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어윤덕 인천도시개발공사 사장

취임한 지 100여 일 남짓, 인천도시개발공사 어윤덕 사장을 만났다. 몇 달 새 얼굴이 다소 그을린 듯 했다. 그는 “자리에 앉아있는 역할이 아니어서 그렇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그는 정부 부처와 인천시 등을 오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동시에 ‘인사드래프트’ 제도를 도입하는 조직 개편을 위한 작업도 돌입했다.

취임하자마자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감행했다. 내부 반발도 만만치 않았을텐데.

반대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사내에 대자보도 붙었다. 공기업에 경쟁 논리를 들이대는 것은 처음이라 생소하기 때문에 일부 불만이 있을 것으로 예상은 했다.

그러나 조직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 잘 안다. 직원들이 성과를 내는 만큼 자신의 몸 값이 올라가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내가 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어야 하는데,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었다. 직원들이 성과를 내고, 회사 발전에 기여하면 인센티브를 줄 것이다.

연구원장을 지낸 경험이 반영된 것인가.

원장으로 지켜봤더니, 인발연 박사들은 일의 양이 상당히 많았다. 연구원들 간에도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었다. 서로 일을 하려고 했다. 이들에 대한 평가 내용도 일의 ‘양, 질, 기여도’로 나뉘기 때문에 ‘잘 하는 것과, 많이 하는 것’이 모두 중요하게 평가됐다.

도개공도 전문평가단을 통해 도개공이 도시 발전에 기여하는 점을 평가해 나갈 것이다. 그렇다고 개인만 잘 해선 안된다. 부·처의 점수도 함께 평가된다. 역량은 있는데 일 할 기회가 없어서는 안되지 않나.

취임하면서 ‘유동성 확보와 건전한 재정’을 공사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방법이 있나.

인천시가 1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데, 지금 시점에서 이런 대형 사업을 할 것이라고는 꿈도 못꿨다. 중국과 싱가포르는 이 정도의 사업은 국가에서 직접한다. 인천은 국가적인 사업을 지방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적인 규모의 프로젝트인데, 이는 용기와 돈, 인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빚만 생각하니까 재정성에 대해 무서워하는데 나중에는 부가가치가 올라가서 선순환 할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2013~2014년이 되면 공사가 계산상 부채를 다 갚고, 부채 없이 갈 수 있는 여건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투자’했으니, 이제 ‘회수’할 시점이라는 말인데, 그렇다해도 부채비율이 너무 높은게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자기 돈만 가지고 집을 마련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어느날 갑자기 집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통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는데 신용이 돼야 주택 대출도 해주는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있는 돈만 가지고 사업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 그만한 능력이 있다면,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정부도 지방공기업에 대한 경영 쇄신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는데.

공기업들이 방만하다고 하는데 인천은 좀 다르다. 인천은 경제자유구역, 도시재생사업 등 인천만의 특이한 사업을 하다보니 규모가 크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인천에 다른 시도와 똑같은 잣대를 들이댄다. 우리는 일반 공기업과 똑같은 일을 하는데가 아니다. 그런 어려움이 있다.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들은 꾸준히 건의할 것이다. 관광공사와 도개공의 업무가 중복된다는 얘기가 있는데, 누가 사업을 하든 자기 전공과 영역에 맞게 조정 해가는 게 중요하다. 조직을 축소하라는 주문이 있는데, 도개공은 정원을 400명 수준으로 늘려놔서 그렇지 실제 근무 인원은 300명 수준이다. 정원이 많은 것이 현원하고는 관계 없다.

공직자와 연구원, 기업인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거치기도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20대부터 행정안전부(당시 행자부)에서 컸다. 중앙 정부에 오래 있어보니 국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런 시스템을 다른 사람보다 많이 배웠다. 그러면서 일을 보면 안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게 습관이 되니까 솔직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젊어서는 새벽에 별을 보며 출근해서 별을 보며 퇴근하는 ‘별보기 운동’을 하다보니까,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못 보냈다. 젊어서는 집 없이 전세를 사니까, 외곽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다보면 새벽에 6시30분에는 나서야 한다. 일한다는 핑계로 가족들이나 친지들도 못챙겼다. 어떤 사람들은 잘난 척 한다고 욕하기도 하더라.(웃음)

다양한 일을 수행할 수 있었던 근본 동력이 어디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나.

서른아홉 살 나이에 최고령 나이로 유학을 결심하고 도전했다. 준비 기간에만 1~2년은 걸리는데 6개월만에

모두 마쳤다. 공직자들을 유학 보내는 부서에 있다보니 그 분야의 정보는 많은 편이었다. 늦은 나이에 준비했기 때문에 어학이 문제였는데 어학강좌를 아침에 1개, 저녁에 2개 들었다. 드러내놓고 학원에 다닐 수도 없어서 숨어서 공부했다. 그리고 미국에 가서 햄버거 먹으면서 (어렵게) 공부하고 학위를 땄다. 그런 경험을 해보니 어디가서도 먹고 살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인천에서 겪은 비하인드 스토리도 많겠다. 본인이 생각하는 ‘영광의 순간’이 있다면.

2007년도에 인천이 아시안게임유치할 때 겪은 숨겨진 이야기가 많다.

정무부시장으로 있을 때인데, 우리 준비단은 쿠웨이트로 가고, 나는 우리와 경쟁하고 있는 인도로 갔다. 마치 전쟁터에 가는 기분으로 공항에 내렸는데 공항부터 어두컴컴한게 무섭더라. 인천 사람이 왜 인도에 왔냐고 따질까봐. 다음날 때마침 인도 각료회의에서 ‘인도가 경쟁에 참가하면 안된다’고 발언한 게 현지 신문에 났더라. 그 사실을 우리나라 외교부를 통해서, 인천이 전달받으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릴텐데, 내가 현지에 있어 곧바로 신문을 몇 부 챙겨가지고 쿠웨이트로 갔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한다는 작전이 성공했다.

끝으로, 도개공의 운영 철학을 어디에 둘건가.

도개공이 전문의식을 키워서 도시건설도 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사업도 할 것이다. 무조건 이익을 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지자체가 전부 그렇게 한다면 민간기업과 다른 것이 없다. 경제자유구역이 성공하면 그 이익 또한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 돌아간다. 개발로 인해 얻은 수익으로 도로가 연결되면, 그 도로는 모두가 함께 쓰는 것이다.

1950년 7월 강원도 원주 출생

인천고등학교 졸업

육군사관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행정학 석사)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공공행정 MPA-석사)

인하대학교 행정학 박사과정

경력

1980년∼2001년 총무처, 행정자치부, 국무충리실 계장, 과장(행정사무관)

2001년∼2006년 행정자치부 의정과장, 대전정부청사관리소장,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민원관리관,

2001년∼2006년    행정자치부 자치정보원 기획관리실장(부이사관)

2006년∼2007년 인천시 기획관리실장(이사관)

2007년∼2008년 인천시 정무부시장(1급)

2008년∼2010년 인천발전연구원 원장

2010년∼현재 인천도시개발공사 사장

수상경력

녹조근정훈장, 홍조근정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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