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 서단의 거목 검여(劍如) 유희강(柳熙綱)선생의 뜻을 잇는 후학들이 선생의 고향에서 뜻있는 전시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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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여에게 수학한 소완재 묵연회원들과 제자 남전(南田) 원중식 선생의 지도를 받은 서울시립대 연묵회 회원들이 만든 시계연서회(柴溪硏書會)가 그들.

선생의 서거 30주년을 맞아 정기전 ‘시계서회전’을 들고 인천으로 온다. 25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인천종합문예회관 전시장 전관을 채운다.



?절정기를 구가하던 시기 뇌출혈로 오른손 등 우측이 마비돼 서예가로서 사망선고를 받았던 검여는 불굴의 의지로 1년만에 붓을 잡고 ‘좌수서’로 재기, 서단을 놀라게 한 일화는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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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여는 시계연서회는 지난 95년 창립, 검여의 가르침을 좇아 ‘공부하는 전시회’를 표방하며 철저히 옛 비석이나 서첩을 임모하는 임서전(臨書展)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모임 이름 ‘시계’는 검여의 고향 인천 서구 시천(始川)동의 옛 이름 시시내(柴溪)에서 따왔다. 검여도 한때 시계외사(柴溪外史)를 호로 사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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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여의 친필 4점을 내놓은 것이 특별하다. 1967년 작 두보의 백부행(白鳧行, 행서, 84x123㎝, 사진), 1868년 작 차원인구(借元人句, 행서, 30x120㎝), 그리고 1975년 작 익재의 화정조학사자앙시(和呈趙學事子昻詩, 행서, 50x120㎝)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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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식 유소영씨와 권혁승 전 서울경제신문 사장, 여기에 유치원생과 고교생까지 70여명 전 회원들이 참여했다. 왕희지, 구양순, 안진경, 조맹부의 비와 첩을 두루 임서했다. ☎(032)427-8401∼5, (02)0458-8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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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여는

??1911년 5월22일 조부가 현감 벼슬을 지낸 양반가에서 유성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과 서예의 기초를 닦았고 명륜전문학원을 졸업한 뒤 1938년 중국으로 건너가 서학과 금석학을 9년간 연구했다.



?이후 강서시보(江西時報) 편집국장겸 강서민보(江西民報) 기자, 남창시립도서관 지도관위촉으로 근무하면서 상해미술연구소에서 서양화를 연구하던 중 해방을 맞아 귀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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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립박물관장과 인천시립도서관장을 역임하면서 제2회(1953) 국전에서 서양화 및 서예부문에 입선, 제3회 서예부문 입선, 제4회 특선, 제5, 6회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제7, 9회에서는 추천작가로 선임됐고, 제11∼15회에는 서예부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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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로 절정기를 구가하던 1968년 9월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됐으나 1년만에 좌수서로 재기, 예술혼을 불태웠다.

?1976년 뇌출혈이 재발, 65세의 일기로 운명했다. 1976년 10월 문화공보부 문화훈장이 추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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