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 인천항의 최대 화두는 ‘노무공급체제 개편(이하 상용화)’이었다. 물동량 추이에 따라 적정 수준의 인력을 그때 그때 공급했던 것을 각 회사별 상시고용체제로 바꾸는 것이었다. 개항 이래 100여년 간 지속돼온 방식을 변경하는 일대 변혁이었다. 그 만큼 많은 혼란과 진통이 뒤따랐다. 2년여에 걸친 준비기간과 2년6개월이라는 장기간의 협상을 거쳐 상용화가 최종 확정된 것은 지난 2007년 7월18일. 부산, 평택항에 이어 세번 째였다.

당시 인천항운노조 부위원장으로서 모든 실무협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상용화 출범 이후에는 위원장으로서 격변기 항운노조를 이끈 이해우(57) 위원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나 그 동안의 변화와 향후 전망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상용화 시행 이후 첫 위원장으로서 인천항운노조를 이끌어왔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100여년을 유지해온 체제가 바뀌었는데 왜 없었겠는가. 초창기에는 적응이 안돼 노조나 하역회사 모두 어수선한 분위기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종사자들의 노력으로 이제는 타 항만과 달리 상용화가 안정적으로 정착돼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려움을 견디어준 노조원들과 각 하역회사 관계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회사로 자리를 옮긴 직원(전 조합원)들은 앞으로 더욱 소속감과 애사심을 갖고 인천항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상용화와 관련해 당시 대부분 항운노조원들이 신분변동에 따른 불안을 느꼈다. 때문에 많은 반발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3년차를 맞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체제가 바뀌는 것에 대해 많은 조합원들이 반대를 했다. 오랜 시간 자유롭게 일해왔던 방식이 몸에 뱄고, 상용화가 시행될 경우 고용불안 등 근로조건이 악화될 것이란 우려 때문에였다. 그 결과 1천735명의 대상인원 가운데 753명이 생계안정지원금을 받고 전직을 하기도 했다.

노무공급체제 개편안의 골자는 상용화를 수용하는 조합원은 각 사별 정규직으로 신분이 전환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4대보험과 정년 등이 관련 법률 및 노사정 세부협약서상에 명시됐고 월별·계절별로 불규칙했던 임금수준도 고정월급제로 바뀌면서 이제는 상당히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내항재개발 방식과 관련, 확실한 입장을 표명했는데.

▲1, 8부두에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면 각종 민원으로 내항 전체의 기능이 마비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 마디로 말도 안되는 발상이다. 때문에 내항재개발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대승적인 차원에서 지역주민과 인천항이 공존할 수 있는 방향이 모색돼야 한다. 1, 8부두는 민간자본이 아닌 국비로 추진하고 근린공원으로 개발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에야만 인천항은 진정 시민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다.

우리 항운노조의 이같은 입장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올 한해 인천항운노조를 어떻게 운영해나갈 계획인가.

▲신년사에서도 밝힌 부분이지만 우선 개정된 노동관계법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조합원의 근로조건 개선 및 복지향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방침이다. 또 이의 연장선상에서 2010년 임단협도 잘 마무리하겠다.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기능교육프로그램 개발 및 안전교육을 통해 신속한 작업이 이뤄지고 사고없는 사업장이 조성되도록 힘쓰겠다. 특히 지역사회와 함께 하면서 지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노동조합상 정립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할 것이다. 시대가 바뀐 만큼 이제 노동운동도 변화해야 한다고 본다. 단언컨대 인천항운노조도 이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지역주민과 함께 해야만 발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위원장 취임 이후 시작한 ‘사랑의 쌀 전달행사’나 ‘연말 불우이웃돕기사업’ 등을 더욱 활발히 추진하고 노조운영에도 더욱 투명성과 공정성을 기하겠다.

-오는 5월이면 3년의 임기가 끝나는데.

