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갔던 조선의 사람들은 외래의 사람과 문화를 접하면서 우리나라의 여러 분야에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개항 이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정치, 경제적 상황 속에서 중국(청), 일본, 서양의 관료들과도 접촉이 잦아졌으며 그러한 교류의 과정 중에 서양식 파티문화와 식생활문화가 자연스럽게 유입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생활양식을 담을 그릇도 필요하게 되었다. 이를 보여주는 한 장의 그림이 남아 있어 흥미롭다.

<한일통상조약체결기념연회도 韓日通商條約締結紀念宴會圖>(근대산업도자기 특별전시회에는 영상으로 소개)는 1883년 한국과 일본 간에 통상조약을 체결하고 관계자들이 모인 연회(宴會)의 장면을 도화서(圖畵署) 화원인 안중식(安中植)이 그린 그림이다. 우리나라에 서양식 상차림이 도입되었음을 알려주는 최초의 그림으로 주목된다. 19세기 후반의 원근법이 무시된 화풍과 역사현장의 포착, 그리고 우리나라의 서양식 연회 상차림을 보여주어 자료가치가 높다.



이날 연회에 참석한 한국 측 주요 인사는 식탁 왼쪽 모퉁이에 앉은 홍영식(洪英植), 오른쪽 모퉁이에 앉은 민영익(閔泳翊), 건너편 중앙에 흰 옷을 입고 있는 김옥균(金玉均) 등이다. 한편 건너편 왼쪽 끝에 마고자를 입고 통영 삿갓을 쓴 이가 당시 외교고문으로 통상조약 체결의 중요 역할을 하였던 독일인 묄렌도르프(Mollendorff, 穆麟德)이고 오른쪽 끝에 족두리를 쓴 이가 묄렌도르프의 부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앞줄 왼쪽 끝은 일본공사 다케조에(竹添進一郞) 이다.

식탁에 모인 사람들 앞에는 서양식 식기가 개인별로 한 세트씩 놓였는데 나이프와 포크, 스푼, 양념단지, 여러 개의 술잔, 백자 주자와 육각모양의 뚜껑 그릇 등의 모습이 보인다. 음식의 역사를 연구하는 전문가에 따르면 이들 그릇에는 소금·후추·간장·식초 등 양념과 각설탕, 커틀릿(cutlet; 얇게 저민 고기)으로 여겨지는 음식이 담겨졌을 것이라고 한다. 또 모양이 각기 다른 술잔에는 당시 일본을 통해 들어 온 서구의 술, 즉 위스키, 진, 럼, 포도주 등을 따랐을 것이다. 특히 조선 관료들은 위스키와 진을 좋아했다고 한다. 한편 서양 연회의 상차림임에도 식탁의 가운데에 고임음식과 꽃병이 놓여 있어 조선의 옛 연회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떡이나 과자 같은 음식을 높게 쌓아 올린 세 종류의 고임음식을 다섯 접시 올렸으며, 종이꽃 장식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꽃병이 두 개 놓여 있다. 이것은 조선의 연회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 상 차림새의 모습이다. 서로 다른 외양의 사람들과 그들이 입고 있는 의복처럼 조선식과 서양식 상차림이 어색하면서도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그림을 통해 19세기 말 우리의 연회문화 그리고 도자기가 겪었을 변화상이 짐작된다.

한편 개항 이후 이러한 서양식 연회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유럽을 통해 디너세트와 같은 서양식 그릇을 수입하였을 것이다. 현재도 국립고궁박물관에는 각종 연회에서 사용되었을 서양식 식기가 남아 있어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다음 회에서는 조선 왕실을 비롯한 상류층에서 먼저 받아들여 사용했던 근대기 수입도자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안성희 시립박물관 전시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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