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차를 마시면, 오랫동안 그 향기가 입안에 가득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지난달 인천을 방문하여 ‘제1회 아시아 경제공동체 포럼(AECF.Asia Economic Community Forum) 총회’에서 기조강연을 한 기 소르망(Guy Sorman) 교수를 떠올리면 마치 향기로운 차를 마신 듯 마음 한 구석에 오랜 여운이 남아있다.

정치, 문화, 과학, 사상의 충돌 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프랑스 파리정치학교 기 소르망 교수는 동·서양을 넘나드는 방대한 주제, 또 동·서양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그의 독특한 이력을 배경으로 동서양의 충돌에 대해 무게감 있는 진단을 내놓고 있는 인물이다.

이날 기조연설은, 그동안 세계를 지배해 온 서구식 가치 즉, 개인의 행복을 중요시하고, 반항과 항의를 받아들여 사회통합을 이끌어가는 서구의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그는 현재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들도 서구지향세계를 따르고 있으며, 중국·인도의 성장과 EU의 통합 등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21세기 또한 미국의 시대가 될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서구식 성장동력이 멈추게 되면 2008년과 같은 경제위기가 또 다시 닥칠 수 있을 것이며, 그동안 아시아 국가들이 서구식 자본주의의 덕택으로 빈곤을 탈피하고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동양적인 문화적 정체성을 상실하며, 도교, 유교, 공동체의식, 세대 간의 유대감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월가에서부터 시작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세계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들에 대한 다양한 제언들을 내어놓으며, 특히 세계화를 재조정할 시기에 있어서 아시아는 하나의 역동적인 정치적 개념을 가진 프로젝트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또한 새로운 아시아의 핵심인 한국, 일본, 중국이 진정한 화해와 협력을 이루어야 함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아시아 헌장’을 채택하여 사회적인 가치, 경제조직, 세계에서의 아시아의 역할 등을 고려하여 아시아의 가치, 경제와 지금보다 더욱 균형을 이루는 세계질서에 대한 내용도 심도 깊게 다루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새로운 아시아의 세계는 서양의 대체물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것, 새로운 것을 개척하여 종래의 질서에 더해져야 하며, 인천이 또한 이러한 아시아 경제의 역동성을 나타나는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인천에 대한 애정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는 인천에 머무는 동안 인천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Global Identity 즉 글로벌 정체성에 대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오늘날은 세계화로 인하여 세상의 정체성이 복잡해지고 있으며, 이미 세계화는 생존의 조건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세계화로 인해 우리는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정체성을 풍부하게 하고 단순성에서 복잡성으로(단일 정체성에서 다중 정체성으로) 변화하는 기회를 제공받게 되며, 이러한 현상을 글러컬리즘(Glocalism)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가장 인상적인 글로컬 시민으로 화가 전수천과 백남준을 소개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가 제안한 글로컬시민이 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보게 된다.

첫째, 우선 한국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 한국의 문화, 역사, 예술, 경제, 과거와 현재의 산업 및 문화적 생산품을 잘 알수록 한국 브랜드가 강화되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는 선택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 경제, 과학, 혁신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미래의 선도 직업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최고의 전략은 강력한 개인 문화뿐 아니라 매우 특정분야에서 특정 전문지식을 갖추는 것이다. 또한 학습도구와 방법을 통하여 예기치 못한 새로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한국 이외에, 최소한 하나의 외국 문화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외국어 특히 영어는 필수이며 영어 외에 프랑스어, 중국어, 스페인어 또는 아랍어가 필요하다. 완전히 다른 정신적 세계를 접하면 다양성의 정확한 개념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양성은 훌륭한 글로컬 시민이 되도록 도와줄 사고방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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