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이었다. 한국수자원공사, SK와 현대 등 국내 굴지의 건설사 간부들이 경기도 김포시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중앙회(이사장·윤순영·56)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경인아라뱃길 공사를 하는 이들 건설사 관계자가 낮은 자세로 야조회 사무실을 찾은 것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그들이 내놓은 것은 볍씨 400㎏. 재두루미와 큰기러기 등 김포평야에 날아든 겨울 철새 먹이용으로 써달라는 것이었다.

“선심 쓰듯 내놓는 그 알량한 볍씨 400㎏를 보니 내 자존심도 상하기도 하고, 그래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설사가 이래도 되나 싶더라고요.” 넉넉치 않은 단체를 꾸려나가려니 못이기는 척하고 볍씨를 받긴했지만 윤 이사장은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사실 이들 건설사가 볍씨를 내놓은데는 곡절이 있다. 경인 아라뱃길 주운수로를 파내면서 나온 개흙을 김포평야 논 여기저기에 매립하듯 쌓아놓은 것이다. 윤 이사장은 공사 발주처인 한국수자원공사에 쳐들어가 난리를 쳤다.

‘먹이를 줘도 시원치 않을 판에 벼 이삭이 떨어져 철새들의 먹이터인 논을 개흙으로 메워버리면 어쩌자는 것이냐’는 따짐이었다. 수공은 개흙반출을 금지시켰다. 김포나 인천 터미널 공사에 재이용하기로 한 개흙의 사토처리계획과 달리 논에 다가 쏟아부은 사실이 알려지면 시끄러울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윤 이사장이 못마땅한 것은 수공과 건설사들이 보여준 행동이다. 경인아라뱃길 공사에 들어가기 전 분명 철새 피해저감방안들이 세워졌다. 공사로 인해 철새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모니터링하고, 감시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먹이터 운영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동안 ‘나 몰라라’했다. 사고가 터지자 볍씨를 갖다가 먹이주는 행사를 벌이며 저감방안을 하는 척 ‘시늉’만 내고 있다.

“원칙을 지켜야죠, 수공이 보여준 행동은 화장실을 갈 때하고 나올 때가 다르다는 겁니다.” 저감방안을 세웠으면 그대로 하자는 게 윤 이사장의 말이다.

18년 째 김포평야의 재두루미를 관찰하고 기록해 온 윤 이사장은 오늘도 볍씨를 메고 들에 나간다. 행여 토지주들이 싫은 소리를 할까 봐 날이 어슴푸레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에…. 박정환기자 hi21@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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