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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지옥이던 몹쓸 동네 꽃향기 번지는 새동네⑥ 장수동 새동네

돈이 요물이다. 그 간사함에 사람들은 웃고 운다. 그것이 몰고 오는 애증의 자극은 아찔하다. 그 짜릿함은 오감(五感)도 부족하다. 오죽하면 ‘쩐(錢)의 전쟁’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참으로 요망스러운 것은 돈이 아니다. 그 돈에 비치는 사람의 마음이다. 돈으로만 얻을 수 없는 것이 마음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쩐’을 잣대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정글의 법칙을 들이대고, 거기에 기쁨과 즐거움, 슬픔과 노여움 등 감정까지 얹힌다.

   

 

‘프로젝트’란 그럴듯한 명패를 갖다붙인 마을 만들기가 요즘 흡사 그런 짝이다. 기획성을 덧칠해 동네사람들보다 남의 눈을 의식하고, 정부의 돈이 투입되면서 사업성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주인은 주변인으로 밀려나고, 공동체는 사그라진다.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 새동네 김종현(43)씨가 지난해 경험한 희망근로프로젝트에 대한 소회다.

1996년 8월 토지구획정리사업(18만5천245㎡)시행인가가 난 장수동 새동네는 2006년까지만 해도 ‘몰골사나운 마을’이었다. 기반시설을 하느라 집들은 허물지고, 도로는 파헤쳐져 난장판이었다. 동네 자투리 땅에는 온갖 쓰레기가 수북히 차지했다.

‘개 지옥’사건은 한 순간에 장수동을 몹쓸 동네로 만들었다. 각종 언론매체는 험악한 동네로 몰아세웠고, 인천대공원 후문의 이 동네 사람들은 얼굴을 못 들 판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장수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 안에서 땅을 빌려 10여 년 간 개를 키워온 사육업자는 2005년 5월 사육장(495㎡)시설을 모두 강제철거 당했다. 여러 차례 자진폐쇄 통보를 했지만, 사육업자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에내린 인천시 남동구의 조치였다. 구는 대신 132㎡규모의 임시 보관소를 도로변에 마련하고 수백 마리의 개를 옮겼다.

‘보상비(당시 3천400만 원)를 높게 책정해 달라’는 사육업자와 ‘적정가를 산정했다’는 구청 측 사이에 1년 간의 지루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동안 임시보관소의 개는 방치되다시피 했다. 철장의 개 우리는 아스팔트 위에 쌓여있는 음식 찌꺼기와 배설물 등이 뒤섞여 저절로 구역질을 나게 했다. 서로 물어뜯은 개들은 피를 흘리며 우리 안에서 죽어 나자빠졌고, 그나마 용케 살아남은 개들은 상처로 만신창이가 된 불구의 몸이었다.

누리꾼들은 ‘장수동 개 사건을 해결하자는 모임’이란 인터넷 카페를 만들고 항의와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새동네 사람들은 동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연극인 김씨가 서 있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 등록된 예술강사, 김씨는 2004년 장수동 새동네로 이사를 왔다. 전국적으로 망신살을 샀던 ‘개 지옥’사건이 터지지 전까지만해도 그에게 장수동 집은 ‘잠 자는 곳’에 ’지나지 않았고, 동네일은 관심 밖으로 벗어나 있었다.

그는 지은 지 25년이 지난 대지 100㎡의 단층 기와집을 2층으로 다시 꾸미고, 인천시에서 400만원의 지원을 받아 담장을 허문 뒤 풀꽃나무를 심었다. 김 씨는 그 집에 그리스 신화의 주신(酒神)이름을 빌린 야외극장을 응용해 ‘다이오니소스 가든’이란 문패를 달았다. 동네 사랑방으로 문을 열어놓은 것이었다.

동네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떠돌이 젊은이의 ‘객기’쯤으로 내켜하지 않던 주민들도 김 씨의 집을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원준 엄마, 커피 한잔 얻어 마실 수 있어?’ 60~70대 나이 지긋한 동네 아줌마들은 김씨의 아내를 부르며 다이오니소스 가든의 문을 두드렸다. 회수가 더할수록 그들의 수다는 자연스레 동네 얘기로 흘렀다.

   
‘토지구획정리사업 이전에는 농촌의 풍경이었는데… 빌라가 들어서다보니 요즘은 서로 인사하기도 객쩍어.’ 아낙들은 도모를 꾀했다. 잠자고 있던 나름의 재능을 살려 동네를 위해 서로 품앗이 하자는 것이었다.

