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규(39·예진건축 대표). 운봉공고 건축과를 졸업하고 홍경선 소장의 사무소에 입사하면서 출발한 그의 건축인생이 벌써 20년이란 햇수를 넘기고 있다.

남들 대학에 들어갈 나이에 취업하여 건축설계실무를 익히게 된 배경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그는 역경이야말로 지금의 자신을 세우게 한 가장 큰 선물이었다고 술회했다.

설계입찰전문 건축사사무소임을 자임하는 홍 대표는 대강주의에 물든 여타 사무소와 달리 입찰로 수주한 프로젝트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한 결과로 오늘에 이르렀다고 비결을 소개한다.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고 했던가? 그는 오늘도 어려운 환경을 통하여 성공의 신화를 써내려가는 젊은 건축가의 끈기와 패기를 동시에 펼쳐 보이고 있다.

설계사무소에 다니다가 군에 입대한 그는 제대 후 복직하여 인천전문대 건축과에서 늦깎이 대학생이 된다. 그 과정에서 홍경선(당시 새원건축 소장)씨의 배려가 컸다. 그는 홍 소장을 자신의 건축스승이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건축의 맛과 멋을 일깨워주었고, 자기중심적이며 독단적이라 비판될 만큼 고집 센 건축가의 기질을 그에게서 발견하였던 것.

인천에서 디자인을 한다고 평가되는 몇 안 되는 건축가의 대오에서 유난히 빛을 발했다는 홍 소장의 스태프로서 그가 건져 올린 것은 디자인 능력의 배양이기보다 건축의 완성도를 향한 성실함에서 찾았다. 건축가의 승부수는 우직한 작가적 성실함에서 비롯되며, 경쟁자들보다 두 배, 세 배, 그 이상의 결과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포착했던 것이다.

대학 졸업 후 그가 두 번째로 옮긴 사무소는 홍 소장의 사무소에 재직 증 알게 된 선배 박병진 씨가 원주에서 개업한 예일건축사사무소였다. 2003년 건축사 면허를 취득 후 지금의 예진건축으로 독립하기 전까지 10년 가까이 머물던 예일건축은 그의 건축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던 기회의 장이었다. 그 사무소에 재직하던 2000년 결혼도 하게 되는데 맞벌이 부부였던 관계로 한동안 인천과 원주를 오가는 주말부부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즈음 그는 건축의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많이 피폐해져 있었다. 경력에 비해 여전히 박봉에 시달리고 있던 그가 독립을 생각하게 된 것도 바로 그 때의 일이다.

“와이프하고 얘기를 했어요.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건축설계는 놓을 순 없다. 독립해야겠다. 당장은 무리가 따르겠지만 최소한 지금의 내가 받는 월급 정도만 건지면 되지 않겠느냐. 간신히 와이프의 동의를 구하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주변에서 반대도 만만치 않았지요. 개업은 해야겠는데 손 벌릴 데는 없고, 마침 건축사 면허만 가지고도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주더군요. 그것으로 3천만 원 하는 사무소 임대 보증금을 충당할 수 있었지요. 설계실의 주요장비는 박 소장님이 우정 지원해주셨고, 그런 식으로 개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렵사리 사무소를 열었지만 1건의 설계 프로젝트를 수주한다는 것은 마른하늘의 벼락을 맞는 것 이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별한 연고 없이 실력만으로 건축 일을 따낸다는 것이 쉽지 않을 때에 그가 눈을 돌린 것은 설계입찰공고로 뜨는 관공사 설계프로젝트였다. 아무리 작은 기회라 하더라도 ‘상대방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다음은 없다’라는 각오로 작업에 임했던 것. 그는 어느새 설계입찰로 작업한 여러 관청의 건축담당자들 사이에서 신뢰받는 건축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제아무리 작은 건물이라 해도 기획, 설계 준비하는데 1년, 공사하는 데 1년, 최소 2년 이상은 걸립니다. 그런 까닭에 저는 늘상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 넣고 다니지요. 그리곤 수시로 꺼내들고 지우고 그리기를 반복합니다. 바닥재료, 벽 재료, 질감, 각종 디테일, 조명방식, 기타 등등 건축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건물을 사용하게 될 사람들의 입장에서 재차 생각합니다.”

작은 사무소지만 1년에 한 차례 이상은 현상설계에 임하려 노력한다고. 그 과정을 통해 사무소의 디자인 역량을 키워왔다. 사무소 개업 후 현재까지 4차례 현상설계에 참여하여 부평청소년수련관을 포함, 최근 송도경제자유구역 콤팩트시티 내 관광안내소까지 3번의 당선을 일궈낸 만큼 지역 안에선 이 분야의 떠오르는 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연수구 동춘동 810-12번지 (주)코메스사옥으로 그가 안내했다. 토요일 오후 3시가 넘은 시각. 직원들은 휴무로 비어있는 건물에서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건축주 양종식 사장이었다. 사무소를 개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들의 권유로 입학한 인천대 최고위경영자과정에서 만나 동문수학하던 사이에서 건축주와 건축가의 관계로 맺어진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한없는 신뢰를 주고받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양 사장은 사옥 내 공간이 여유가 있어 부분 임대를 줄까도 생각했지만 건축가가 공들여 만든 공간의 속성이 빛을 바랠까보아 넉넉하게 쓰고 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서해바다를 향해 열어놓은 전면 창은 인천의 해양성을 건축의 언어로 옮겨놓은 듯했다. 노출콘크리트와 목재루버로 어우러진 파사드의 면성은 정교한 구성을 보여주었고, 사선제한을 의식한 듯 꺾긴 북측면의 지붕선은 매스의 분절을 형상화하며 리듬감을 타고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또한 1층의 발코니는 외부화 된 내부공간의 확장이라는 면에서 풍성해 보였다. 옥상층에 마련된 직원들의 체력단련실과 옥상마당은 이 건물이 위치한 송도유원지구의 장소적 특성을 공유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의 활용도가 기대되었다. 내부 주계단실의 벽면은 피아노 건반을 은유한 아트월로 구획되어 이 건물의 특징적인 내부공간이 되어 있었다.

전진삼(건축비평가, 격월간 건축리포트<와이드> 발행인, 광운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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