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년 새 인천시는 크고 작은 관광개발 플랜을 속속 발표해 왔다.

이들 중 상당 부분이 구도심 재생을 위한 프로젝트로, 점차 구도심은 도시 마케팅의 한 축으로 자리하게 된다.

이 기간 시의 정책방향 제안 파트너로서 인천발전연구원은 관광진흥에 대한 다양한 밑그림과 실행파일을 제시하는 연구를 수행해왔다.

구도심 장소마케팅 전략에서부터 차이나타운 조성 방향, 구도심 도보관광 진흥 방안, 월미관광특구 마스터 플랜, 인천시 마을단위 관광산업 육성방안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일련의 연구과제를 풀어낸 이가 심진범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이다. 밤낮 없이 구도심을 샅샅이 살피고 뛰어다닌 땀의 결과물인 것이다.

▲인천으로…

“개항장 일대 관광정책의 두 핵으로 월미공원과 자유공원에 주목했습니다. 전자는 생태적인 관점에서, 후자는 문화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죠. 더불어 거점 역할은 인천역이 맡습니다. 이제 이들을 연결하는 보행축을 만드는 겁니다.”

심 위원은 구도심 활성화 방안으로 신포 문화의 거리부터 월미 문화의 거리에 이르는 상징 보행축을 강조한다. 인발연 연구위원으로 이 도시에 온 후 줄곧 관심을 가져온 지역인 만큼 그에겐 각별하다. 아니나 다를까, 구도심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인천과 인연을 맺은 세월이 꽉 찬 5년이다. “운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시·도 산하 연구원에 왔거든요. 다른 연구자들은 공부를 많이 하다보니 대부분 30대 후반에 오죠. 나이가 젊으니까 현장에서 더 뛰자 결심했습니다.”

당시 서른이었다. 부러움을 받은 만큼 부담도 컸다.
그 이전 그는 한국관광개발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5년을 일했다. 같은 맥락에서 줄곧 개발정책을 풀어온 셈이다.

대학에서 관광학과를 선택할 당시만해도 막연히 재미있게 일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전부였다고 말한다. 연구자의 길을 가리라는 결심도 없었다.

“대학 4학년 1학기때 외부 초청 강의로 한국관광개발연구원 실장의 ‘관광시설 조경론’을 들었습니다. 방학때 연구원 일을 도운 것이 연이었어요. 개강을 하자 연구원에서 일하지 않겠냐는 제의가 오더군요.”

가보니 모두들 석·박사였다. 관광개발 전문연구자로 길을 정한다. 선택은 대학원이었다.

“한편으로는 공부하며 한편으로는 정책을 연구하며 열심히 보냈습니다. 그런데 대상지역이 전국구이다보니 연구성과들이 실행되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때마침 인발연에서 관광분야 연구자를 뽑는다는 공고를 냈더군요. 이거다 싶었죠.”

▲구도심에 꽂히다

오자마자 처음 한 일은 선임연구원과 3일동안 인천 돌아보기였다. 구도심이 인상 깊게 들어왔다. “상당히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습니다. 독특하고 재미있다는 느낌이었죠.”

첫번째 과제로 짧은 기간 진단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해서 대상을 인천시 관광안내소로 정했다. 이 도시에 대한 순례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3개월동안 가서 보고 분석하고, 그 결과 관광안내소 운영실태와 향후 개선방안을 짚어냈다.

본격적인 자체 연구과제로 넘어간다. ‘인천시 구도심 장소마케팅 전략’을 택한다.

“당시 연구원 차원에서도 ‘인천의 재발견’을 화두로 정해놓은 상태였습니다. 구도심 연구에 큰 괌심을 보였습니다. 과제를 풀면서 구도심의 장소성을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근대 역사도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으로 모아졌다. 주목한 것이 자유공원이다. 이 지역 개발의 핵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근대를 안고 있는 역사적인 장소를 잇는 관광동선을 만들어야 한다는 구상을 했습니다. 노면에 표지를 주는 것이죠. 인천역사를 터미널로 각각을 플랫폼으로 밟아가되 마지막 종착역이 자유공원입니다.”

일을 만들어하는 사람에게 일복이 따라다니듯, 자체 과제와 더불어 정책연구, 수탁 연구, 현안 연구 등 풀어야 할 일들이 그 앞에 널려있었다. 그만큼 인천에 대한 앎의 깊이도 더해져 갔다.

“자유공원과 더불어 또 하나의 핵으로 월미공원이 보였습니다. 관광지도가 신포동에서 자유공원, 월미공원을 잇는 지역으로 넓어졌지요.

