별관 세트장에 아예 국수기계와 국수들을 진열하기로 바꿨지요.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촬영장에 나가 김동완씨같은 연기자들에게 기술지도를 해줬구요. 여기서 국수 뽑으랴, 서울 올라가랴 정신없이 보냈지만 참 좋은 경험이었어요.”

탤런트 한진희씨는 이런 좋은 국수를 왜 유명 백화점같은데서 팔지 않느냐며 내가 얘기를 해줄 수도 있다고 하더란다. ‘무조건 많이 만들어 돈을 버는 것’보다 ‘소량이라도 권오길이라는 이름을 걸고 최상의 제품만을 만들겠다’는 그의 속내도 모른채.



설을 앞둔 지난 1월은 정말 어떻게 지나갔는지 정신이 없었다. 드라마 여파이기도 했지만, 그동안 입소문으로 ‘정말 맛있는 국수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청와대, 국내 굴지의 대기업 등이 앞다투어 명절 선물세트를 주문했기 때문.

유명한 모 국회의원은 일손이 달리면 보좌관들이라도 보내겠다며 통사정했지만, 결국 선물세트를 포기해야 했다.

현재 권오길손국수는 인터넷(www.goodnoodle.co.kr)을 통해 70%, 인천은 물론 분당 일산 등 먼 곳에서까지 직접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30% 정도가 판매된다. 마른 국수외에도 샤브샤브용, 칼국수용, 버섯칼국수용 젖은 면과 만두피도 있다.

“어느 면과 비교해도 가장 맛있을 거라고 자신합니다. 인공재료나 방부제 등은 전혀 안써서 아무리 먹어도 몸에 해롭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마음으로 국수를 만들겁니다.” 이 시대, 진정한 장인을 만나고 나오는 느낌이었다. ☎(032)551-7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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