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숙 주사(47)가 인천시의회 속기사로 일한지 벌써 18년이 됐다. 그러니까 구월동 시의회 청사가 개원된 이후 줄곧 시의회 안에서의 온갖 일들을 손으로 기록한 산증인인 셈이다.

“다 듣고 봤죠. 상임위원회에서, 본회의에서. 시의원들이 어떤 논의를 하는지, 어떤 질문을 하는지. 또 어떤 답변이 나오는지. 단어하나 틀리지 않게 기록하는 것이 저의 임무니까요.”

안건에 대한 심의와 질의, 가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하는 속기사의 손은 빠를 수밖에 없다.

속기사가 되려면 적어도 1천500~1천700자 정도를 대략 5분안에 바로듣고 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정 주사 같은 베테랑들은 이보다 훨씬 빠르다. 이 때문에 정 주사가 기록한 시의회의 모습은 생생하다.

“3대의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상임위에 답변자로 나선 공무원이 너무 긴장한 나머지 기절을 해서 119구급대를 부르는 소동이 있었어요. 심의과정에서 격렬한 고성이 오가는 경우는 한두번이 아니고요.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 벌어져도 냉정하게 내용을 적어넣어야 하는 것이 우리 일이니까요.”

속기사들이 기록한 속기록을 보면 회의가 시작된 시간과 출석인원, 출석명단과 각자의 발언, 헛기침은 물론 누가 언제 나갔는지까지 기록돼있다. 고성이 오가는대로, 때로는 차분한 말투까지 모조리 속기록에 녹아 있다. 속기록을 읽다보면 한마디로 글로 쓰여진 영상기록과도 같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발음을 정확하게 또박또박 발언하는 의원들은 속기사도 당연히 편하다. 하지만 빠르고 거친 말투, 발음을 뭉개는 경우에는 속기사들이 나중에 해당 의원을 다시 찾아가 어떤 말을 했는지 물어야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시의회 속기사들에게는 한번의 변혁이 있었다. 지난 2008년 수필속기에서 기계속기로 시스템을 변화시키며 이제는 일반인들에게는 암호로나 보이는 수필속기를 찾아볼 수 없다.

“수필속기나 기계속기 모두 장단점이 있죠. 수필속기는 종이와 펜만 있으면 가능하지만 기계속기는 전력과 기계가 필요하니까요. 대신 기계속기는 해독속도가 빠르지요.”

정주사는 지난 3일 폐회한 시의회 임시회에서도 여전히 빠른 손놀림으로 각종 기록들을 적어나갔다. 그것조차도 곧 시민들을 위한 일이라고 믿는다.

정혜숙 주사는 “우리가 하나하나 적은 것들이 훗날 훌륭한 자료로 쓰이길 바란다”며 “한톨도 빠짐없이 기록해서 후세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요한기자 yohan@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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