▲인천항운노조 위원장은 대의원들에 의해 선출되는 간접선거 방식이다. 아직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조합규약상 현재로서는 5월20일을 전후해 대의원대회가 개최될 전망이다. 이 자리에서 차기 위원장이 결정된다.

지금 시점에서 정확한 입장을 밝히기는 어렵다. 위원장이라는 직책이 본인의 희망여부에만 좌우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조합원들이 재신임을 해준다면 우리노조의 발전 그리고 지역과 상생하는 조합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각오는 돼 있다.

-인천항 운영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조직의 장으로서, 인천항에 수 십년 동안 몸담아온 종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인천항 발전을 위한 고언을 해달라.

▲물류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 주요 항만 간 경쟁이 날로 치열해져가고 있다. 이러한 경쟁의 대열에서 도태된다면 언제든지 3류 항만으로 전락할 위기가 상존해 있는 것이다. 인천항의 모든 관련 기관, 단체, 업체는 이러한 상황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각자의 입장에서 한 발씩만 물러나 보다 거시적인 시각으로 인천항의 생존, 즉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고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여 많은 선사나 화물이 들어올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해 머리를 맞대야 하며 각각의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항운노조도 이 대열에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 인천항의 발전에 노조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글=이은경기자 lotto@i-today.co.kr 사진=안영우기자 dhsibo@i-today.co.kr

“인천 정착 35년 항운노조와 인연 후회없이 살았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인 이해우(57) 위원장이 인천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76년 결혼과 함께였다. 당시 인천에 살던 현재의 부인을 만나면서 인천에 정착했다. “인천에 거주한지 벌써 35년이네요. 이제는 누가 뭐라해도 인천사람이지요.”

이 위원장은 군대를 제대한 뒤 포항제철에 입사했다. 지금도 그렇듯이 그 때에도 여전히 손꼽히는 좋은 직장이었지만 몇 개월만에 그만두었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번듯하게 맡은 업무(관리직 등)가 있는 줄 알았는데 들어가고보니 박태준씨 관사를 경비하는 것이 제 임무였어요” 그래서 미련없이 그만두었단다.

항운노조원이 된 계기도 남달랐다. 결혼과 함께 옮겨와 정착한 인천. 물 설고 낯선 객지 타향에서의 생활은 여의치 않았다. 닥치는대로 이 일 저 일을 하던 중 1979년 우연한 기회로 인천항운노조에 입사했다. ‘다른 번듯한 직장을 구할 때까지만 다니자’는 생각으로 출근을 했다.

“제가 입사할 당시만해도 노조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썩 좋지가 않았어요. 그런 노조가 평생직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또한 제 생각이었죠.” 그렇게 시작한 항운노조생활이 올해로 어느덧 32년 째를 맞았다. 부위원장을 거쳐 이제는 위원장으로서 항운노조를 훌륭히 이끌고 있다.

“막내 노조원으로 아무 것도 모르고 좌충우돌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네요. 저의 선택에 대한 후회는 전혀 없으며 다시 태어난다해도 항운노조원이 될 것입니다.”

‘강한 추진력과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뚝심’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이 위원장의 인천항과 항운노조에 대한 사랑은 여전히 뜨겁다. 이은경기자 lotto@i-today.co.kr

이해우 위원장은

▲1953년 경상북도 영일군 청하면 하대리 출생

▲1979년 인천항운노조 가입

▲1996년 인하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2007년 인천항운노조 위원장 취임

현재 맡고 있는 일들

-법무부 범죄예방위원(2005~)

-한국노총 인천지역본부 부위원장(2006~)

-전국항운노조연맹 부위원장 및 중앙위원(2007~)

-인항학원재단 이사장(2007~)

-해양경찰청 인권보호자문위원(2008~)

수상 경력

-인천광역시장상(2003)

-인천물류대상(2007)

-산업철탑 훈장(2008)

-산업평화대상(2008)

-인천지검장 표창(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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