멸실 건축에 대한 복원문제가 걸렸습니다. 실제의 자리에 복원하려면 부지 소유주와 합의를 거쳐야 하는 등 제반 문제가 많지요. 결론을 냈습니다. 답은 공원조성으로 풀 수 있습니다. 대다수 공원은 시에 귀속돼 있으므로 이곳에 멸실 건축을 다시 세우는 쪽으로 접근하자는 겁니다.”

때마침 일본 큐슈지방으로 떠난 연구여행이 도움이 됐다. 일정 중 어렵사리 짬을 내서 나가사키 ‘그라바엔’ 공원을 찾았다.

“개항장 외국인 주택을 복원시켜 공원으로 조성한 곳입니다. 지형적으로 자유공원과 흡사하죠. 도시 재생을 위한 멸실 건축물 복원 방안으로 공원조성사업의 가능성을 목격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인천시 월미관광특구 마스터 플랜도 그의 손에 의해 완성된다. 다양한 방향에서 접근한 제안들이 수두룩하다.

옹벽이 많다는 점에 착안, 벽화 투어를 구상해 낸다. “어린이가 참여할 수 있는 벽화제작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개항장에 대한 교육을 한 다음 떠올려지는 이미지를 그리게 하는 식이죠. 중구가 시행한 삼국지 벽화와는 전혀 다릅니다.”

골목 전시관 사업도 있다. 예촌 예정지역을 중심으로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골목에 역사문화 관련 전시를 하는 것이 하나고, 신포동 옛 칼국수 골목에 오래된 영화 포스터를 전시하는 것이 또 하나다.

현존하는 건축물에 대한 관심으로 ‘뮤지엄 마일’도 제안했다. “걸을만한 거리 개념으로 마일(1.6㎞)을 사용합니다. 박물관이 집적돼 있는 거리를 만드는 겁니다. 중구청 인근에 공화춘이라든가 일본 제일은행, 58은행, 제물포 구락부 등이 모여있기에 가능하지요.”

도심 곳곳 표지에 대한 제안도 한다. 예컨대 단순히 설명만 써놓은 홍예문 표지의 경우 앞면엔 옛 사진을 함께 넣어주고 뒷면은 전체 개항장 지도를 더해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하도록 한다.

“월미 플랜을 만들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각각의 제안마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붙여넣었어요. 실행을 위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밤 12시에도 나가보고 새벽에도 가보곤 했죠. 그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 보려했어요. 다시 한다면 그만큼 못할 겁니다.”

여러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중구청이 2004년부터 실행중인 시민 도보관광 프로그램 ‘근대역사문화 탐방’이 있는가 하면, ‘월미 달빛누리’ 행사는 인천관광공사가 나서서 진행중이다.

“월미도의 달을 팔자는 제안입니다. 여기에 문화를 결합시켰죠. 거창하지 않아요. 토요일 오후 인천역에 집합해 자유공원 일대 짧은 답사를 한다음, 월미공원 전망대에 오릅니다. 이곳에서 내항을 둘러본 후 전망대 밑 야외 공연장에서 소박한 공연을 감상하면 됩니다.” 아이디어가 끝이 없다.

▲“관광정책 철학 있어야”

최근 그의 관심은 농어촌과 섬 등 외곽지역에 닿아 있다. 방향도 관광정책 개발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정책이 미치는 영향이다.

“행정에서 보는 관광은 다분히 지지론적 입니다만 지역사회 입장에서는 파괴자 일 수 있습니다. 다리가 놓아지면서 보상으로 인해 주종관계가 형성된다거나, 관광 인파로 넘치는 쓰레기, 어장 훼손 등 유·무형의 피해를 입게 됩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정책자의 관광정책수행에 앞선 확고한 철학입니다.”

무의도를 케이스로 잡았다. 해서, 지난해 말 나온 연구 결과가 ‘무의도에 미치는 관광영향 및 정책 방향’이다.

연장선상에서 올해는 북도면 시도와 모도를 주목하고 있다.

“드라마 세트장으로 일시적인 한류가 나타나고 있는 지역이지요. 한류 자체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지역사회와 연계돼는 것이 중요하죠. 관광객들이 자기 차로 와서 세트장만 보고 간다면 오히려 폐해일 뿐입니다. 좀 더 느린 속도로 와서 머물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관광지 조성이 목적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편익을 위해 개발돼야 합니다.”

마무리는 인천 애정론이다.

“인천에 대해선 연민의 정과 애착을 동시에 느낍니다. 이 지역을 위해 몇만분의 1일라도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이 곳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죠.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입니다. 계속 살아야죠.” 이 도시의 진정한 ‘터잡이’가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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