주민자치센터에서 미술수업을 받은 김영자(52)씨는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고, 집마다 소소한 특징을 살려 그림 문패를 달아줬다. ‘플라워 가든’, ‘커티지 가든’, ‘허브 가든’, ‘재학이네’… 헐리지 않은 단층의 단독주택 32채 중 24채이었다.

영국서 5년을 살다가 시골이 그리워 2년 전 장수동 새동네에 2층 집을 짓고 들어온 서동희씨는 취미를 살려 화초를 키운 뒤 이웃에게 분양했다. 음식 솜씨가 뛰어난 안 주인들은 앙증맞은 정원을 배경으로 대공원을 찾는 이들에게 차나 요깃거리를 파는 카페를 차렸다.

‘개 지옥’에서 화려한 새동네로 변신한 장수동은 인천대공원을 오가는 이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언론이 장수동 새동네의 변신을 소개했고, 이를 본 사람들의 발길은 새동네로 몰렸다.

   
지난해 남동구는 인건비 등을 빼고 4천만원을 들여 ‘희망근로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내걸고 담장 없애기 사업을 벌였다. 새동네 초입에는 나무로 무대를 만들고, 작은 연못도 ‘동네마당’을 만들었다. 새동네 사람들은 180일간의 희망근로프로젝트가 끝난 뒤 마을축제를 열어 자축했다.

하지만 장수동 새동네에 이상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옹기종기 모여 동네를 이야기하고, 오순도순 품앗이로 살갑게 살고 있던 새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시기가 싹튼 것이다. 희망근로로 정부 예산과 노동이 투입되면서 돈을 둘러싼 갈등이 움튼 것이다. 공동체로 일군 장수동 새동네가 제2의 시련을 맞고 있다. 박정환기자 hi21@i-today.co.kr

"생각과 마음의 벽 허무는 것이 공동체 첫 과제"

                                                               장수동 프로젝트 김종현씨

얼마 전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생활문화공동체만들기’시범사업을 추진하면서 전국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공모신청을 접수한 적이 있었다. 주위에서는 신청을 해 지원을 받자는 얘기를 건넸지만 김종현(43)씨는 거들떠도 안 봤다.

“지난해 장수동 희망근로프로젝트를 경험했지만 공동체라는 것은 억지로 꾸민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김 씨는 우선 새동네 사람들을 갈라놓는 정부의 돈이 싫었다. 또 외부의 도움을 만들어지는 공동체는 모래 위에 짓는 성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희망근로프로젝트 때였다. 남동구가 인건비와 재료비 등을 댄다고 해서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전국의 학교를 돌며 연극예술 강의를 해서 돈벌이를 김 씨는 하루 평균 4~5시간 했던 강의시간을 2~3시간으로 줄였다. 그만큼 지갑이 얇아져도 그는 감수했다.

남동구가 새동네를 위해 돈을 푼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담장철거에 일손을 보탰다. 동네마당을 디자인하고, 목공으로도 나섰다. 희망근로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는 마을축제를 기획하고, 공연 팀도 지인을 통해 공짜로 데려왔다. 하지만 남는 것은 사기와 수군거림이었다. 심지어 ‘희망근로프로젝트를 하면서 뒷돈을 챙겼다, 마을 어귀에 만든 동네마당은 동네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김종현 개인을 위한 무대다…’ 온갖 험담까지 귀에 들어왔다.

김 씨는 그 때 ‘공동체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의 벽을 허물지 않은 이상 공동체는 무의미하다는 깨달음이었다. 동네 사람들 생각대로 만들어 나가고, 그것에 만족할 때 진정한 마을 공동체가 터를 잡는다는 사실이었다.

아직도 장수동 새동네는 보수적 색채가 깔려있다. 김 씨처럼 젊은 사람들이 동네일에 나서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60~70대 나이의 몇몇 마을 사람들은 김씨를 보면 ‘지가 뭔데, 나이도 어린 놈이…’라며 이기죽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김 씨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동네마당에서 영화상영도 하고, 문화강좌도 열 작정이다. 변화하는 동네를 자랑하고, 동네 축제 때 또래들을 초청해 ‘우리 동네는 이렇다’하며 우쭐대는 동네 아이들이 있어서다.

구획정리사업으로 새동네 사람들이 된 빌라 사람들도 내심 새동네의 공동체에 참여를 바라고 있다. 예술의 향기가 그득한 장수동, 누구나 와서 그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새동네, 그것이 김 씨가 꿈꾸는 장수동 새동네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박정환기자  hi21@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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